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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 급등에 50년 만기 주담대 손본다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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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급증을 막기 위해,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에 나이 제한을 두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돈을 갚는 기간이 늘면, 한 달에 내는 원리금(원금과 이자의 합) 부담이 줄어드는데 이를 악용해 대출 규제를 피하는 사례가 나와서다. 다만 이런 조처가 증가하는 가계부채를 막는 근본대책이 되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이 취급하는 주택담보대출은 지난달 말 512조8875억원에서 지난 10일 514조1174억원으로 열흘 새 1조2299억원 급증했다. 전달 대비 지난달 가계부채가 올해 들어 가장 큰 폭(5조4000억원) 늘어난 데 이어, 이번 달에도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부채 증가세가 여전히 가파르게 나타나고 있다.

이에 금융위원회와 유관기관들은 지난 10일 ‘가계부채현황 점검 회의’을 열고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과 인터넷전문은행 주택담보대출 적정성을 집중적으로 점검하기로 했다. 다음날 은행연합회는 회원 은행에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판매 실적과 조건을 회신해 달라고 요청했다.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현황을 점검하면서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을 뜯어보는 건 해당 상품이 정부의 대표적 대출규제인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우회하는 수단으로 일부 쓰이고 있어서다.

예를 들어 연 5% 금리로 4억원의 주택담보대출(원리금 균등 방식)을 30년 만기로 빌리면 한 달에 214만7286원의 원리금을 갚아야 한다. 연 소득 6000만원이라면, DSR(42.95%)이 한도 40%를 초과한다. 반면 같은 조건의 대출을 만기만 50년으로 늘리면 한 달 원리금은 181만6555원으로 준다. DSR은 연 소득 6000만원 기준에서 36.33%로 낮아진다.

이 때문에 초장기로 대출을 갚기 힘든 고령층까지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을 이용해 DSR을 우회한 사례가 나왔다. 현재 대부분 은행이 출시한 초장기 주택담보대출에는 별다른 제한이 없다. 시중은행 중에서는 신한은행만 40년 이상 주택담보대출에 ‘만 34세 이하’ 연령 제한을 뒀다. 한국주택금융공사는 40년 이상 만기 특례보금자리론에 나이 제한을 두고 있다. 이에 금융당국은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전 은행권에 연령 제한을 두는 방안을 검토하고 나섰다.

다만 전문가는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을 일부 제한하는 것으로, 가계부채 급증을 막긴 힘들다고 지적한다. 우선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은 전체 가계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 가계부채가 올해 3월부터 증가하기 시작했지만, 시중은행에서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을 취급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달부터다.

만기를 초장기로 늘리면 한 달 원리금 부담은 낮출 수 있어도, 총 이자 부담은 늘어난다. 이 때문에 원리금 부담이 지나치게 큰 일부 사례를 제외하고는 해당 상품 이용자가 급격히 늘어나긴 힘들다는 분석도 있다.

전문가는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와 특례보금자리론 같은 정책모기지 공급 효과가 가계부채 증가를 자극했다고 지적한다. 또 금리 인상이 고점에 달았다는 시장의 기대를 키운 통화정책도 최근 가계부채를 늘리는데 한몫했다고 본다.

하지만 정부가 이러한 가계부채 증가의 근본 원인을 건드리지 못하는 것은 부동산 경착륙에 대한 우려감이 여전히 남아있어서다. 성태윤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경기 침체와 부동산 가격 하락을 우려해 가계대출을 적극적으로 제어하지 못한다는 인식을 시장에 주면, 필요 이상으로 가계부채가 급증할 가능성이 크다”며 “가계부채를 어느 이상으론 용인하지 않겠다는 일관된 정책 태도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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