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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감정으로 오염수 선동 문제…과학이 ‘괴담’ 이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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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2호 16면

운동권 출신 횟집 사장 함운경

“네모(Nemo) 선장을 동경했습니다. 그래서 네모입니다.”

전북 군산에 ‘네모선장’이라는 횟집이 있다. 그 횟집에서 네모난 얼굴을 하고 있다는(자신도 공감) 사장이 나왔다. 수조에 있는 횟감을 건져 올리기 위해, 그의 손에는 뜰채가 들려 있었다. 한때, 그의 손은 시위 구호를 따라 하늘로 치솟았다. 함운경(60). 운동권에서 자영업자로 변신한 그를 지난 3일 찾았다.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논란이 채 식지 않은 날이었다.

지난 4일 오전 전북 군산시의 횟집 ‘네모 선장’에서 운동권 출신 함운경 대표가 홍어를 손질하고 있다. 함 대표는 “내가 살 수 있는 건 가게를 찾아주시는 손님들 덕분”이라고 말했다. 최기웅 기자

지난 4일 오전 전북 군산시의 횟집 ‘네모 선장’에서 운동권 출신 함운경 대표가 홍어를 손질하고 있다. 함 대표는 “내가 살 수 있는 건 가게를 찾아주시는 손님들 덕분”이라고 말했다. 최기웅 기자

정부, 방사능 측정 등 조치 취했어야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관련해 야권에 부정적 입장이다.
“자영업자로서 괴담이 퍼져 수산업 전반이 힘들어질까 싶었다. 12년 전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 지금 방류하고자 하는 양보다 1만 배는 더 많은 방사능이 누출됐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대한민국 해안가에서 계속 방사능을 측정했을 때 의미 있는 변화가 전혀 없었다. 당시 오염수 1만분의 1을 30년간 쪼개서 내보내는 것인데, 문제가 없다고 대다수의 전문가가 말한다. 걱정은 하되 정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해야 하는데 야권은 위기감만 조성하고 정부에 흠집 내기만을 위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과학과 괴담의 싸움이면 언젠가 과학이 승리한다. 광우병도 그렇게 지금까지 모든 루머들이 그랬다. 그런데 지금은 야권이 여기에 ‘반일감정’이라는 새로운 축을 더한 것이 가장 문제이다. 합리적이지 않은 반일 감정으로 국민을 선동하고 있다. 나도 전두환이랑 싸우기 위해 마르크스·레닌주의, 주체사상 등 다양한 무기를 찾았는데 가장 강력하고 정쟁화하기 쉬운 게 반일주의와 민주화운동이다. 그런데 지금은 독립한 지 70년, 민주화 된 지 40년이 다 돼간다. 아직도 독립운동을 하고 검사 독재와 싸운다는 사람들을 보면 같은 시대에 사는 게 맞나 싶다.”

함운경 대표는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재학 중이던 1985년 삼민투(민족통일·민주쟁취·민중해방 투쟁위원회)위원장으로 서울 미국문화원을 점거 농성했다. 586운동권의 상징이었다. 그는 “횟집을 운영한 지 3년이 다 돼간다”며 “손님들이 필요한 게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좋은 경험을 선사할지, 정치할 때보다 고민이 많은 요즘이다”고 전했다.

손님이 많이 줄었나.
“야권에서 계속 부정적인 말을 하고 그런 말들이 객관적인 사실 없이 퍼지니 손님이 많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평소에 회를 즐기는 손님들도 횟집에 찾아와 찝찝해서 먹기 힘들다고 할 정도로 영향이 컸다. 횟집을 운영하는 다른 동료는 가게가 텅텅 비었다며 망하는 거 아니냐고 연락이 왔다. 내가 ‘6개월만 버텨라, 그러면 결국 사실이 밝혀지고 다 없던 일이 된다’고 말했는데 6개월을 버틸 여력이 어딨냐며 한탄하더라. 다행히 요즘 손님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다. 회를 먹지 않는 것은 자유지만, 거짓 선동에 속아 걱정을 하고 좋아하는 음식을 소비 하지 못하는 시민이나,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장사를 접은 상인들만 안타까울 따름이다.”
정부 대응에 아쉬운 점은.
“정부도 일을 분명히 크게 만들지 않을 수 있었다. 처음에 해양수산부의 입장 표명이 너무 늦었다. 정부가 앞장서서 ‘피해 없게 바닷물 방사능 농도 측정하고 있다’, ‘이러이러해서 수치적으로 안전하다’, ‘피해 없도록 주시 중이다’ 등 괴담이 나오기 전에 기본적인 조치들만 취했어도 어민들이나 시민들의 불안감이 이 정도로 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민주당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그제야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했다는 점에서 발표 시기가 매우 늦었다.”

프랑스의 작가 쥘 베른이 1869년 발표한 해양 사이언스 픽션 소설 『해저 2만리』 주인공의 이름을 따지었다는 횟집 ‘네모 선장’은 그의 새로운 정착지이자 삶의 터전이다. 소설 속 선장 이름 네모(Nemo)의 어원은 라틴어로 ‘누구도 아니다’를 뜻한다. 인도의 왕자였지만 대영제국에게 가족과 재산 등 모든 것을 잃고 잠수함의 선장이 된 네모는 넓은 바다에서 자유와 조국의 독립을 추구한다. 함 대표는 “손님 중에는 얼굴이 네모나서 ‘네모 선장’이냐고 묻는 분들도 계시는데 공감하지만 그건 전혀 아니다”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네모 만큼 그는 각진 삶을 살아왔다.

1985년 5월 함운경 삼민투위원장이 미국문화원 건물에서 미국에게 광주학살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고있다. [중앙포토]

1985년 5월 함운경 삼민투위원장이 미국문화원 건물에서 미국에게 광주학살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고있다. [중앙포토]

누구보다 투쟁심이 강했던 것 같은데.
“그 당시에는 그랬다. 학교에 갔는데 경찰들이 밥 먹을 때까지도 감시를 하더라. ‘이게 지식의 상아탑이라는 대학이라고?’라는 의구심이 들었고 이걸 뒤엎지 않으면 안 되겠더라. 자기 국민을 학살하고 그 피를 대가로 집권 한다는 게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도 폭력은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미국문화원을 점거했을 때도 유리창 하나 깨지 않았다. 당시 유명했던 창 바깥으로 몸을 절반 이상 빼낸 사진도 그래서 나왔다. 경찰들은 치외 법권이라 들어오지 못하고 기자들은 옆 건물로 올라와 소리치며 서로에 대해 질의를 했는데 바람이 심해 들리지 않았다. 찾다 찾다 화장실 창문이 그나마 몸을 빼낼 만큼 커서 거기서 이야기를 전달했다.”

소설 속 ‘네모 선장’ 동경, 가게 이름 지어

그 누구보다 열심히 학생 운동을 했기 때문일까. 민주화 운동의 결실에 대해 그는 아쉬운 점이 한둘이 아니다. 함 대표는 “우리나라에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게 해도 모자란 데 정쟁화를 통해 계속해서 대한민국을 깎아내리는 것 같아 아쉽다”며 “민주화 운동을 통해 얻었던 자유, 군부독재 타파 등 긍정적인 결실들과는 별개로 아직도 ‘누군가와 싸워야겠다’라는 마음을 가진 정치인들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횟집은 어쩌다가 시작하게 됐나.
“시작은 먹고살기 위해서였다. 정치에 낙방하고 조경사업을 시작했는데 관급공사 수주를 위해서 정치권 인사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했다. 정치권에 오래 몸을 담았는데도 그런 사람들을 만나려고 앉아 있으면 내가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결국 그만뒀는데 마침 추석 때였다. 돈은 벌어야 하는데 할 일이 없으니 멸치 선물 세트를 팔았다. 여기저기 공장을 찾아다니고 부딪히다 여기까지 왔다. 하다 보니 ‘오히려 장사가 의뭉스럽지 않고 솔직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뜻인가.
“식재료 파는 것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질 좋은 음식을 제공하고,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면 된다는 점에서 명확하다. 정치인들을 상대하는 것처럼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상대에게 비위를 맞추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손님들에게 좋은 상품을 팔기 위해 2017년부터 밀키트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원하는 두께로 회를 썰어 먹을 수 있게 온라인으로 필레(생선의 등뼈와 평행한 한쪽을 따라 길이 방향으로 절단하여 뼈에서 분리한 생선 살) 형태로도 회를 팔았다. 그 당시에는 흔치 않았던 방식인데 맛이 있었는지 손님들이 가게는 없냐고 묻더라. 그래서 2021년 8월 ‘네모 선장’이라는 가게를 오픈 했다.”

함 대표는 1996년 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관악갑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낙선했고, 2000년 고향 군산으로 돌아와 16대 국회의원 선거에 재도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 2002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2006년 전국동시지방선거, 2016년 20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연이어 군산에서 출마했지만,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횟집을 하며 인상 깊었던 일은.
“지난해 대선 기간에 당시 윤석열 대선 후보를 만나고 지지를 선언했다. 그런데 그 이후로 몇몇 친구들이나 손님들은 발걸음이 줄더라. 그리고는 오히려 다른 정치 성향을 가진 손님들이 찾아와 잘 봤다며 말을 걸기도 하더라. 회의 맛이 변한 것도 아니고 내가 변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정치적 발언의 영향이 이렇게 크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가 그만큼 정쟁화됐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는 어떻게 지낼 예정인가.
“21살의 함운경은 삼민투 위원장이라는 직책을 짊어지기에 너무 어렸다. 감당하기 힘들 일이었지만 잘해냈다고 생각한다. 잡혀가고 사람도 잃고 여러모로 힘들었지만,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내 선택은 똑같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더 단단하고 성숙해졌다. 자영업자로 삶을 꾸려 나가다 보니 정치할 때는 보이지 않던 시민들의 삶이 보이기 시작했다. 힘든 일도 있지만 감사한 일도 많다. 대한민국의 어두운 시기의 중심에 있었던 만큼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더 좋은 민주 공화국이 될 수 있도록 자리에 구애받지 않고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고 싶다.”

네모처럼 각진 삶을 살아왔던 그지만 마음은 여전히 순수했다. 그는 “소설을 읽고 역경 속에서 모험하고, 그 모험에서 얻은 재산을 통해 피압박민들을 지원하는 네모 선장에게 매력을 느꼈다”며 “나도 네모 선장처럼 바닷속에 숨겨진 보물들을 세상에 선보이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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