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워서 좋네" 맛까지 지켰다…앱솔루트 보드카 병의 비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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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카 ‘앱솔루트’는 500밀리리터(㎖) 들이 종이병 보드카를 영국의 수퍼마켓 체인 테스코에서 판매하고 있다. 사진 앱솔루트

세계적으로 ‘탈(脫)플라스틱’ 움직임이 확산하는 가운데 제지 업계가 액체를 넣어도 새지 않는 종이병, 전자레인지에 데워도 타지 않는 종이그릇처럼 ‘한계’를 극복한 신제품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10일 식품·제지 업계에 따르면 포장재를 플라스틱에서 종이로 바꾸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 롯데웰푸드는 카스타드·엄마손파이의 완충재를, 해태제과는 홈런볼의 트레이를, 유한킴벌리는 방역 마스크 포장재를 플라스틱 또는 비닐에서 종이로 각각 바꿨다.

종이 내부 플라스틱·합성수지로 코팅

‘물에 잘 녹고 불에 잘 타는’ 종이의 성질을 뛰어넘은 비밀은 ‘코팅 기술’이다. 종이 표면에 플라스틱이나 합성수지 등으로 코팅막을 만들어 산소·수분·냄새 등을 차단하고, 내용물의 보존성을 높이는 게 핵심이다. 한솔제지는 생분해 포장재인 ‘프로테고’를, 무림페이퍼는 ‘펄프몰드’를 각각 개발했다. 종이 내부에 수용성인 코폴리머·실리카 등 고분자 수성 코팅제를 입히는 방식으로 종이의 기능적 한계를 보완했다.

김영희 디자이너

영국의 대표 스카치 위스키 ‘조니워커’는 종이병에 담은 블랙라벨을 올해 하반기부터 판매할 예정이다. 사진 디아지오

해외에선 종이 포장재 도입이 더 활발하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지난 2일(현지시간) 종이병에 담긴 와인 ‘레드브룩 에스테이트 바쿠스 2021’ ‘칸티나 고치아 로쏘 2020’과 진 ‘그린올스 런던 드라이’ 등이 곧 출시된다고 보도했다. 종이병(약 82g)은 유리병보다 5배 이상 가벼워 휴대가 간편하고 재활용성도 우수하다는 설명이다.

대형 유통 업체인 테스코는 최근 영국에서 보드카 종이병에 담긴 500mL짜리 ‘앱솔루트’ 판매를 시작했다. 위스키 ‘조니워커’는 지난 2020년 종이병 시제품을 출시한 데 이어 올해 안에 소매점에서 판매를 시작할 예정이다. 앱솔루트는 종이병 내부를 플라스틱으로, 조니워커는 내부를 친환경 합성수지로 코팅했다. 앱솔루트 측은 “종이병은 펄프 57%와 플라스틱 43%로 만들어졌다. 액체를 잘 보관하기 위해 내부를 코팅과 뚜껑에 플라스틱이 사용됐다”며 “향후 플라스틱을 ‘제로’로 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덴마크 맥주 회사 칼스버그는 지난해 목재섬유병 시제품 8000개를 만들어 소비자 테스트를 진행했다. 병은 목재섬유로 만들었고, 내부는 식물성 플라스틱으로 코팅했다. 회사 측은 “맥주 맛과 탄산을 플라스틱보다 더 잘 보호한다”고 소개했다.

한솔제지는 국밥을 종이용기에 담아 전자레인지에 돌릴 수 있는 패키징을 만들었다. 신제품은 조만간 편의점 등을 통해 판매할 예정이다. 고석현 기자

김영희 디자이너

위스키 맛 그대로…“와인 1년6개월 보관 가능”

맛에는 문제가 없을까. 조니워커 측은 “식품 안전 기준을 충족하고 위스키 품질을 저해하지 않아 여전히 유리병에 담긴 것처럼 훌륭한 맛을 낼 것”이라고 했다. 텔레그래프는 종이병 와인에 대해 “최장 1년 6개월까지는 제품 품질에 문제없이 보관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탈플라스틱’ 바람을 타고 종이 포장재 시장은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글로벌인포메이션(GII)에 따르면 세계 종이 포장 시장 규모는 지난해 3718억 달러(약 475조원)에서 2028년 4626억 달러(약 591조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제지 업계 관계자는 “플라스틱보다 종이 제조 시 탄소 발생량이 적고, 재활용률은 월등히 높다”며 종이 포장재 확대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해 폐기물 분리배출 비율은 종이류가 48%로 가장 많았다. 이어 플라스틱(28%), 유리(11%), 금속(10%) 순이었다.

해결해야 할 숙제도 있다. 식품 포장지는 내용물을 잘 보관하기 위해 방습·보향·진공 ‘삼박자’가 잘 갖춰져야 하는데, 종이는 냉동→해동 등 급격한 온도 변화에 취약하다. 새 플라스틱 용기를 생산하는 것보다 경제성이 떨어지는 것도 단점이다. 앱솔루트와 조니워커도 뚜껑에는 각각 플라스틱, 알루미늄을 썼다. 액체가 새지 않도록 결착하는 기술은 한계가 있어서다.

차준홍 기자

‘하이브리드 종이’ 脫플라스틱 마중물 될 것

류정용 강원대 제지공학과 교수는 “해외에선 종이를 생산 과정과 재활용에서 경제성이 큰 친환경 소재로 인식하고 있다”며 “내연기관차와 전기차 사이에 하이브리드차가 있듯이 종이와 플라스틱의 결합은 플라스틱 저감을 앞당기는 연결고리 역할을 할 것”이라며 “정부가 제지 신기술 개발 지원과 사용 확대를 위한 마중물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석현 기자 ko.sukh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