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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철재의 전쟁과 평화

최전방 장병의 자부심, 70년 평화를 지켜온 원동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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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이철재 군사안보연구소장·국방선임기자

이철재 군사안보연구소장·국방선임기자

강원도 철원 최전방의 적근산(赤根山·1073m)은 휴전선과 가깝기도 하지만, 정상에서 북한을 훤히 내려다볼 수 있다. 그곳에 육군 제15 보병사단(승리부대)이 있다. 조선시대 산성 터가 있다고 하니, 예부터 군사적 요충지였던 모양이다.

붉은 암석이 많아 붙인 이름인데, 산세가 무척 험하다. 적근산 부대까지 뚫린 전술도로는 구불구불하면서도 경사도 높은 난코스다. 어지간한 운전 실력이 아니면 핸들을 잡기가 엄두가 안 날 정도다. 그래서 적근산 부대는 겨울이면 난방용 기름을 CH-47 수송헬기로 실어왔다. 눈이 내리면 산 아래서 식사와 부식을 케이블카로 받았다.

안진수 원사는 하사 때 적근산 부대서 근무했다. 그는 “당시 전술도로가 포장이 안 돼 차편이 거의 없었다”며 “외박이나 휴가를 받으면 걸어서 출타했고, 걸어서 복귀했다”고 말했다.

“내가 아니면 누가 지키겠는가”
최전방 30년 생활 노병의 일성
그들의 진가 깎아내리는 사회
목숨까지 내건 용기 존중해야

휴전선 155마일 답사길에서 만난 그들

서부전선 최전방 철책선. 평온한 풍경 속엔 수많은 장비와 무기가 숨겨져 있다. 지금도 경계를 서는 장병들이 있다. [사진 박영준]

서부전선 최전방 철책선. 평온한 풍경 속엔 수많은 장비와 무기가 숨겨져 있다. 지금도 경계를 서는 장병들이 있다. [사진 박영준]

적근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에도 부대가 자리 잡았다. 이 부대엔 5층짜리 아파트 한 동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지금은 독신 간부 숙소로 쓰이지만, 한때 간부들이 가족들과 살던 시설이었다. 텅 빈 놀이터가 그 흔적이다.

그 시절 장을 보려면 차를 타고 한참을 나가야만 했다. 민통선(민간인통제선) 안에 부대가 있기에 주변엔 민가조차 찾아볼 수가 없었다. 지금도 주변에서 물건을 사거나 음식을 먹을 곳이 없다.

강원도 화천 최전방을 지키는 제7 보병사단(칠성부대)의 대대장 박세영 중령은 하루 수면 시간이 5시간 남짓이다. 그것도 두 번 나눠서 잔다. 야간 경계작전도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한 달에 한 번 휴가 때만 가족 얼굴을 볼 수 있다.

최전방의 삶은 팍팍하다. 그런데도 안진수 원사는 30년 군 경력을 모두 최전방에서만 보냈다. 좀 더 편하고 안락한 환경을 마다한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내가 아니면 이곳을 누가 지키겠냐’는 자부심 때문이다. 그 힘으로 지금까지 왔다”고 대답했다. 박세영 중령도 “철책선 경계 근무를 하다 보면 저절로 자부심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박세영 중령이나 안진수 원사뿐만이 아니었다. 올해 정전협정 70주년과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지난 1월부터 6개월간 강원도 고성에서부터 경기도 파주에 이르는 최전방을 답사하는 도중 만난 장병들은 모두 “자부심”을 꺼내 들었다. 최전방에서 잔뼈가 굵은 김영식 전 제1 야전군사령관에게 자부심의 근원을 물어봤다.

“최전방 복무의 자부심은 크게 세 가지에서 비롯한다. 우선 아무나 휴전선을 지키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신체가 건강하고 신원조회에서 문제가 없는 사람만이 최전방에 간다. 근무를 마치고 생활관으로 돌아가면 마음이 뿌듯해진다. 전체 휴전선 155마일(248㎞)에서 내가 맡은 구역은 정말 작고 보잘것없지만, 최선을 다해 경계를 섰기에 오늘 하루도 한반도가 평화로울 수 있다는 보람이 느껴지는 게 둘째 이유다.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후방에서 일상을 이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군가 ‘진짜 사나이’의 가사 중 ‘부모 형제 나를 믿고 단잠을 이룬다’는 구절이 절로 나온다.”

“대한민국의 2%만 근무할 수 있어”

2007~2008년 제12 보병사단(을지부대)에서 대대장을 지냈던 박언수 육군 교육사령부 부이사관은 당시 한 방송 다큐멘터리에 출연해서 ‘대한민국 2%만 최전방에서 근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철책선 경계가 힘들지만, 가치 있는 일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며 “다행히 많은 병사가 그렇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전방 장병이 군 복무에 대해 자랑스러워하는 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사회에서도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한구석에 분명히 있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현실은 사회가 그들의 헌신에 감사해 하기는커녕 조롱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1월 불거진 여고생 위문편지 사건이 대표적이다. 서울의 한 여고에서 최전방 부대에 위문편지를 보냈는데, 그 내용이 “인생에 시련이 많을 건데 이 정도는 이겨줘야 사나이” “눈 오면 열심히 치우세요” 등 군 생활을 비아냥거리는 것이었다. 학생의 치기 어린 행동이었다.

그런데 당시 전교조는 성명서를 내고 개인정보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해 학생들이 비난을 받게 하고, ‘봉사활동’이라는 이름으로 강압적으로 위문편지를 강요한 학교 측을 비판했다. 하지만 학생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 무례를 저지르게 한 데 대한 자기반성은 성명서에 단 한 줄도 없었다.

이처럼 군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차가울 때가 많다. 군에겐 한국 현대사에서 쿠데타를 저지르고 독재에 가담한 원죄가 있다. 군 생활이 억압과 부조리로 얼룩졌던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지금 휴전선 너머 북한을 노려보는 장병과는 큰 상관이 없는 과거 얘기다.

“당신의 복무에 감사한다”에 담긴 뜻

지구상 모든 생명체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 본능적으로 피하려고 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직업인 군인은 특별하다.

군인이 생존 본능을 거스르는 게 단순히 폭력적인 명령이나 억압적인 위계질서 때문은 아니다. 세계적인 군사사(軍事史) 학자인 마틴 판 크레펠트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교수는 “인간은 삶과 죽음을 의지하고 있는 집단을 위해 싸운다”고 말했다.

우연히 마주친 장병에게 “당신의 복무에 감사한다(Thank you for your service)”라고 인사하는 미국을 본받자는 얘기가 아니다. 최소한 장병의 복무를 하찮게 여기진 말자는 것이다. 같은 국민이자 사회 구성원인 장병을 깎아내리는 것은 누워서 침 뱉기와 다름없다.

병사에서부터 부사관·장교·장성까지 한결같은 자부심이 모여 정전 이후 이 땅에서 70년간 ‘제2의 6·25’를 막을 수 있었다. 대한민국은 그들의 피와 땀 위에서 번영과 민주주의를 일궈냈다. 장병의 자부심이 정당하면서도 존중받아야 할 이유다.

이철재 군사안보연구소장·국방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