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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3배인데 약국 1곳"…1170억 쏟은 잼버리, 예고된 부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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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7일 전북 부안군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프레스센터에서 운영 상황 등을 브리핑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7일 전북 부안군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프레스센터에서 운영 상황 등을 브리핑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준비 부실로 세계적인 망신을 당한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행사가 뒤늦게 수습 국면을 맞고 있다. 앞서 폭우와 폭염, 벌레, 화장실과 조명 문제 등 낯뜨거운 문제점이 부각되는 와중에도 컨트롤타워는 작동하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가 대책 마련을 공론화 하고서야 뒤늦게 출구를 찾은 모양새다. 준비 기간 6년에 1170억원의 예산이 들어간 대규모 행사라고 믿기 어려운 현실에 “어른들이 부끄럽다”는 탄식이 이어졌다.

“여의도 3배 야영장에 달랑 약국 1곳인데도 방치”

잼버리 준비 상황을 지켜본 관계자들 사이에선 ‘예고된 행정 실패’였다는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5~6일 현장을 찾은 한 자원봉사자(약사)는 “아이들이 벌레에 물렸을 때 처치할 연고 하나 없다는 걸 보고 한숨부터 나왔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현장에서 나온 증언을 종합하면 서울 여의도 3배 면적(8.84㎢) 규모의 야영지 안에 약국이 한 곳 있었다는 것이다. 한 곳의 병원은 잼버리병원과 연계된 ‘병동 약국’으로, 의사 처방에 따른 전문의약품만 구비하고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보건의료단체의 한 관계자는 “전북도와 ‘봉사 약국’ 5개가 들어가는 방안을 지난 3월 논의했었다. 한창 준비를 하던 중에 조직위로부터 일방적으로 거절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조직위 측이 ‘알아서 하겠다’고 통보하면서 지역 의약 단체와 협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늪지에서 한여름에 행사하면 벌레가 많을 것이란 건 일반인도 예상 가능한데, 대처하지 못한 건 조직위 잘못이다. 각계 전문가들과 충분히 소통하며 준비했어야 했다”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단체 관계자는 “민간 협조 요청을 거절하더니 부실 운영 문제가 드러나자 그제야 연락이 왔다. 이렇게 민간 참여로 급조해 진행하는 건 대회 준비의 총체적 부실 사태를 드러낸다”고 꼬집었다.

조직위 운영에 예산 74% 사용…열악한 인프라 방치  

예산 사용 면에서도 준비 부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7일 정부와 전북도 등에 따르면 새만금 세계잼버리에 투입된 총예산 약 1170억 원 중 74%인 870억원이 조직위 운영비 및 사업비로 잡혔다.

7일 '2023 제25회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열리고 있는 전북 부안군 하서면 야영장 델타 구역에서 대회 참가자 등이 각국 부스에서 각국 문화를 체험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7일 '2023 제25회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열리고 있는 전북 부안군 하서면 야영장 델타 구역에서 대회 참가자 등이 각국 부스에서 각국 문화를 체험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반면, 상하수도와 하수처리시설, 주차장, 덩굴터널 등 기반시설 조성에는 205억원이 편성되는 데 그쳤다. 천막 샤워장과 오물 변기 등으로 문제가 됐던 화장실과 샤워장, 급수대 등 숙영 편의시설 설치 등 시설비에는 130억원만이 집행됐다. 전체예산의 11%에 불과했다.

주무 부처인 여성가족부와 전라북도 공무원들이 잼버리 준비 활동을 이유로 90여건의 외유성 출장을 다녀온 사실(8월 7일자 중앙일보 1면)도 드러났다. 전북도청 관계자 5명은 2018년 5월 ‘잼버리 성공 개최 사례 조사’ 명목으로 스위스와 이탈리아로 6박 8일 출장을 다녀왔다. 인터라켄, 루체른, 밀라노, 베네치아 등 관광 명소가 포함됐다. 스위스와 이탈리아는 잼버리를 개최한 적이 없다. 전북 부안군은 잼버리 개최가 확정되자 ‘크루즈 거점 기항지 조성을 통한 잼버리 개최지 홍보’를 명목으로 2차례 출장을 다녀오기도 했다.

폐지 예고된 여가부가 주무 부처…‘네탓 공방’ 이어져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지원 특별법’에 따르면, 조직위원회는 여가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대회 전반을 운영한다. 자금을 차입하거나 물자를 도입할 수 있고 공무원 파견, 예산 요청 등을 할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여가부에 권한이 집중돼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여가부는 이번 정부에서 ‘폐지’가 예고된 상태였다.

잼버리 조직위원장이 5명이나 됐지만, 책임소재는 모호했다. 김현숙 여가부 장관, 김윤덕 의원(더불어민주당, 전북 전주갑) 2인 공동조직위원장 체제였다가 지난 2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강태선 한국스카우트연맹 총재가 공동조직위원장에 임명됐다. 조직위 관계자는 “5명의 위원장이 어떤 역할을 딱 나누기보다는 서로 협업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김관영 전북도지사는 실무를 담당하는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전북도와 조직위도 ‘네탓’을 하고 있다. 전북도 관계자는 “정부에 폭염 대책 등을 위해 수년간 예산 증원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북도에 따르면 전북도의회는 지난 6월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안전대책 관련 국비 예산 투입 촉구 건의안’을 채택하고 128억원의 국비 지원을 요청했으나 정부는 일부 국비만 지원했다고 한다. 도 관계자는 “이번 잼버리는 조직위가 주관해 예산 사용 등에 있어서 전북도가 개입할 여지가 무척 적었다”며 “대회가 준비 부족 등으로 난항을 겪자 일부에서 전북도에 책임 전가를 하려고 하는데 무책임한 처사”라고 주장했다.

 4일 전북 부안 새만금 부지에서 열리고 있는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현장에서 폭염과 열대야로 온열질환자가 속출하고 있다. 최기웅 기자

4일 전북 부안 새만금 부지에서 열리고 있는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현장에서 폭염과 열대야로 온열질환자가 속출하고 있다. 최기웅 기자

“文-尹 정권 모두의 책임…완주 후 잘잘못 따져야” 

잼버리 부실 운영의 책임은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에 걸쳐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치권에서는 잼버리를 유치하고 6년의 준비 기간 동안 어느 정부의 역할이 더 결정적이었냐를 두고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말 그 동안 무슨 준비를 했는지 궁금하다. 문재인 정부가 준비를 했지만, 15개월 동안 윤석열 정부도 나름대로 준비를 했어야 했는데 미흡했다. 조직위와 전북도가 그렇고 중앙부처인 여가부의 판단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준비도 부족했고 날씨도 너무 안 좋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참가자들이 한국을 떠날 때까지 좋은 기억과 경험을 갖고 갈 수 있도록 충분히 돕고 있다는 감동의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며 “일단 끝까지 완주하고 난 뒤에 잘잘못을 따져야 한다. 강력한 회초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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