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정현목의 시선

‘이생망’ 말고 “그래, 살아보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정현목 기자 중앙일보 문화부장
정현목 문화부장

정현목 문화부장

‘이생망’. 이번 생은 망했다는 뜻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기에 살아갈 의미가 없다는 절망의 표현으로 젊은이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플레이어가 죽으면, 게임을 다시 시작하는 리셋에 익숙한 세대다운 표현이다.

하지만 인생이 게임처럼 그리 간단한가. 마음대로 안 풀리면 전원을 꺼버려도 될 만큼 가치 없는 시간들일까. 최근 종영한 두 편의 드라마는 절대 그렇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지난달 23일 종영한 드라마 ‘이번 생도 잘 부탁해’(tvN)는 인생 19회차를 사는 반지음(신혜선)이 주인공이다. 열아홉 번째 삶을 사는 주인공은 누군가에겐 부러움의 대상일지 모른다. 하지만 전생을 기억한 채, 지역·성별을 초월한 환생을 거듭하는 지음에게 새 삶은 기구한 운명의 반복일 뿐이다. 어차피 다시 태어날 걸 알기에 이번 삶에 욕망이나 애착, 목표 같은 게 생길 리 없다. 삶의 의미 또한 찾기 힘들다. 회차만 쌓여가는 그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번 생도 잘 부탁해’와 ‘악귀’
두 드라마가 보여준 삶의 의미
가장 무서운 건 자기만 아는 것

18회차 인생에서 소녀 윤주원으로 살아갈 때 만난 어린 문서하와의 사랑이다. 교통사고에서 서하를 남겨둔 채 사망한 주원은 19회차 인생에서 어린 지음으로 환생하고, 청년이 된 서하(안보현)를 찾아내 그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서하가 여전히 주원을 잊지 못하고 상처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뒤, 자신이 죽은 뒤 남은 자들의 슬픔을 처음으로 깨닫는다. “여러 번 사는 동안 나의 아픔만 선명했어. 이번 생은 달라. 내 죽음 뒤에 남겨진 사람들. 그들의 슬픔과 마주하게 되는 이상하고 신선한 열아홉번 째 내 인생.”

환생을 거듭하며 수백 년 간 살아온 주인공의 이번 삶을 특별하게 만든 건, 누군가를 사랑하고 아껴주고 보듬어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 대상은 연인 서하뿐 아니라 17, 18회차 인생에서 연을 맺은 조카와 여동생으로도 확장된다. 결국 이 드라마는 삶의 의미와 가치는 사랑·우정·가족애 등 나를 둘러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죽음의 문턱에서 느끼는 가장 큰 후회는 부와 명예 같은 세속적 성취를 못 이룬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더 잘해주지 못한 것이라고 하지 않나.

지난달 29일 종영한 드라마 ‘악귀’(SBS) 또한 오컬트 형식을 빌려, 이 시대 청춘들에게 삶의 의지를 북돋운다. 드라마는 악귀에 씐 가난한 공무원 준비생 구산영(김태리)을 주인공으로 가정폭력, 보이스피싱, 고시원 연쇄자살, 불법대출 등 요즘 청춘의 출구 없는 현실을 펼쳐낸다. 드라마 말미에 산영과 민속학 교수 염해상(오정세)에 의해 소멸될 위기에 처한 악귀는 처절한 절규를 쏟아낸다.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악귀는 귀신보다 더 무서운 인간의 탐욕에 무참히 희생된 화가 지망 여중생이었다.

“우린 살려고 했어.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악을 했다고. 근데 니들은 죽고 싶어하잖아. 외롭다고, 힘들다고 죽고 싶어 했어. 진짜 외롭고 힘든 게 뭔지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그렇게 원하던 인생이란 거를 포기하려고 했다고. 그럴 거면 내가 살게.”

악귀에 잠식당할 위기에 처한 산영은 “어둠 속으로 날 몰아세운 건 (악귀가 아닌) 바로 내 자신”임을 깨닫고, 삶의 의지를 다잡는다. 그러고선 악귀를 물리친다.

“난 한순간도 나를 위해 살아본 적이 없었어. 왜 누굴 위해 그렇게 스스로에게 가혹했을까. 내가 날 죽이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 나니 죽을 수가 없었어. 오직 나만을 위해 살아가는 것을 택할 거야.”

‘진짜 악귀는 내 안에 있는 나쁜 생각’이라는 김은희 작가의 주제의식이 이 대사에 응축돼 있다. 인생은 게임이 아니다. 마음대로 안 풀린다고 해서 리셋할 수 없을뿐더러, 리셋한다 해도 그런 태도로는 다음 생에서 더 잘 살 거란 보장도 없다. 위의 드라마들이 보여준 것처럼 현재 삶이 의미 있는 건 소중한 만남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고, 너무 힘들어 때론 내려놓고 싶어지는 이 고단한 일상이 누군가에겐 너무나 간절한 삶일 수 있다.

‘이생망의 시대’를 만든 사회와 어른 탓만 하지 말고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게 여의치 않다면 마음가짐이라도 바꿔야 한다. 죽음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빅터 프랭클 박사는 “그대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은 상황이 아니라, 바로 당신 스스로다”라면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삶의 길을 선택할 정신의 자유를 강조했다. ‘이생망’ ‘인생 리셋’ ‘헬조선’ 같은 말은 입 밖에 내지도, 머릿속에 떠올리지도 말자. 자신을 어둠으로 몰아넣던 자기 안의 진짜 악귀를 떨쳐낸 산영의 대사처럼 “그래,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