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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김경숙의 실리콘밸리노트

스타벅스 바리스타 실습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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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정김경숙 전 구글 글로벌커뮤니케이션 디렉터

정김경숙 전 구글 글로벌커뮤니케이션 디렉터

이름을 새긴 초록색 에이프런을 두르고 에스프레소 머신 앞에서 커피샷을 내리고 스팀기로 우유 크림을 만든다. 주문한 고객 이름을 부르며 크림을 예쁘게 얹은 커피를 전해준다. 미국 트레이더조 수퍼, 공유운전 리프트 알바에 이어 ‘실리콘밸리 몸 체험’ 중 하나로, 세계서 가장 유명한 카페 브랜드인 스타벅스에서 바리스타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바리스타를 꼭 해봐야겠다는 계기가 있었다. 17년 전 구글 입사 면접을 보기 위해 하루 일정으로 미국에 간 적이 있었다. 긴 비행시간과 시차로 지친 상황에서 온종일 1대 1 면접을 했다. 당시 최고 리더십팀에 있던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총괄 부사장과 최종 면접을 했다. 인터뷰 후 그가 고생했다며 마이크로 키친(간식거리가 있는 휴게실)으로 나를 안내하더니 무슨 커피를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직접 커피콩을 갈고, 에스프레소 기계에서 원두 커피샷을 내리고, 우유를 스팀기에 넣고 우유 거품을 만들었다. 진심으로 만들어준 커피 한 잔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것 같았다.

구글만큼 까다로운 면접 질문
두 달간 체계화된 교육 받아야
전 세계에 균일한 서비스 제공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그 부사장에 감동하였다. 나도 언젠가 맛있는 커피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대접하고 싶었다. 그리고 두 달 전 스타벅스 바리스타 일을 시작했다. 다양한 커피 제조법을 배워야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1999년 창업해 지금은 전 세계 40만 직원과 3만5000여 매장을 갖고 있는 스타벅스의 성공 비결을 직접 경험해 보고 싶었다.

바리스타는 스타벅스의 핵심이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일관된 품질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비결은 엄격한 채용 과정과 교육 시스템이다. 채용 면접에서는 “대부분의 팀원과 의견이 안 맞을 때, 그러나 내 의견이 너무 좋다라고 확신할 때 어떻게 해결을 하는가. 실제 있었던 사례를 들어달라” 등과 같은 특정 상황에 관한 질문을 한 시간 동안 받는다. 어렵게 면접을 통과해도 교육 전담 매장에 가서 2주간 이론과 실습 교육을 받는다.

교육 첫날 예비 바리스타 전원에게 아이패드를 줬다. ‘바리스타 첫 60일’이라는 교육 프로그램이 들어 있다. 채용 후 두 달 동안 매일 해야 할 내용이 동영상과 텍스트로 제공됐다. 커피 만드는 실기에 앞서, 커피의 역사와 좋은 커피콩 재배 과정, 공정 커피가 중요한 이유, 그리고 커피를 음미하는 방법도 배웠다.

마지막 실습 교육 때는 수십 개의 레시피를 익혀야 했다. 만들고 쏟아 버리고 또 만들고 또 쏟아 버렸다. 한 모금 시음만 하고 쏟아버릴 때는 재료비가 아까울 정도였다. 교육 기간 동안 약 200잔 넘게 연습 삼아 만들었다. 교육에 대한 아까워하지 않는 투자가 전 세계 모든 매장에서 일관된 품질을 제공할 수 있는 비결 같았다.

2주간 교육이 끝나고 실제 매장 근무가 시작됐다. 첫 4주는 선배 바리스타와 짝을 맺어줘서 궁금할 때마다 바로바로 도움을 받았다. 함께 일하는 바리스타들의 협업 문화가 인상적이었다. 손님들이 몰리는 아침 출근 시간에는 대여섯 명의 바리스타들은 눈빛만 주고받으면서 옆 바리스타에게 주문이 밀려있는 것을 보면 바로바로 도와준다. 스토어 매니저와 시프트 매니저는 커피바와 매장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음료 재료를 보충하고 얼음을 나르고 쓰레기통을 비우는 등의 궂은 일을 도맡아 한다. 이렇게 80여개 국가에서 스타벅스가 균일한 품질의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배경에는 신중한 채용 과정, 꼼꼼한 교육 프로그램, 그리고 서로 협업하는 문화가 있었다.

물론 막상 바리스타가 되어보니 ‘현실 바리스타’는 낭만적으로만 바라봤던 바리스타와는 달랐다. 주부습진이 염려될 만큼 물을 계속 만져야 했고, 고객들이 속사포로 쏟아내는 각종 억양의 영어를 알아듣고 주문 시스템에 넣는 일은 비영어 원어민으로서 스트레스가 매우 큰 일이었다. 또한 100가지가 넘는 생소한 음료 이름과 각각의 레시피를 외워야 하고, 메뉴에 없는 주문도 처리할 줄 알아야 한다. 아이스 라테인데 아이스가 없이 달라고 하거나. 휘핑크림을 위에도 얹어주고 컵바닥에도 깔아 달라고 하거나, 개그 콘서트에서나 나올 법한 ‘아이스 핫초콜릿’을 주문하는 경우에는 주문 시스템에 어떻게 넣어야 할지도 막막했다.

라떼 만들 때 우유 온도를 65도에 맞춰 달라는 고객은 차라리 애교에 가까웠다. 또한 두 달 정도 현실 바리스타가 되어 보니 스타벅스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해서 근로 환경과 처우 개선에 목소리를 모으는 것에도 공감이 갔다. 그래도 커피 음료 이름만 대면 레시피가 머릿속에 자동으로 떠오르는 수준까지 올라갔다. 17년 전 구글 부사장이 내게 만들어줬던 실크 빛깔의 카푸치노를 나도 후배들에게 맛있게 내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정김경숙 전 구글 글로벌커뮤니케이션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