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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재진 중심 비대면진료, 과연 기득권 때문일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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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권정현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권정현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환자-의사 간 비대면 진료가 한시적으로 허용되며 국민 4명 중 1명 이상이 편리함을 만끽했다. 이후 위기 단계 하향에 따라 한시적 비대면 진료가 시범사업으로 전환돼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재진 환자 중심’으로 실시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재진 중심’의 원칙에 대해 지속적으로 비판이 나온다. 국민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비대면 진료를 초진부터 허용해야 한다는 산업계의 주장이 대표적이다. 반면 의료계는 환자의 안전성을 들어 비대면 진료 대상을 초진 환자로 확대하는 것에 대해 뚜렷한 반대 입장을 밝혔고, 국회에 제출된 의료법 개정안에도 재진 중심의 원칙이 반영됐다. 논란이 확산하며 재진 중심의 시범사업 설계가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한 결정이라는 비난까지 나왔다.

우리는 선택 과정에서 언제나 그 결과로 맞닥뜨리는 트레이드 오프(trade off)를 고려한다. 비대면 진료에서는 국민의 건강과 안전, 그리고 편리함이라는 두 가치가 상충한다. 초진을 전면적으로 허용하면 대면 진료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반면 전화나 화상만으로는 정확한 진단이 어려워 그만큼 오진 가능성을 키울 수 있다.

비대면 진료를 시행하는 국가들은 대체로 국민의 건강과 안전에 무게를 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비대면 진료가 대면 진료를 대체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미국의학협회(AMA) 또한 비대면 진료가 초진에 적합하지 않음을 권고했고, 코로나19 기간 비대면 진료가 빠르게 확대된 미국에서는 내년 12월 31일부로 초진 허용 등 그간 완화했던 비대면 진료 규제 관련 완화 조치들을 종료한다. 프랑스나 독일은 환자의 초진을 비대면 진료로 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는 듯 보이지만, 보험 적용을 금지해 사실상 초진을 막고 있다.

비대면 진료의 본질이 의료서비스라는 점에서도 국민의 건강과 안전이 우선하는 가치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비대면 진료가 단순히 의사와 환자 간 연결 중개가 아닌 의료전달체계 내 하나의 기능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환자의 건강 보호, 즉 의료 우선 가치에 부합하는 제도화가 필수다. 이러한 측면에서 재진 중심의 비대면 진료를 기득권의 담합으로 몰아가는 것은 온당치 않다. 1988년 원격의료 시범사업 이후 35년간 비대면 진료가 법제화되지 못한 착오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산업계 또한 국민의 건강과 안전이라는 가치를 염두에 두고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권정현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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