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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한 마이클 잭슨에 MZ도 열광…영원한 ‘팝의 황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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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1호 19면

[비욘드 스테이지] 브로드웨이 핫 뮤지컬 ‘MJ’  

마이클 잭슨의 히트곡들로 엮은 주크박스 뮤지컬 ‘MJ’. [사진 Matthew Murphy]

마이클 잭슨의 히트곡들로 엮은 주크박스 뮤지컬 ‘MJ’. [사진 Matthew Murphy]

팬데믹 이후 국내 뮤지컬 시장은 유례 없는 대호황이다. 지난해 역대 최대 규모인 약 4253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했고, 올 상반기 이미 2200억원을 넘어섰다. 팬데믹 보복 소비를 겨냥한 다양한 작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오페라의 유령’ ‘시카고’ 같은 브로드웨이 고전이 여전히 흥행 보증수표다. 그럼 지금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핫한 뮤지컬은 뭘까.

의혹 불거지기 전 전성기만 조명

마이클 잭슨의 히트곡들로 엮은 주크박스 뮤지컬 ‘MJ’. [사진 Matthew Murphy]

마이클 잭슨의 히트곡들로 엮은 주크박스 뮤지컬 ‘MJ’. [사진 Matthew Murphy]

최신작 ‘MJ the Musical’(이하 ‘MJ’)이 요즘 뉴욕에 가면 1순위로 보아야 할 작품으로 꼽힌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히트곡들로 엮은 주크박스 뮤지컬로, 퓰리처상을 2회나 수상한 작가 린 노티지가 대본을 쓰고 영국 로열발레단과 뉴욕시티발레단 출신 안무가 크리스토퍼 휠든이 연출했다. 태양의 서커스 ‘마이클 잭슨 임모털 월드 투어’ ‘마이클 잭슨 원’ 등 볼거리 위주의 마이클 잭슨 쇼는 이미 있었지만, ‘인간 MJ’를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낸 무대는 처음이다.

기다림이 길었던 공연이다. 2020년 개막을 앞두고 팬데믹이 터져 2021년 12월 트라이아웃 공연이 막을 올린 것. 지난해 2월 마침내 브로드웨이 닐 사이먼 극장에 입성했는데, 단숨에 작품성과 흥행성을 인정받았다. 2022 토니상 10개 부문 후보에 올라 남우주연상 등 4개 부문을 석권했고, 지난 7월까지 관객 87만 명, 매출액 1억 2760만 달러를 넘어섰다.

[사진 Matthew Murphy]

[사진 Matthew Murphy]

글로벌 프로젝트도 이미 시작됐다. 8월부터는 북미 투어에 돌입하고, 호주 투어와 웨스트엔드 버전도 준비 중이다. CJENM이 공동제작으로 참여해 한국 공연도 전망이 밝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관계자에 따르면 한국어 버전 제작보다 해외투어 프로덕션 유치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MJ 배역에 싱크로율 높은 캐스팅이 관건인 까닭이다.

놀라운 싱크로율로 극찬 받으며 토니상까지 수상한 마일스 프로스트의 캐스팅도 예사롭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공개 오디션도 진행했지만, 워낙 MJ의 톤이 희귀하다 보니 좀처럼 적임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캐스팅에 난항을 겪던 중, 음악감독이 유튜브에 올라온 한 고등학교 장기자랑 대회 모습을 찍은 핸드폰 영상에서 ‘빌리진’을 부르는 마일스 프로스트를 발견한 것. 음향 엔지니어링을 전공하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마일스 프로스트의 신데렐라 스토리가 시작된 순간이다.

마이클 잭슨의 히트곡들로 엮은 주크박스 뮤지컬 ‘MJ’. [사진 Matthew Murphy]

마이클 잭슨의 히트곡들로 엮은 주크박스 뮤지컬 ‘MJ’. [사진 Matthew Murphy]

흥미롭게도 MJ 배역 뿐 아니라 20여명의 배우 중 한두 명을 빼고는 모두 흑인인데, 앙상블의 절반 이상이 ‘MJ’로 데뷔한 신인이라고 한다. 기존 브로드웨이 안무 스타일과는 다른 마이클 잭슨 크루의 색채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세상에 없는 ‘팝의 황제’가 브로드웨이에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셈이다.

마일스 프로스트는 내년 봄 시작될 웨스트엔드 프로덕션 준비에 들어갔기에 브로드웨이에선 하차한 상태. 바통을 이어 4월부터 공연 중인 뉴 캐스트 일라이자 존슨도 ‘MJ’로 브로드웨이에 데뷔했다. 워크샵 공연 때 청소년기 마이클 역할을 맡은 인연이 있지만 이번에 다시 오디션을 거쳤다는데, 역시 싱크로율이 만만치 않다. 성대모사 수준의 섬세한 미성과 MJ의 개성을 살린 가창, 화려한 무대 매너와 조각 같은 실루엣 등은 마치 마이클 잭슨이 환생한 듯 했다.

[사진 Matthew Murphy]

[사진 Matthew Murphy]

흘러간 옛 노래를 부활시킨 주크박스 뮤지컬은 통상 중장년 관객을 겨냥하지만, 환생한 MJ의 무대에 열광하는 10대들을 보고 있자니 MJ는 결코 흘러간 적 없는 것 같다. 지난해 댄스 서바이벌 ‘스트릿 맨 파이터’에서 한동안 시끄러웠던 안무 표절 시비만 봐도 그렇다. MJ의 시그니처인 문워크 동작을 응용한 두 가지 K팝 댄스 안무의 디테일이 공방에 올랐지만, 뼈대가 되는 문워크 동작은 그저 ‘K팝 안무의 기본기’로 통했다. MJ의 유산이 한국의 MZ 아티스트들까지 지배하고 있다는 얘기다.

사실 MJ에겐 명성만큼 그늘도 있다. 소아성애 의혹 등 MJ를 향한 곱지 않은 시선이 아직 존재하고, 개막 당시 뮤지컬이 그런 의혹을 전혀 다루지 않았다는 비판도 일부 있었다. 하지만 온전한 일대기가 아니라 의혹이 불거지기 전인 최고 전성기의 한 순간에 집중했기에 영리한 선택으로 보인다.

스포트라이트는 1992년 ‘데인저러스’ 월드 투어 리허설 현장에 다큐멘터리 촬영 팀이 투입된 이틀간을 비춘다. 다큐멘터리 팀의 객관적 시선은 팝의 황제에 대한 단순한 추앙을 넘어서기 위한 장치다. 카메라에 우연히 찍힌 MJ의 언행에 의문을 품은 촬영 팀이 던지는 질문들은 완벽주의자이자 박애주의자이면서 자기파괴적이기도 했던 인간 MJ의 복잡한 삶을 들여다보는 창문이 되어 잭슨파이브 시절과 솔로 데뷔를 이룬 청소년기, 그리고 최고 스타가 된 현재를 넘나든다.

세대·인종·젠더 아우르는 공연

장갑 퍼포먼스를 재연하는 MJ역 일라이자 존슨. [사진 Matthew Murphy]

장갑 퍼포먼스를 재연하는 MJ역 일라이자 존슨. [사진 Matthew Murphy]

MJ는 5살 때부터 가족 비즈니스에 투입되는 바람에 음악과 삶 자체를 분리할 수 없었는데, 그래선지 억지스럽기 쉬운 주크박스 공식이 무척 자연스럽게 MJ의 인생사와 히트곡들을 마법처럼 엮어낸다. 아버지의 학대라는 트라우마를 품고 그 강압성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모순된 인생의 파노라마다. 예산을 뛰어넘는 최고의 퍼포먼스와 화려한 무대를 고집하며 코러스와 댄서를 다그치고 스태프와 충돌하는 현재의 MJ를 기른 건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내면의 악마라는 플롯이다.

27세 나이에 뉴욕시티발레단 상임안무가에 올랐던 천재 무용가 크리스토퍼 휠든의 연출은 예술성의 극치다. 관객의 시선 흐름과 감정 몰입을 정확히 계산해 배우의 액션이 펼쳐지는 동안 리허설룸이 어린 시절의 집으로, 방송국 스튜디오로, 콘서트 현장으로 잠시도 끊기지 않고 유기적으로 흐르는 장면전환은 경이로울 정도다.

무용가의 연출답게 댄서에 대한 리스펙트도 돋보였다.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히는 ‘스무스 크리미널’은 MJ의 독보적인 춤이 실은 프레디 아스테어, 밥 포시, 니콜라스 브라더스 같은 전설의 댄서들에게 영감 받았음을 고백하는 장면이다. 잘 보니 저들의 고전적인 댄스에 문워크, 린댄스 등의 요소가 숨어 있고, MJ의 세련된 터치가 더해져 요즘 아이돌 댄스의 ‘기본기’가 완성된 것이다. ‘고전 재해석’의 미덕에 다름아니다.

[사진 Matthew Murphy]

[사진 Matthew Murphy]

마침내 내면의 악마가 등장하는 ‘스릴러’ 장면에 이르면 속된 말로 ‘찢었다’ 싶다. 더없이 화려했던 실제 ‘스릴러’ 공연 세트를 재연하며 ‘둥둥둥’ 심장을 두드리는 강렬한 드럼 비트로 관객을 홀려놓고, 순식간에 막을 쳐 실물세트와 똑같은 영상으로 전환한 후, 막에 비친 그림자극으로 내면의 악마를 드러내는 숨막히는 시퀀스에 무조건 반사로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온다.

‘맨 인 더 미러’가 장식하는 엔딩은 또 어떤가. MJ 전매특허인 바닥에서 솟아나는 점프와 함께 리허설장이 순식간에 콘서트장으로 바뀌는가 싶더니, 뒷모습의 MJ가 회전해 정면을 향하는 순간 3D처럼 실감나게 구현됐던 객석 영상이 바이털 사인 한 줄로 좁아지며 ‘The End’다. 여운이 남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무대와 객석의 감정은 정반대다. 아버지의 학대와 내면의 악마, 경제적 문제 등 여러 고통으로 울상 짓는 MJ를 바라보는 관객은 더 이상 즐거울 수 없다. 시종일관 가슴을 뛰게 하는 MJ의 노래들 때문이다. 노래의 힘이 이야기를 훌쩍 압도한 셈이다. 이 아이러니가 어쩌면 주크박스 뮤지컬의 매력 아닐까. 스토리는 MJ의 위대한 음악과 춤을 무대 위에 되살리기 위한 도구일 뿐.

결국 MJ 자체가 최고의 엔터테이너 였다는 얘기다. 첫 곡 ‘빗잇’부터 커튼콜의 ‘블랙 오어 화이트’까지, 브릿지도 없이 이어지는 25곡의 메가히트곡의 향연에, ‘MJ는 우리 시대의 모차르트’라는 생각도 스쳤다. 세대도 젠더도 인종도 따로 없이 전 세계 MJ 팬들이 다함께 어우러진 객석은 지난 수십년간 우리 귀를 즐겁게 해준 팝의 황제를 경배하는 한바탕 축제 같았다. 이쯤 되면 MJ도 함께 즐기고 있지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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