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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에 노출 가능성” 호주 의회, 인근 러 대사관 신축 막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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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1호 29면

[제3전선, 정보전쟁] 대사관·주재국 창과 방패 싸움

호주 수도 캔버라의 러시아 대사관 신축 부지. 호주 의회는 신축하려던 대사관의 위치가 의회 근처라는 이유로 건설을 막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AP=뉴시스]

호주 수도 캔버라의 러시아 대사관 신축 부지. 호주 의회는 신축하려던 대사관의 위치가 의회 근처라는 이유로 건설을 막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AP=뉴시스]

지난 6월 15일 호주의회는 주(駐)호주 러시아 대사관 신축부지 임대차 계약을 강제로 종료시키는 ‘내무법(Home Affairs Act)’을 제정했다. 7개 조문으로 된 간단한 법인데 제5조에 의미심장한 내용이 들어있다. 수도 캔버라 개발을 담당하는 호주 국가수도청(NCA)이 2008년 러시아와 체결한 임대차 계약을 ‘강제로’ 종료시키도록 규정한 것이다. 사실상 러시아의 대사관 신축계획을 무효화시키는 이례적인 조치다. 그것도 불과 3시간 만에 일사천리로 상·하원을 통과했다. 또한 “이 법은 다른 어떤 법보다 우선한다”고 못박아(제7조) 다른 법이 간섭하지 못하도록 명시했다.

‘대사는 존경받는 스파이’ 역사적 관행

호주의회가 러시아와의 외교적 부담까지 감수하면서 이례적인 법률을 만든 것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여기에는 대사관의 도청 정보활동을 둘러싼 창과 방패 싸움이 자리하고 있다. 러시아가 신축하려던 새 대사관 위치는 호주 의회로부터 450미터 정도 떨어진 가까운 곳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의회를 도청할 수 있다는 얘기다. 호주의회는 세계최고의 능력을 가진 러시아의 도청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 사로잡혔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총리도 의회와 가까운 곳에 러시아 대사관이 들어서면 호주안보에 위험하므로 대사관 신축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물론 본격 착공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래의 도청 가능성을 예단하여 불허하는 것은 과도한 조치라는 비판도 있었다. 그러나 대사관의 도청을 둘러싼 창과 방패 싸움을 살펴보면 호주의회의 조치에도 납득이 간다.

대사관을 통한 도청 정보활동은 구(舊)소련이 탁월했다. 1945년 8월 5일 구 소련은 주 모스크바 미국대사관에 ‘2차 대전 동맹국에 대한 우정의 선물’이라며 미국의 국가문장이 새겨진 벽 장식물을 선물했다. 그런데 소련은 선물 뒤에 도청기를 숨겨 놓았다. 숨겨둔 도청기는 전기없이도 작동하도록 만들어져 사실상 영구적으로 쓸 수 있는 획기적 장비였다. 실제로 이 장비는 7년 동안 발견되지 않고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던 중 주 모스크바 영국 대사관이 소련 공군을 도청하는 과정에서 이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어  미국에 통보함으로써 그 존재가 드러났다. 영국 대사관이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언제 발견되었을지 모를 일이었다.

소련이 1945년 모스크바의 미국 대사관에 선물한 미국 국가문장이 새겨진 벽 장식물과 장식물 뒤에 숨겨 놓은 도청장치. [사진 NSA]

소련이 1945년 모스크바의 미국 대사관에 선물한 미국 국가문장이 새겨진 벽 장식물과 장식물 뒤에 숨겨 놓은 도청장치. [사진 NSA]

냉전 시기 주 모스크바 미국 대사관 신축과정에서 벌어진 도청과 방첩의 대결은 정보세계의 레전드로 남아있다. 1979년 구소련 KGB의 도청에 넌더리가 난 미국은 대사관을 아예 새로 짓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1985년 착공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벽과 기둥, 벽돌 사이 곳곳에 도청 장치가 숨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건물을 완전히 허물지 않고서는 도청을 막을 수 없을 정도였다. 이에 미국은 공사를 일단 중단한 후 1996년 짓다 만 건물을 다 허물고 다시 공사를 시작했다. 단, 이번에는 공사 인원은 물론 모래와 자갈 등 모든 장비, 자재들을 미국에서 직접 공수해 왔다. 한마디로 물과 공기만 러시아 것을 썼다. 러시아가 도청장치를 설치할 수 없도록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과정을 거쳐 대사관은 2000년 완공되었다. 무려 20년이 걸렸다. 당시 미 대사였던 제임스 콜린스는 “지금까지 대사관 건축 가운데 가장 힘들었던 건물”이라고 냉소할 정도였다. 이후에도 2003년 주 런던 파키스탄 대사관 개축당시의 도청 논란, 2013년 주 베를린 미국 대사관의 메르켈 총리 휴대폰 도청 등 대사관을 거점으로 도청하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의 싸움은 적과 우방을 가리지 않고 흔한 일이 되고 있다.

소련이 1945년 모스크바의 미국 대사관에 선물한 미국 국가문장이 새겨진 벽 장식물과 장식물 뒤에 숨겨 놓은 도청장치. [사진 NSA]

소련이 1945년 모스크바의 미국 대사관에 선물한 미국 국가문장이 새겨진 벽 장식물과 장식물 뒤에 숨겨 놓은 도청장치. [사진 NSA]

이런 가운데서도 호주의회의 강단있는 조치는 눈여겨 볼만하다. 호주의회의 내무법 제정은 그 직전인 5월 31일 호주 법원이 러시아측에 유리하게 내린 판결을 뒤엎은 것이다. 해당 판결은 호주 국가수도청이 2022년 8월 러시아 대사관 신축부지 임대차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은 계약 위반에 해당한다며 러시아의 손을 들어 주었다. 물론 호주법원의 판결은 순수한 계약법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의회의 시각은 달랐다. 계약을 파기한 과정에 주목했다. 호주 국가수도청은 2008년 부지 임대차 계약에 이어 2011년 3년내 공사완공을 조건으로 대사관 신축계획도 승인했다. 그런데 러시아는 새 청사 보안을 위해 자국 업체만 공사에 투입하겠다고 고집했다. 반면 호주는 러시아 정보요원들이 건설업체 인력으로 위장해 도청장비를 설치할 수 있다며 반대했다. 이러는 사이 공사가 늦어져 10년이 넘도록 완공되지 못했다. 그래서 계약이 파기된 것이다. 호주의회는 결국 계약파기의 기저에 대사관의 도청과 방첩 문제가 자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에 의회가 내무법을 제정하여 대사관 신축을 막은 것이다. 국가수도청이 감당하기 어려운 정보와 안보 문제를 의회가 나서 해결한 것이다. 내무법 제정이후 러시아는 또 다시 불복 소송을 제기했으나 이번에는 호주법원에서 기각당했다.

이처럼 사법부 판결이 국가정보사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경우 의회가 나서 중심을 잡아 준 경우는 캐나다에서도 있었다. 2007년 캐나다 정보당국이 해외에서의 테러 정보수집을 위해 영장발부를 청구했으나, 캐나다 법원은 이를 거부했다. 다른 나라 영토에서의 비밀 정보활동은 국제법 위반이 될 수 있으며, 해외 비밀 정보활동을 허용한 캐나다 국내법 규정도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캐나다의회는 이 판결이 캐나다의 안보 및 정보역량을 심각하게 위축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앞으로 캐나다 정보당국은 국제법이나 캐나다 국내법에 구애받지 않고 해외에서 정보활동을 할 수 있도록 ‘캐나다 안보정보법’을 개정해 주었다.

국회 입법 통해 국가 정보활동 지원을

구소련의 KGB가 모스크바의 미국 대사관 신축 당시 벽돌 속에 숨겨 놓은 도청장치. [사진 CIA 박물관]

구소련의 KGB가 모스크바의 미국 대사관 신축 당시 벽돌 속에 숨겨 놓은 도청장치. [사진 CIA 박물관]

의회가 나서 정보활동을 법적으로 보장해주는 전통은 사실 미국이 원조격이다. 1947년 ‘국가안보법’을 제정하여 일찍이 비밀 정보활동의 법적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 특히 1970년대 들어 미국 주재 외국 대사관들의 대미 정보활동이 강화되자 미국은 방첩 정보활동을 고민했다. 그러나 외국 대사관에 대한 정보활동은 자칫 국제법상 ‘외교사절의 불가침권’을 위반한 것이라는 국제적 비난을 불러올 수 있어 매우 조심스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의회는 1978년 자국 정보기관이 외국 대사관에 대해 방첩 정보활동을 할 수 있도록 ‘외국정보감시법(FISA법)’을 제정했다. 다른 나라들도 외국 대사관에 대해 암묵적으로 방첩활동을 한다는 점을 들어 입법을 강행한 것이다. 이 덕택에 미국은 지금도 방첩 정보활동을 안정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제3전선, 정보전쟁

제3전선, 정보전쟁

따지고보면 대사관의 정보활동은 오랜 역사적 관행이다. 상주 대사제도가 시작될 당시부터 대사는 ‘존경받는 스파이(honorable spy)’ 또는 ‘허가받은 스파이(licensed spy)’로 비유되었다. 계몽시대 사상가인 몽테스키외가 “대사는 국가의 안위를 위해 외교적 임무를 뛰어넘는 정보활동도 한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1570년 프랑스대사로 부임한 영국의 프랜시스 월싱엄 경은 이를 입증해 보였다. 대사관을 통해 수집한 비밀정보를 토대로 스페인의 영국 공격계획을 알아내어 본국에 보고함으로써 전쟁의 화를 막았다. 바로 이 ‘스페인에 대한 정보보고(The Plot for Intelligence out of Spain)’는 근대 정보보고서의 효시로 불린다. 이런 관행은 오늘날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대사관의 정보활동 그 자체는 사실 새로울 것도, 이상할 것도 없는 보편적 사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주의회가 안보목적상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입법을 통해서라도 관철시키는 모습은 눈여겨 볼만하다. 특히 국가 정보사무에 대해 의회가 중심을 잡아 준 것은 다시 한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의회근처 외국대사관 신축을 제한하여 도청 가능성을 미리 예방하는 것은 행정부와 사법부가 하기에는 여러 가지 제한이 따른다. 이를 입법부가 나서 처리해 준 것은 국가안보 사무의 효율적 관리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우리도 국회가 중심을 잡고 국가 정보사무를 발전시키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필자 사정으로 이번 주 쉽니다.

최성규 고려대 법학연구원 전임연구원. 국가정보원에서 장기간 근무하며 국제안보 분야에 종사했다. 퇴직후 국내 최초로 비밀 정보활동의 법적 규범을 규명한 논문으로 고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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