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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PGA 투어 ‘1학기 수석’ 박지영 “거리 느니까 골프가 달라졌어요”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12월 열린 하나금융그룹 싱가포르 여자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기뻐하고 있는 박지영. 사진 KLPGA

지난해 12월 열린 하나금융그룹 싱가포르 여자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기뻐하고 있는 박지영. 사진 KLPGA

박지영(27·한국토지신탁)은 올 시즌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전반기를 가장 만족스럽게 마쳤다. 상금(약 6억3456만원)과 대상 포인트(326점), 평균타수(70.19타) 등 실력과 꾸준함을 나타내는 각종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럼에도 쉴 틈은 없었다. 휴식기에도 훈련과 연습 라운드는 매일같이 잡혀있었고, 스폰서 미팅과 이벤트 참석과 같은 외부 일정도 틈틈이 소화해야 했다. 그래도 2015년 데뷔 이래 가장 행복한 순간을 보내고 있는 박지영의 얼굴에선 구김살을 찾아볼 수 없었다.

KLPGA 투어 ‘1학기 수석’ 박지영을 최근 경기도 성남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날 역시 이른 아침부터 18홀을 돌고 온 박지영은 “비가 많이 올 줄 알고 선크림도 제대로 바르지 않았다. 그런데 뙤약볕이 내려쬐어서 살이 다 탔다”며 멋쩍게 웃었다. 이어 “후반기를 버티려면 운동을 게을리 할 수가 없다. 어리고 체격이 좋은 선수들은 계속 올라오는데 나만 뒤쳐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휴식기에는 먹고 싶은 것도 많지만, 꾹 참다가 며칠 전 곱창 포식 하나로 아쉬움을 달랬다”고 덧붙였다.

올 시즌 전반기는 박지영으로 시작해 박지영으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막전으로 치른 지난해 12월 하나금융그룹 싱가포르 여자오픈에서 정상을 밟더니 전반기 최종전인 지난달 에버콜라겐·더 시에나 퀸즈크라운마저 제패하며 1인자의 입지를 공고히 했다. 박지영이 전반기 상금과 대상 포인트 1위를 달린 적은 데뷔 이후 처음이다. 여기에는 재미난 비화가 있었다.

박지영은 올해 초 태국 카오야이에서 전지훈련을 소화했다. 평소 친한 선배 이정민(31), 후배 유해란(22) 등과 함께 구슬땀을 흘렸다. 박지영을 포함해 모두 알아주는 실력파들. 그런데 여기에서 제법 자존심이 상할 법한 일이 생겼다. 박지영은 “(이)정민 언니, (유)해란이와 비교해 내 티샷 비거리가 너무나 뒤처졌다. 라운드만 하면 세컨드 샷 아너는 늘 나였다. 주니어와 프로가 대결하는 느낌이었다. 자존심이 정말 상하더라. 그래서 코치님께 ‘어떻게든 거리를 늘려달라’고 졸랐다. 이후 남녀를 불문하고 거리가 나는 선수들과 계속 붙었다”고 했다.

지난달 에버콜라겐·더 시에나 퀸즈크라운을 제패한 박지영. 사진 KLPGA

지난달 에버콜라겐·더 시에나 퀸즈크라운을 제패한 박지영. 사진 KLPGA

효과는 있었다. 실제로 거리가 늘었다. 티샷이 떨어지는 지점이 달라지니 코스 공략도 수월해졌다. 박지영은 “같은 골프장을 가더라도 랜딩 포인트가 넓어진 느낌이 들더라. 페어웨이에서 잡는 클럽도 계속 짧아져 골프가 편해졌다”고 말했다.

박지영은 원주삼육초 5학년 때 처음 골프를 접했다. 방과 후 수업 과목으로 골프가 생겼는데 “이 스포츠는 도대체 어떤 종목일까”라는 궁금증이 들어 신청했단다. 처음에는 엘리트 선수가 될 생각은 없었다. 6학년 때까지 해도 골프는 취미로만 여겼다. 그런데 골프로 유명한 육민관중으로 배정이 되면서 계속 클럽을 잡게 됐다.

박지영. 사진 KLPGA

박지영. 사진 KLPGA

이렇게 골프와 연은 이어졌지만, 선수로서 크게 두각은 나타내지 못했다. 박지영은 “나는 ‘엘리트 선수’라는 표현도 버거웠다. 그저 그런 선수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만 하더라도 부모님께서 계속 공부를 권유할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실력은 오히려 프로 무대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갓 데뷔한 2015년, 우승은 기록하지 못했지만, 김예진(28)과 박결(27), 박채윤(29), 지한솔(27) 등 쟁쟁한 동기들을 제치고 신인왕을 차지했다. 이듬해에는 S-OIL 챔피언스 인비테이셔널에서 첫 번째 우승의 기쁨도 맛봤다. 박지영은 “운이 좋았다. 뒤땅을 쳐도 공이 붙는 대회였다. 퍼트도 뒷벽을 맞고 떨어질 정도였다. 사실 그때 고진영(28), 박성현(30) 언니가 선두권이라 우승은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덜컥 이겨버렸다”고 했다.

박지영(오른쪽 2번째)이 지난달 에버콜라겐·더 시에나 퀸즈크라운 정상을 밟은 뒤 동료들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다. 사진 KLPGA

박지영(오른쪽 2번째)이 지난달 에버콜라겐·더 시에나 퀸즈크라운 정상을 밟은 뒤 동료들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다. 사진 KLPGA

이렇게 이름을 알린 박지영은 현재까지 5승을 더해 KLPGA 투어의 실력자로 자리매김했다. 나이도 어느덧 20대 후반이 돼 이제는 후배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최근 시선을 사로잡은 선수가 있다. 바로 황유민(20)이다. 박지영은 “체구가 작은 선수가 어쩜 그리 공을 잘 치던지. 그냥 반해버렸다”면서 “사실 선수들끼리도 친하지 않으면 무언가를 물어보기가 어렵다. 그런데 내가 용기를 내서 샷 조언을 구했다. 그러자 (황)유민이가 그 조그만 입으로 자신의 노하우를 정성껏 알려주더라. 정말 고마웠다. 그때 번호까지 물어봤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다”고 미소를 지었다.

휴식기를 보낸 KLPGA 투어는 3일 개막한 제주삼다수 마스터스를 통해 후반기 레이스를 시작했다. 박지영에게 “차라리 올 시즌이 지금 끝나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상금왕과 대상, 평균타수상 등 3관왕을 차지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였다. 박지영은 “솔직하게 말해도 되냐”면서 “정확히 반반이다. 이 더위를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지 걱정이면서도, 이 페이스를 끝까지 이어가 커리어하이를 찍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래도 이왕이면 후반기를 모두 끝내고 1등으로서 인터뷰를 다시 하고 싶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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