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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은 '조국 임명' 꺼냈다…정국 뒤흔든 총선 전 대통령의 휴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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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9월 9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이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 장관 임명장 수여식에서 조국 신임 법무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9년 9월 9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이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 장관 임명장 수여식에서 조국 신임 법무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그해 여름, 대통령의 휴가는 특별했다. 국정에 복귀한 직후 정국을 흔드는 승부수를 던지거나, 깜짝 인사 카드로 국정 쇄신을 꾀했다. 대통령은 최측근을 불러 큼직한 국정 이슈를 논의했고, 전문가의 보고서가 그의 책상에 올라갔다. ‘여름 휴가→국정 쇄신→광복절 경축사’라는 흐름으로 대통령이 이듬해 총선까지 정국을 이끌어가는 주도면밀한 계획이 논의됐다. 모두 총선 전 해, 역대 대통령의 여름 휴가 얘기다.

윤석열 대통령이 2일부터 8일까지 6박 7일간 여름 휴가를 떠난다. 거제 저도의 대통령 별장인 ‘청해대’를 찾을 예정이다. 내년 총선 승리가 절실한 윤 대통령의 이번 휴가는 ‘쉼’에만 머무르진 않을 전망이다.

대통령실 내에선 휴가 뒤 최소 2개 부처 이상의 장관을 교체하는 ‘2+α’ 개각 방안이 거론된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인사검증 등 필요한 준비 작업은 마친 상태”라고 했다. 역대 대통령은 총선을 앞둔 여름 휴가를 보낸 뒤 어떤 승부수를 던졌을까.

윤석열 대통령이 2일부터 8일까지 여름 휴가를 떠난다. 사진은 지난달 2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김영호 통일부 장관 임명장 수여식에 입장하는 모습.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2일부터 8일까지 여름 휴가를 떠난다. 사진은 지난달 2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김영호 통일부 장관 임명장 수여식에 입장하는 모습.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문재인 전 대통령은 21대 총선 전 해인 2019년 일본의 무역보복으로 여름 휴가를 직전에 취소했다. 그렇다고 정국 구상까지 멈췄던 건 아니다. 주로 관저에 머물렀던 문 전 대통령은 그해 8월 초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는 깜짝 카드를 꺼냈다. 총선을 앞두고 ‘검찰 개혁’이란 깃발 아래 지지층을 재결집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문 전 대통령의 승부수는 지금의 윤 대통령을 만든 ‘조국 사태’의 단초가 됐다. 문 전 대통령은 그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아무도 흔들지 못하는 나라를 만들겠다”며 일본과도 각을 세웠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2015년 여름 휴가를 보낸 직후 국무회의에서 노동 개혁과 문화 융성을 앞세우며 국정 드라이브를 걸었다. ‘메르스 사태’의 책임을 물어 보건복지부 장관과 고용복지수석을 전격 교체했다. 노동개혁 드라이브는 그해 9월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또 일반해고 요건을 명확히 하는 노사정 대타협문을 도출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2015년 여름 휴가 직후인 8월 4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2015년 여름 휴가 직후인 8월 4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노무현 전 대통령은 총선을 한 해 앞둔 2003년과 2007년 두 번의 여름 휴가를 보냈다. 2003년 여름 휴가 뒤 새천년민주당 탈당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민주당의 쇄신을 요구하던 개혁파가 창당한 열린우리당 지지를 선언했다. 그 뒤 ‘정치적 중립성 위반’ 논란으로 탄핵의 위기를 겪었다. 2007년엔 여름 휴가 뒤엔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정상회담 직후 지지율이 급상승했지만, 레임덕에 빠진 상황에서 큰 정치적 변수가 되진 못했다.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대선 및 총선과 맞물린 2011년 여름 휴가 뒤 여러 정치적 변화들과 마주했다.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 논란으로 사퇴했고, 그 뒤 ‘안철수 열풍’이 불어닥쳤다. 임기 말기였던 MB는 주연의 자리를 차기 주자들에게 내줘야 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선거를 앞둔 해엔 정치적 이해관계가 복잡해지면서 대통령도 예상치 못 한 변화가 닥친다”고 말했다.

2011년 총선을 한 해 앞둔 그 해 여름엔 안철수 현상이란 새로운 정치적 돌풍이 불었다. 그해 9월 6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불출마 입장을 밝힌 안철수 현 국민의힘 의원과 당시 무소속 후보였던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2011년 총선을 한 해 앞둔 그 해 여름엔 안철수 현상이란 새로운 정치적 돌풍이 불었다. 그해 9월 6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불출마 입장을 밝힌 안철수 현 국민의힘 의원과 당시 무소속 후보였던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대통령이 던진 승부수의 성패와 이듬해 총선 결과가 항상 일치했던 것은 아니다. ‘조국 사태’ 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은 21대 총선에선 예상을 깨고 180석 가까이를 차지하는 대승을 거뒀다. 당시 야당인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의 공천 파동과 막말 논란 때문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노동개혁의 성과에도 여당 내 공천 파동과 당내 분열로 1당을 넘겨줬다. 2004년 총선에서 노 전 대통령은 탄핵의 위기를 겪었지만, 열린우리당이 탄핵 역풍에 올라타며 과반을 차지했다.

국민의힘 내부에선 “윤 대통령이 여름 휴가 뒤 예상을 뛰어넘는 인적 쇄신 카드를 꺼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지금과 같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30%대 중반에 머무는 상황에선 총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당의 한 초선 의원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리스크에만 기댈 순 없다”며 “인사 혁신에 가까운 쇄신책이 나와야 총선에서 승리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여름 휴가 이후에는 바로 추석 민심이 형성되는 시기”라며 “윤 대통령에겐 의외로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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