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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 막는 중국, 기술 막는 미국…G2 '공급망 싸움' 격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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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 주기율표에 표시된 갈륨, 게르마늄 앞에 중국 국기 이미지가 합성돼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원소 주기율표에 표시된 갈륨, 게르마늄 앞에 중국 국기 이미지가 합성돼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글로벌 공급망을 두고 벌이는 미국과 중국의 싸움이 더욱 격화될 전망이다. 미국이 중국을 겨냥한 반도체 수출 통제 그물을 갈수록 조이는 가운데, 중국이 1일부터 차세대 소재로 꼽히는 갈륨과 게르마늄에 대한 수출 통제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시장에선 중국의 이번 조치가 당장 세계 공급망에 미칠 영향이 크지 않다고 보면서도, 중국이 다른 광물로 ‘자원 무기화’ 전선을 넓힐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중국 상무부는 이날부터 갈륨과 게르마늄에 대한 수출 통제 조치에 들어갔다. 중국 내에서 이들 금속을 수출하려면 누가 수입하려는 것인지 상무부에 자세히 보고한 뒤 국무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중국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는 이날 ‘중국의 금속 수출 통제는 중국을 단속(제재)하는 국가의 기업을 먼저 공격할 수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이번 조처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첫 번째 기업은 중국에 유사한 규제를 가하고 중국의 핵심 이익을 해친 국가의 기업일 수 있다”며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다른 나라를 단속하기 위해 수출 통제 같은 조처를 쓴 것처럼 중국도 자국 이익에 따라 통제를 사용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번 조치가 중국을 상대로 무역 제재를 이어온 서방을 겨냥한 보복 조치인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미국과 중국의 공급망 경쟁은 최근 심화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10월부터 18㎚(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D램, 14㎚ 이하 시스템반도체 등 첨단 반도체의 대중 수출을 통제하고 있다. 나아가 세계적인 반도체 장비 회사를 보유한 일본과 네덜란드를 압박해 미국과 비슷한 수준의 수출통제 조치를 도입하도록 했다. 일본은 지난달 23일부터 중국을 겨냥해 노광장치 등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에 대한 수출 규제에 들어갔다. 네덜란드도 9월부터 자국 반도체 장비 업체들이 특정 장비를 수출할 때 당국의 허가를 받는 걸 의무화하는 조치를 시행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3월 반도체과학법 입법 관련 설명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3월 반도체과학법 입법 관련 설명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행정부는 나아가 대중 반도체 수출 통제 범위를 28㎚ 이상의 구세대 반도체인 ‘레거시칩’으로 확대하고, 반도체·인공지능(AI)·양자 컴퓨터 분야 등에서 미국 기업의 중국 투자를 금지하는 조치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제품과 장비 공급을 막아 중국의 첨단 기술 개발을 막는 동시에, 개발에 필요한 재원인 달러 유입도 막겠다는 생각이다.

이에 중국은 자원 공급을 막아 서방의 첨단 제품 생산을 곤란하게 하는 전략으로 맞서고 있다. 중국은 세계 갈륨 생산량의 94%, 게르마늄 생산량의 67% 이상을 차지하는 최대 생산국이다. 갈륨은 차세대 반도체, 태양광 패널,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전기차에 쓰이고, 게르마늄은 광섬유 통신, 반도체 공정용 가스 소재 등으로 활용된다.

다만 이번 조치가 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갈륨은 아직은 연구단계에서 주로 사용되고 있고, 게르마늄은 중국 외 국가에서도 공급받을 수 있어서다. 브래들리 마틴 랜드국가안보공급망연구소 소장은 “미국 기업, 방위산업 업체들은 갈륨의 대체물을 찾고, 틈새 공급망을 확보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질화갈륨(GaN) 반도체 기업 나비타스 세미컨덕터도 “중국의 수출 통제가 비즈니스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란 입장을 내놨다. 중국의 이번 조치가 ‘경고사격’ 수준이란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문제는 세계 광물 시장을 장악한 중국이 전선을 확대하는 경우다. 유럽연합(EU)의 ‘핵심 원자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6~2020년 중국이 생산 1위를 차지한 광물은 희토류 15종을 포함한 핵심 원자재 51종 중 33종이다. 특히 원자 번호가 높고 무거우며 비싼 중(重) 희토류인 테르븀·디스프로슘·에르븀·루테튬 등 10가지는 중국 점유율이 100%다. 중국은 풍부한 자원과 낮은 인건비를 무기로 서방 등 선진국에서 경제성과 환경 문제로 포기한 광물생산에 집중하면서 공급망을 장악했다.

실제로 웨이젠궈(魏建國) 전 중국 상무부 부부장(차관)은 지난달 차이나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갈륨과 게르마늄 통제는 맞대응의 시작일 뿐”이라며 “중국은 (첨단기술 산업에) 더 큰 어려움을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강조했다.미 기술매체 MIT 테크놀로지리뷰는 “리튬이나 코발트, 니켈 등 사용량이 많고 짧은 시간 대체 공급망을 찾기 어려운 광물들을 ‘협상 카드’로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부 교수는 “미·중 갈등 심화는 양국 의존이 심한 한국엔 치명타”라며 “미국의 고강도 수출 통제 제도를 국제 통상규범으로 받아들이면서, 중국을 대체할 원자재 생산처와 시장 확보에 나서 ‘공급망 인질’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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