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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없는데 에어컨도 없다"…35도 찜통 속 쿠팡 알바 생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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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물류센터 내부 모습. 쿠팡 뉴스룸

쿠팡 물류센터 내부 모습. 쿠팡 뉴스룸

기온이 섭씨 35도까지 치솟은 지난 29일, 경기 화성시 쿠팡 동탄 물류센터(센터) 내부는 뜨거운 공기로 가득했다. 실내여서 내리쬐는 햇볕만 없을 뿐 쉼 없이 돌아가는 기계들이 열기를 뿜어냈고, 작업자들은 찜질방에 온 듯 힘겹게 숨을 뱉어냈다. 땀을 닦아봐도 겨우 시야를 가리는 줄기를 막는 정도에 불과했고, 축축해진 옷은 자꾸만 살갗에 달라붙었다. 실제 온도계 숫자도 야외와 다를 바 없는, 34.1도에서 34.6도 사이를 오갔다. 달궈진 공기가 솟구쳐 올라 다다른 3~4층은 1층보다 더 찜통 같았지만, 공기가 빠져나갈 창문조차 없었다. 조금이나마 에어컨 바람을 쐴 수 있는 곳은 4층 건물 중 1.5층 포장 작업장과 화장실 등 일부뿐. 나머지 층에선 선풍기가 더운 바람만 연신 뿜어냈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가 내린 이 날, 본지 기자는 센터에서 출고된 물건들을 분류하고 택배차에 전달하는 일용직 근무에 지원해 9시간 동안(교육·휴식시간 포함) 일했다. 동탄 센터는 연면적 2만7000㎡(8000평)에 달하는 쿠팡의 5대 물류센터 중 한 곳이다. 이곳에서 주·야간을 합쳐 매일 수천 명이 일한다. 작업 장소는 주로 실내지만, 폭염의 위험에 노출된 건 야외 작업과 다를 바 없다는 게 이곳 직원들의 주장이다. 노조 소속 직원들은 휴게시간 보장 등을 요구하며 1일 하루 파업에 돌입한다.

최고기온 35도로 기록적인 폭우를 기록한 지난 7월 29일 오후, 경기 화성시 쿠팡 동탄물류센터에 야간조 작업자들이 줄지어 출근하고 있다. 장서윤 기자

최고기온 35도로 기록적인 폭우를 기록한 지난 7월 29일 오후, 경기 화성시 쿠팡 동탄물류센터에 야간조 작업자들이 줄지어 출근하고 있다. 장서윤 기자

5분 만에 옷 흠뻑… 물건 쌓이면 곧장 ‘경고음’

업무가 처음인 사람들은 2시간가량 교육을 받고 오전 10시 30분부터 작업에 투입됐다. 컨베이어벨트 밑으로 들어가자마자 함께 온 일용직 7명의 얼굴에 땀이 흘렀고, 채 5분도 안 돼 온몸이 젖었다. 센터 곳곳에 대형 선풍기와 지름 약 3m의 실링팬이 있었지만, 바람이 닿지 않는 곳이 태반이었다. 잠시 선풍기 앞으로 가도 더운 바람만 나와 땀을 식히기도 어려웠다.

지난 7월 29일 쿠팡 물류센터 동탄지점의 내부 온도가 34도를 웃돌았다. 밤 10시에도 34.1℃를 기록했다. 쿠팡 노조 제공

지난 7월 29일 쿠팡 물류센터 동탄지점의 내부 온도가 34도를 웃돌았다. 밤 10시에도 34.1℃를 기록했다. 쿠팡 노조 제공

기계는 쉴 시간을 주지 않았고, 긴장과 부담은 몸의 열기를 끌어올렸다. 포장을 마친 물건이 위쪽 컨베이어벨트에서 떨어지면 부산·울산·대구 등 각 지역으로 나눠 배송하기 위해 ‘토트(조립식 플라스틱 박스)’에 담아 다시 아래쪽에 옮겨 실어야 한다. 물건이 4~5개만 쌓여도 경고음과 함께 주황색 경고등에 불이 들어왔다. 경고가 반복되면 관리자가 찾아와 “빨리하라”고 재촉하기도 했다. 빨리 움직일수록 몸의 열기도 심해졌다.

오전 11시 20분, 컨베이어벨트가 멈췄다. 12시 10분까지 50분의 점심시간이 주어졌다. 수천 명의 작업자가 일제히 지하 1층 구내식당에서 식사한 뒤, 휴대폰을 쓸 수 있는 1층 안내데스크로 몰려갔다.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는 아이스크림 냉장고가 있어 저마다 손에 아이스크림을 쥔 채 더위를 식혔다. 잠시 숨을 돌리자, 컨베이어벨트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직원들은 점심시간이 끝나고 2~3시간이 더위의 고비라고 말했다. 다음 휴게시간은 2시부터 2시 20분까지였지만, 폭염이 극성이던 이날은 10분을 추가로 쉬게 해줬다.

지난 7월 29일 쿠팡 물류센터 동탄지점 1층 안내데스크에서 작업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휴식 시간 작업공간 밖으로 나오면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다. 장서윤 기자

지난 7월 29일 쿠팡 물류센터 동탄지점 1층 안내데스크에서 작업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휴식 시간 작업공간 밖으로 나오면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다. 장서윤 기자

에어컨이 설치돼있는 곳은 1층 안내데스크, 2·3·4층 휴게실과 화장실 정도다. 한 직원은 화장실을 나서며 “여기서 제일 시원한 곳이 화장실”이라고 말했다. 작업 공간 중에 에어컨이 있는 곳은 A동 1.5층 포장 업무 공간뿐이다. 작업대마다 천장 위에 뚫린 지름 15cm가량의 구멍에서 찬 공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래서 다른 작업자에겐 이곳이 선망의 대상이다. 같은 1.5층에서 일하지만 ‘워터(박스, 은박 등 포장 시 필요한 것들을 보조하는 업무)’ 업무를 하는 김모(43·남)씨는 “사흘 전까지는 그래도 참을 만했는데 오늘은 정말 더워서 못 하겠다”며 힘들어했다. 하지만 정작 포장 업무를 하는 계약직 김모(41·여)씨도 “정수리만 시원하고, 한 발짝만 옆으로 가도 땀이 ‘질질’ 흐르고 속옷이 다 젖는다”며 “머리 외 몸에는 습진이랑 무좀까지 생겼다”고 말했다.

쿠팡은 혹서기 대비 얼음물, 식염 포도당, 아이스크림 등을 지급하고 있다. 그러나 철제 패널로 이뤄진 창고형 건물을 뚫고 들어오는 열기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정모(48·여)씨는 “머리를 식힐 겸 시작했는데 더워서 오히려 현기증이 난다. 컨디션이 안 좋으면 쓰러질 것 같다”고 말했다. “자취방 월세를 벌러 왔다”는 심모(23·남)씨는 함께 온 친구와 서로 몸에 얼음물을 뿌려주며 더위를 식히기도 했다.

“에어컨 대신 휴식이라도”…정부 가이드라인 무용지물

올 여름부터 쿠팡 물류센터에 설치된 냉방시설. 쿠팡 제공

올 여름부터 쿠팡 물류센터에 설치된 냉방시설. 쿠팡 제공

쿠팡은 물류센터의 개방된 공간 특성상 에어컨을 설치해도 효과가 없다는 입장이다. 노조 측은 “에어컨 설치가 힘들면 휴식 시간이라도 보장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실외뿐 아니라 폭염 영향을 많이 받는 실내 작업장에도 폭염 특보 발령 시 휴식을 부여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체감온도 33도 이상이면 시간당 10분, 35도 이상이면 15분씩 휴식을 제공해야 한다. 쿠팡 측은 해당 조항은 권고사항이며, “법정 휴게시간 외 추가 휴게시간을 부여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또한 “냉방·환기 장치를 운영하고 보냉 물품을 지급하는 등 온열질환 예방을 위한 조치 및 투자를 지속해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동헌 노조 쿠팡물류센터지회 동탄분회장은 “직원 대부분이 평소 현기증, 무기력증 등 만성 온열 질환을 겪고 있다. 열을 식힐 휴게공간이 있어도 쉴 시간은 없으니 무용지물”이라고 지적했다.

노조는 ▶고용노동부 가이드라인에 따른 매시간 휴게시간 보장 ▶체감온도 계산 시 공식적인 기상청 계산기 이용 ▶폭염주의보·폭염 경보 발령 시 고용노동부 가이드라인 준수 등을 요구하며 8월 1일 하루 파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매달 1일은 쿠팡의 정기 배송일로 한 달 중 물량이 가장 많은 날이다. 정성용 쿠팡물류센터지회장은 “동시 연차와 보건휴가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겠다. 2일부턴 현장 준법투쟁에 들어가 쿠팡이 안 지키는 고용노동부의 가이드라인을 현장 노동자들이 직접 지키겠다”고 밝혔다.

매년 여름철 폭염 속 근로자들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반복되고 있지만, 고용노동부의 온열질환 예방 가이드는 현장에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19일 대형마트 코스트코 하남점 주차장에서도 최고기온이 35도에 달하는 무더운 날씨에 쇼핑 카트 정리 업무를 하다 30대 직원이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빠른 시간에 많은 물량을 채우는 것이 우선시되다 보니 살인적인 폭염 속 기본적인 휴식 시간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고용노동부가 행정 단속을 통해 휴식시간 권고사항을 지키도록 독려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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