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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병원, 안에서부터 곪고 있다” 파업 중재 나섰던 교수회 탄식, 왜?

중앙일보

입력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이 총파업에 돌입한 지난 13일 부산 서구 아미동 부산대병원 입원실이 텅 비어 있다.[중앙포토]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이 총파업에 돌입한 지난 13일 부산 서구 아미동 부산대병원 입원실이 텅 비어 있다.[중앙포토]

“동료 교수들이 노조 행동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25일 부산대병원에서 만난 배용찬(성형외과 교수) 교수회장은 “결코 좋은 신호로 보이지 않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부산대병원지부 파업 사태가 2주 넘게 이어진 상황에서 교수들이 ‘진단’을 내리기 시작했단 게 배 교수 설명이다. 그는 “500여명의 비정규직 일시 전환, 가이드라인을 벗어나는 수준의 임금 인상 등 노조 요구는 국립대병원이 곧장 수용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며 “(이런 요구로) 빌미를 만들어 파업에 나선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교수들 사이에 싹트기 시작한 거다.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고 했다.

대자보 붙이고 ‘끝장 토론회’ 열었지만 무산

배 교수가 회장을 맡는 부산대병원 교수회엔 150여명이 가입돼있다. 파업 초기 교수회는 동료 의료진의 병원 복귀를 촉구하는 대자보를 붙였다. ‘수많은 환자가 항암 등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다. 하루속히 자리로 돌아와 진료와 치료를 간절히 기다리는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해주길 부탁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지난 21일엔 노사 양측을 불러 공개토론회를 열었다. 하지만 토론회는 뚜렷한 입장차만 확인한 채 끝났다.

배용잔 부산대병원 교수회장. 배 교수는 이번 노조 파업으로 인해 구성원 사이에 불신이 커지고 있고, 파업이 끝난 뒤 이런 불신이 병원 정상화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사진 부산대병원]

배용잔 부산대병원 교수회장. 배 교수는 이번 노조 파업으로 인해 구성원 사이에 불신이 커지고 있고, 파업이 끝난 뒤 이런 불신이 병원 정상화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사진 부산대병원]

배 교수는 이날 직접 사회를 맡아 토론을 진행했다. 그는 “파업이 끝나지 않은 상황이다. 토론회에 대한 평가는 아직 조심스럽다”고 말을 아꼈다. 다만 토론회 후폭풍은 염려스럽다고 했다. 배 교수는 “공개 토론이었던 만큼 많은 구성원이 노사 양측의 태도를 지켜봤다”며 “노조원과 비노조원 사이의 갈등을 부채질할 거라고 걱정되는 장면이 여럿 있었다. 실제로 (토론회) 이후 내부 게시판에서도 험한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노조는 게시판에서 파업을 비판한 일부 교수를 상대로 소송까지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배 교수는 이어 “교수뿐 아니다. 어렵게 병원을 지키고 있는 직원ㆍ비노조원과 노조원 사이에 불신이 더 깊어질 수 있다. 내부에서 (감정이) 곪는 거다. 이는 병원 정상화에서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약 없이 미룬 수술, 의료인으로서 자괴감”

하루 최대 100건씩 진행되던 부산대병원의 수술은 파업 후 30, 40건 수준으로 줄었다. 위중한 응급환자나 장기 이식을 포함해 입원하지 않아도 되는 안과 등 수술만 간신히 해내고 있다. 이미 예약돼있던 다른 수술은 기약 없이 밀린다. 수술 후 입원할 환자를 돌봐줄 간호사 등 인력이 없어서다.

배 교수는 “의사로서 자괴감을 느낀다”고 했다. 파업 기간 그가 집도했어야 할 피부암 환자의 피부 재건 등 수술도 20건 넘게 밀렸다. 중하고 어려운 수술일수록 교수가 직접 전화해 환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해야 한다. 배 교수는 “응급ㆍ비응급 문제가 아니다. 부산대병원에서 수술을 받아야 할 정도면 다른 병원으로 옮기기 어려운 게 환자들이 처한 현실”이라며 “이런 환자들에게 ‘파업으로 돌볼 인력이 없으니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수술을 연기하자’고 말하는 건 매우 괴로운 일이다. 다른 교수들의 사정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지난 25일 부산역 광장에서 부산대병원 노조 조합원인 간호사들이 '불법 의료 증언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들은 부산대병원에서 불법의료 행위가 만연하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지난 25일 부산역 광장에서 부산대병원 노조 조합원인 간호사들이 '불법 의료 증언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들은 부산대병원에서 불법의료 행위가 만연하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그는 “파업으로 이미 병원은 5년 이상 후퇴했다. 무엇보다 병원에 대한 환자들의 믿음이 깨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그는 노조를 향해 “처우 개선 등을 논의하는 건 노조 역할이고 건전한 일이다. 다만 병원을 믿고 기다리는 환자들을 더는 실망하게 해선 안 된다. 논의는 병원 내부에서 이어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역 최대 상급종합병원 장기 파업에 따른 여파는 주변으로 번지고 있다. 28일 부산시에 따르면 동아대ㆍ고신대복음ㆍ인제대 부산ㆍ인제대 해운대백병원에서 병상가동률이 높아지고, 응급실 환자가 늘었다. 부산시 관계자는 “아직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파업이 더 길어지면 악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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