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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도 소청과·NICU 문 닫아, 아픈 아이들 갈 곳이 없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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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0호 12면

저출산 직격탄 산부인과·소청과 의사 형제

의사 형제인 이재일(왼쪽), 이재현씨가 12일 서울 서초구 한 카페에서 본지와 인터뷰에 앞서 사진 촬영에 임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의사 형제인 이재일(왼쪽), 이재현씨가 12일 서울 서초구 한 카페에서 본지와 인터뷰에 앞서 사진 촬영에 임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저출산의 직격탄을 맞은 병원을 꼽자면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다. 떨어지는 출산율만큼 전공의 지원율도 줄어 매년 미달을 면치 못한다. 이재일(36)·이재현(34)씨는 ‘의사 형제’다. 이들은 공교롭게도 각각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다. 형은 서울송도병원 암면역센터에서 부인암을 다루고, 동생은 용인세브란스병원 신생아집중치료실(NICU)에서 근무한다. 어릴 때부터 우애가 두터웠던 두 사람은 모두 서른 즈음에 아빠가 됐다. 자연스레 육아로 관심사가 옮겨가면서 만나면 아이들 이야기로 시간가는 줄 몰랐다.

어느 날 재현씨가 형에게 유튜브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의사이자 육아하는 아빠로 지식과 경험을 공유해 임신·육아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주자는 취지였다. 그렇게 유튜브 채널 ‘산소형제TV’가 탄생했다. 두 사람은 자녀의 이름을 따 ‘민이 아빠’ ‘슌이 아빠’로 활동한다. 주제는 육아 일상을 담은 브이로그부터 임신부·어린이 건강 강의, 이유식 레시피, 육아 아이템 후기까지 다양하다. 바쁜 병원 생활을 쪼개 만나 촬영하고, 편집도 직접 한다. 숨 돌릴 틈 없는 산소형제를 지난 12일 서울 서초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육아 유튜브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이재일 “군의관 시절 첫째가 태어났다. 상대적으로 퇴근이 빠른 내가 아기를 잘 때까지 돌봤다. 그리 힘들단 생각은 안했는데 나도 모르게 우울증이 왔다. 생각해보니 육아에 대해 말할 상대가 없더라. 엄마들은 맘카페나 문화센터에 가서 자연스레 ‘육아 동지’를 만드는데 육아하는 아빠들은 그럴 기회가 잘 없다. 그래서 아빠들을 위한 소통 창구를 만들고 싶었다.”

유튜브 통해 출산·육아 관련 정보 전달

이재현 “남자들끼리는 모여도 육아 이야기는 잘 안하게 된다. 옛날 분들은 집에서 애를 키운다고 하면 무시하는 경향이 있지 않나. ‘집에서 애나 보지’라는 말로 비하할 정도로 육아의 가치를 낮게 봤다. 아직도 남자가 육아를 전담하는 걸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남성 육아휴직자가 늘었고, 주변에도 적극적으로 육아에 참여하는 아빠들이 많다. 우리 형제가 산부인과, 소청과 전문의다 보니 누구보다 임신·출산·육아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줄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코로나 걸린 아기 유아식 레시피’ ‘며느리 출산선물 추천템’ 등 유튜브 주제는 어떻게 선정하나.
이재일 “의사가 의료지식을 말하는 채널은 많지 않나. 남들이 잘 다루지 않는 소재를 찾는 편이다. 사소하지만 진료실에서 많이 받는 질문에서 힌트를 얻는다. 진료시간이 짧아 다 대답하기 어려울 때가 많은데 유튜브에서 최대한 풀어내려 한다.”
이재현 “보통의 육아를 보여주는데 초점을 맞춘다. TV 예능에 나오는 부모는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아이와 놀아줄 시간도 많은 그야말로 ‘슈퍼맨’이다. 반대로 자녀는 키우기 힘들고, 부모조차 감당이 안되는 ‘금쪽이’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미혼 혹은 자녀계획을 세우는 신혼부부가 미디어의 편향된 모습만 보고 ‘내 자식은 저렇게 화려하게 키울 자신이 없다’고 포기하거나 ‘저런 문제아를 키우느니 차라리 혼자가 편하다’고 결론내리는 분위기다. 이들에게 평범한 육아가 얼마나 행복하고 가치있는 경험인지 알려주고 싶다.”
저출산의 주요 원인으로 ‘공포 마케팅’을 꼽았다.
이재현 “전반적으로 육아에 너무 힘이 많이 들어갔다. 임산부 시절과 마찬가지로 아이를 키울 때도 절대 하면 안 되는 것과 필수적으로 해야 할 것 몇가지 외엔 애써 많이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공포 마케팅은 부모로서 ‘무조건 이건 해야(사야) 한다’고 겁을 준다. 아이가 많아야 한둘인 시대 아닌가. 그러니 잘 키우고자 하는 욕심에 뭐든 과하게 해준다. 과영양, 과보호 이른바 ‘과잉 육아’다. 우리 부모세대에서 굵직한 육아 원칙은 ‘알아서 잘 큰다’와 ‘때려서라도 바로 잡는다’였다. 과거 부모에게는 육아법이란 말조차 낯설었다면 이제는 과하게 아이 중심으로 가정이 돌아간다. 모든 걸 아이 위주로 살지 못할 바에야 출산을 미루거나 안하는 편이 낫다는 게 지금 젊은 세대의 심정인 듯하다.”
이재일 “소셜미디어(SNS)에서 한동안 ‘자연분만 3대 굴욕(내진·관장·제모)’ 콘텐트가 화제였다. 이틀 간 진통하다 결국 응급수술로 낳았다는 후기도 넘친다. 과거에 비해 산모가 주체적으로 분만법을 선택하는 건 긍정적인 현상으로 보지만 전문의 의견보다 인터넷 후기를 맹신하는 분위기는 안타깝다. 저출산 문제도 이런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이미 출산한 가정에 대한 지원책도 중요하지만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갖게 하는게 저출산 대책의 시작이라고 본다.”

충청·강원 아이들, 용인병원에 와 진료

두 사람은 유튜브 채널 ‘산소형제TV’를 통해 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의학 상식과 육아 일상 등을 전한다. [유튜브]

두 사람은 유튜브 채널 ‘산소형제TV’를 통해 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의학 상식과 육아 일상 등을 전한다. [유튜브]

최근 학교에서도 ‘학부모 갑질’ 논란이 일고 있다. 학생의 교권 침해가 대두되는 배경에는 ‘내 자식 감싸기’에만 급급한 학부모가 존재한다. 의사들이 소청과를 기피하게 된 주된 요인도 보호자의 악성 민원이다. 형인 이재일씨는 내과와 외과 진료를 모두 볼 수 있는 점에 끌려 산부인과를 선택했다. 동생 재현씨는 그런 형을 보며 의사의 꿈을 키웠다. 유독 아이를 좋아하던 그에게 소청과 전공은 자연스러웠다. 비록 남들이 선호하지 않는 과라 해도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고, 아픈 아이를 고치겠다는 목표로 소청과 의사가 됐다. 재현씨는 “병원 출근 첫 날, 환상이 깨졌다”며 “소아과 의사는 아이가 아닌 엄마, 아빠를 상대하는 직업이라는 점을 간과했다”고 회상했다.

게다가 의료사고로 인한 소송 위험도 늘 따라다닌다. 최근에는 형사처벌 위험까지 커졌다. 2017년 이대목동 병원에서 병원내 감염에 따른 패혈증으로 신생아 4명이 숨지자 검찰은 주치의 등 의료진 3명을 구속 기소했다. 2022년 대법원까지 가서야 최종 무죄판결이 났지만 산부인과 지원자는 급감했다. 건강이 급격히 나빠질 수 있는 어린이 환자를 주로 보는 소아과 역시 민형사상 책임의 부담 때문에 몇년 사이에 전공의 수가 거의 5분의 1까지 줄었다.

소청과와 산부인과 의사라서 겪는 어려움이 있다면.
이재현 “응급실에서 근무할 때 한 아이가 급성폐렴으로 왔다. 말그대로 급격히 상태가 악화된 건데 보호자가 동네 개인 병원에서 진단을 잘못해서 아이 병을 키웠다고 주장하며 해당 의사에게 소송을 걸었다고 들었다. 똑닥(진료 예약 앱)으로 일찍 접수했는데 순서가 뒤로 밀린 것 같다며 간호사에게 뜨거운 커피를 끼얹은 보호자 사례는 일상이다. 특히 NICU는 보호자의 출입이 제한되다보니 의료진이 스스로를 부모라 여기며 정성껏 돌보는데 보호자가 적대적인 태도를 보일 때면 회의를 느낀다.”
이재일 “나는 분만병원에서 2년 정도 근무했는데 대형병원이 아니다 보니 위험한 상황이 생길 때마다 혼자 감당해야 했다. 주변에 의료사고로 소송 중인 경우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의사가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걸 느꼈다. 언젠가는 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늘 있고, 부인암으로 방향을 튼 데 영향을 미쳤다. 산부인과 의사는 위급한 상황에서 산모와 태아 모두 살리려고 노력한다.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환자를 100% 살리지 못한다고 형사상 책임을 묻는다면 누가 마음 놓고 진료할 수 있겠는가.”
출산율이 낮아지며 산부인과, 소청과 모두 존립 위기인데.
이재일 “그래서 우리가 좋지 않은 조합이다(웃음). 출산율이 낮아진 건 산과에서 가장 먼저 느낀다. 서울에서도 대형 분만병원이 문을 닫는데 지방에선 출생신고를 할 줄 모르는 주민센터 직원이 있을 정도다. 2017년부터 3년 간 강원도 홍천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하며 여군의 부인과 질환 진료를 담당했다. 당시 홍천에 산부인과가 딱 한곳 있었는데 그마저도 폐업해 산모들은 춘천까지 가야 했다.”
이재현 “지난 3월까지 전북 순창에서 공중보건의로 복무했다. 인구 2만5000명에 초등학교 전교생이 스무명뿐인 동네에는 공중보건의 외엔 소아과 의사가 전무했다. 아기가 아무리 어려도 엄마가 소아과에 갈 생각을 안한다. 없으니까. 시골 아이들은 정말 큰 병에 걸려야지만 소아과 의사를 만날 수 있다. 동네 어르신들이 날 볼 때마다 이런 소릴 했다. ‘여기서 돈 벌고 싶으면 소아과 의사하지 말고 장례식장을 하라’고.”
소청과 폐과 선언을 어떻게 바라보나. 
이재현 “소청과의 낮은 수가 문제는 예전부터 지적됐고, 앞서 정부가 소아응급실이나 NICU의 수가 체계를 손봐 대학병원을 우선 살리는 쪽으로 개선됐다. 이는 일선 병원의 수가 문제를 해결하는데는 도움을 주지 못했다. 그래서 개원의가 더이상 소청과 진료만으로는 병원 운영이 어렵다고 보고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문제는 정말 아픈 아이들이 갈 곳이 사리잔다는 점이다. 최근 수도권 대학병원의 NICU 한곳이 또 문을 닫았다. 이제는 지방이 아니라 수도권, 한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닌 국가적 문제로 봐야 한다. 내가 근무하는 용인 세브란스병원만 해도 충청도나 강원도에서도 온다. 그래도 병상이 모자란다. 예전에는 타 대학병원 전공의를 지원받아서라도 버티던 시스템이었다면 이제는 그럴 인력조차 없다. 이렇게 의사가 사라진다면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제발 내 아이가 아프지 않길 기도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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