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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속 피하는 법' 공유…'마약 입문방'선 사기딜러 검증도 한다

중앙일보

입력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대대적 단속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마약 판매상들이 이를 피하는 노하우를 텔레그램 등 대화방을 통해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27일 나타났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지난 4월 12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에서 열린 마약류 범죄 척결을 위한 전국 지휘부 화상회의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희근 경찰청장이 지난 4월 12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에서 열린 마약류 범죄 척결을 위한 전국 지휘부 화상회의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월 개설된 텔레그램 A 대화방은 대표적인 마약 입문 가이드 대화방으로 통한다. 최소 6000여명이 A 대화방에 참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마약 환각효과를 ‘행복감’ ‘우주여행’ 등으로 긍정적으로 미화하는 한편, “마약 부작용은 미디어가 만들어낸 잘못된 선입견”이라는 주장도 공유됐다. 마약 복용 꿀팁, 가상화폐를 통한 마약 거래 방법 등도 인기 게시글 중 하나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검·경의 마약 단속을 피하는 노하우도 함께 공유한다는 점이다. 대화방에는 “경찰이나 검찰에서 소변 검사할 때 피해갈 수 있는 요령” “압수수색을 당할 때 대처법” “증거를 인멸하는 방법” 등의 제목을 단 글들이 게시됐다. 대화방 운영자는 “최첨단 수사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라”며 수사당국을 조롱하기도 했다. 이들이 공유하는 노하우를 살펴본 한 경찰 마약 수사관은 “공유되는 수법 중에 실제 마약사범들이 써먹는 방법도 있다”며 “경찰도 아는 수법이기 때문에 처벌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텔레그램 A 대화방은 마약 환각작용을 긍정적으로 왜곡하면서 마약 수사 대응법도 공유하고 있어, 마약 범죄가 고도화됐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텔레그램 캡처

텔레그램 A 대화방은 마약 환각작용을 긍정적으로 왜곡하면서 마약 수사 대응법도 공유하고 있어, 마약 범죄가 고도화됐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텔레그램 캡처

사기꾼 마약 딜러를 검증하는 텔레그램 대화방도 5월 등장했다. 마약 구매비를 입금했지만, 던지기 장소에 마약이 없거나 퀵서비스로 빈 박스만 보내는 등 마약 구매 과정에서 사기를 당한 이들이 늘어나면서 생긴 대화방이다. 이 대화방은 27일 기준 3080명이 참여 중이다. 마약 구매자가 자신이 당한 사기 방법과 액수, 사기 딜러의 텔레그램 주소 등을 인증샷과 함께 공유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실제 대화방에는 “△△딜러에게 마약을 구매한 뒤 던지기 장소에서 한 시간째 흙을 파면서 마약을 찾아봤는데 없어서 울분이 터졌다”는 후기도 있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전문가들은 이같은 현상이 마약 범죄가 고도화된 증거라고 분석했다. 김낭희 형사·법무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추적이 어려운 텔레그램을 이용해 마약 판매를 넘어 범죄 혐의 회피까지 돕고 있는 것”이라며 “마약범죄가 고도화된 흔적이다. 마약 노하우를 공유하는 텔레그램 대화방 확산을 차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경찰 관계자는 “현행법상 함정수사는 일반인인 척 마약상에게 접근해 현장을 급습하는 ‘기회제공형’ 수사만 가능하고, 위장수사는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성범죄만 가능하다”며 “텔레그램에서 마약 관련 홍보를 하는 것까지 추적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김낭희 연구위원은 “급증하는 마약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마약 범죄를 유연하게 수사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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