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실리 외교' 그들 잡자"…박진, 8년만에 '형제국가' 가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박진 외교부 장관이 한국 외교부 장관으로는 8년만에 튀르키예를 방문한다. 지난 5월 튀르키예 대선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재집권한 뒤 한국의 장관급 고위 인사가 튀르키예를 찾는 건 처음이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26일 밤 인천공항에 오스트리아·튀르키예·이탈리아·교황청 방문을 위해 출국하는 모습. 오른쪽은 최태호 외교부 유럽국장. 외교부.

박진 외교부 장관이 26일 밤 인천공항에 오스트리아·튀르키예·이탈리아·교황청 방문을 위해 출국하는 모습. 오른쪽은 최태호 외교부 유럽국장. 외교부.

형제 국가 8년만 방문

외교부는 27일 "박 장관은 오는 29일 하칸 피단 외무장관과 회담을 통해 형제 국가로서 튀르키예 신정부와 우호 관계를 재확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전 70주년을 맞아 평양에서 북ㆍ중ㆍ러 고위급 회동이 이뤄지는 등 한반도 상황이 엄중한 가운데 박 장관이 튀르키예를 찾는 건 그만큼 전략적 중요성이 크다는 판단에서다.

튀르키예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로 최근 지정학적 중요성이 급격히 커졌다. 서방과 반(反) 서방 진영을 오가는 이른바 '박쥐 외교', '체리피킹 외교'로 실리를 챙기기 때문이다. 외교 소식통은 "국제사회에서 갈수록 목소리를 높여가는 튀르키예를 최대한 서둘러 우리 편으로 잡아둬야 한다"고 말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지난 5월 수도 앙카라에서 연설하는 모습. 로이터.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지난 5월 수도 앙카라에서 연설하는 모습. 로이터.

튀르키예는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 중에선 유일하게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았다. 미국의 압박에도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 수입을 오히려 늘렸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줄곧 '친구'로 부르며 러시아와 '특별한 관계'를 과시했다.

러시아와 '밀당'

그러다 최근 들어선 러시아의 '뒤통수'를 연속으로 때렸다. 러시아의 반발을 무시한 채 억류 중이던 우크라이나 지휘관을 풀어주는가 하면, 이달 초 리투아니아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 직전에느 기존의 반대 입장을 뒤집고 스웨덴의 나토 가입을 전격 찬성하고 나섰다.

튀르키예가 테러리스트로 규정하는 쿠르드노동자당(PPK)을 스웨덴이 지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재확인받고, 튀르키예의 유럽연합(EU) 가입에 대한 지지도 확보하며 실리를 챙겼다.

러시아가 최근 파기해 논란이 되고 있지만, 지난해 7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흑해 곡물 협정'을 중재한 것도 튀르키예였다. 외교가에서 "튀르키예는 어느 쪽에도 그다지 의리를 지키지 않지만 누구나 자기 편으로 만들고 싶은 나라"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카자흐스탄에서 만난 모습. 타스. 연합뉴스.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카자흐스탄에서 만난 모습. 타스. 연합뉴스.

"국제적 입지 최상" 

튀르키예 전문가인 이희수 성공회대 교수(한ㆍ튀르키예 친선협회 사무총장)는 이날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현재 유럽연합(EU), 미국, 중국, 러시아 모두가 튀르키예에 러브콜을 보내는 상황이라 에르도안의 국제적 입지는 집권 이후 최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에르도안 정부는 한국과 협력 의지가 분명하기 때문에 고위급 교류를 통해 협력의 내실을 다져야 한다"고 말했다.

외교부도 이번 한ㆍ튀르키예 외교장관 회담의 의제로 "방산·인프라·원전 등 분야의 전략적 협력"을 꼽았다.

주튀르키예한국대사관은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앙카라 한국공원에서 6·25 73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주튀르키예한국대사관. 연합뉴스.

주튀르키예한국대사관은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앙카라 한국공원에서 6·25 73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주튀르키예한국대사관. 연합뉴스.

또 튀르키예는 6·25 전쟁의 주요 참전국으로 한국민도 '형제국가'로 인식한다. 박 장관이 튀르키예를 찾는 29일은 정전협정 체결일(7월 27일) 이틀 뒤이기도 하다. 이에 외교부는 박 장관이 수도 앙카라의 '한국전쟁 토이기(튀르키예) 참전 기념탑'과 '한국공원' 등 6·25 전쟁 참전 용사를 기리는 일정도 추진하고 있다.

왕이도 튀르키예행

이런 가운데 26일 왕이(王毅)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도 외교부장 복귀 후 첫 공식 행보로 튀르키예를 찾았다. 한ㆍ중 외교 수장이 공교롭게 사흘의 간격을 두고 차례로 튀르키예를 방문하는 셈이다.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26일 하칸 피단 튀르키예 외무장관을 만난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26일 하칸 피단 튀르키예 외무장관을 만난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이날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왕 위원은 피단 외무장관과 회담에서 "진정한 다자주의를 수호하고 일방주의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이에 피단 외무장관도 "중국의 발전을 비방하는 행위에 반대하고 중국 관련 '위협론'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왕 위원은 튀르키예 방문 직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공) 고위급 안보 회의에 참석했는데, 이날 협의에서도 브릭스 '몸집 불리기'에 동참을 요구했을 가능성이 있다.

같은 날 에르도안 대통령 또한 왕 위원을 만났다. 중국 외교부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튀르키예는 나토가 아시아·태평양 지역 활동을 강화하는 것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최근 스웨덴의 나토 가입을 지지하며 나토 확대에 일조했던 튀르키예가 중국 측을 만나선 나토의 영향력에 대한 '선 긋기'에 동조하며 코드를 맞춰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26일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을 만난 모습. 신화. 연합뉴스.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26일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을 만난 모습. 신화. 연합뉴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