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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틴 살인' 원심 깬 대법…"아내가 음식에 넣었단 증거 없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대법원 전경. 뉴스1

대법원 전경. 뉴스1

남편에게 니코틴 원액을 섞은 음식물을 먹여 살해한 혐의로 징역 30년을 선고받은 부인에 대해 대법원이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27일 2021년 ‘니코틴 살인사건’ 피고인 A씨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수원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니코틴을 음식에 섞어먹였다는 증거가 충분하지 않고, 합리적인 의심없이 유죄로 확신할 수 없어 추가 심리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2021년 5월 25일 무슨 일이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A씨는 2021년 5월 25일 피해자인 남편에게 출근 전인 오전 7시쯤 미숫가루‧꿀‧우유를 섞은 음료와 햄버거를 줬고, 퇴근 후인 오후 8시쯤엔 흰 죽을 줘서 먹게 했다. 한 밤 중인 오전 2시쯤엔 찬 물 한 컵을 남편에게 건네 마시게 했다. 남편은 이튿날 아침 숨진 채로 발견됐고, 추정 사망시각은 오전 3시경, 사인은 급성 니코틴 중독으로 조사됐다. 부검 결과 남편의 위에서 흰 죽과 물로 추정되는 내용물, 과량의 니코틴이 발견됐고 혈액에서는 치사량의 니코틴(2.49~5.21mg/L)이 검출됐다.

5월 25일 아침에 미숫가루 음료를 마신 남편이 오전 7시 29분쯤 “가슴이 쿡쿡 쑤시고 타는 것 같다”고 전화를 했고, 저녁을 먹은 뒤 오후 10시 30분쯤 극심한 흉통을 호소해 응급실에 다녀온 것도 니코틴 중독의 증상으로 제시됐다. A씨가 통증을 호소하는 남편에게 “꿀 유통기한이 2016년이었네”라고 말하고, 응급실에서도 ‘2016년 꿀’ 얘기를 해서 니코틴 중독 증상을 은폐하고 치료 기회를 놓치게 했다는 혐의도 받았다.

다만 A씨가 음식물에 니코틴을 집어넣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찾지 못했다. 집 안에서 벌어진 일인데다, 당시 유일한 목격자였던 자녀는 6살로 어렸기 때문이다. A씨는 범행을 부인했고, A씨의 외도 및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남편이 자살했을 가능성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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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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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에서는 미숫가루, 흰 죽, 찬 물에 니코틴을 몰래 섞은 점이 모두 인정됐다. 재판부는 “이 사건과 같이 주거지에서 목격자와 CCTV가 없는데 피고인이 범행을 부인한다면, 검사가 간접사실만으로 공소사실 일체를 완벽히 입증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또 “간접증거가 개별적으로는 증명력이 없지만 전체 증거를 종합적으로 고찰할 경우 증명력이 있고, 이 부분 공소사실은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됐다”며 유죄를 인정했다.

하지만 2심은 세 번의 범행 중 미숫가루와 흰 죽 부분은 유죄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응급실에 갔을 때 채혈한 혈액이 가장 직접적인 증거인데 이미 폐기돼, 이보다 앞서 나타난 증상들이 니코틴 중독에 의한 것이라는 걸 입증할 증거가 없다고 본 것이다. 구토·복통 등 남편이 보였던 증상에 대한 감정의견도 “니코틴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로 갈렸다. 햄버거에 의한 식중독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는 거였다.

대법원은 2심이 문제삼은 미숫가루와 흰 죽에 이어 나머지 범죄사실인 찬 물 부분마저 입증이 부족하다고 보고 유죄 판결을 파기했다. 남편의 증상이 니코틴으로 인한 것인지와 별개로, A씨가 찬 물에 니코틴 원액을 탔다는 사실 자체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른 경위로 니코틴을 섭취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남편이 마시고 남은 물에 대한 분석, A씨가 니코틴으로 살인하는 방법을 검색하는 등 사전에 계획한 증거들도 부족하다고 했다.

불륜남과 결합, 경제적 이득 위해 살인? 대법 “추가 심리 필요”

신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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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과 2심 모두 A씨의 범행 동기는 인정했으나, 대법원은 이 부분에 대해서도 추가 심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A씨는 2018년부터 외도를 하고 있었고, 공방을 운영하며 개인 빚이 점점 늘어 2021년부터는 공과금과 신용카드 대금도 연체했다. 이 사실을 안 남편이 빚을 대신 갚아주기도 했다. 1심 재판부는 “남편이 죽으면 보험금·부동산·예금 등을 상속받고 내연남과 자유롭게 살 수 있을거라 생각해 니코틴 용액으로 살인을 결심했다”고 봤고, 2심 재판부의 판단도 같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계획적으로 살인할 충분한 동기인지 의문이 있다”며 더 심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다른 ‘무기징역’ 니코틴 살인 보니…계획·증거 확실 

앞서 국내에 알려진 니코틴 살인사건 두 건의 피고인들은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두 건 모두 이 사건과 마찬가지로 피고인들이 끝까지 범행을 부인했고 니코틴을 음식물에 타는 장면을 명확히 입증하는 증거는 없었지만, 범행 앞뒤 행적과 증거가 확실해 간접사실만으로도 유죄가 인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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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국내 첫 니코틴 살인사건으로 알려진 남양주 살인사건은 6년간 사실혼 관계였던 남편과 몰래 혼인신고를 한 지 2개월만에 남편이 사망한 사건이다. 이 사건 피고인은 남편 사망 직후 112 신고도 없이 바로 장례를 시도한 점, 보험금 수령 및 상속이 지나치게 빠른 점 등으로 덜미가 잡혔다. 수사 결과 내연남과 공모한 기록과 사전에 범행을 준비하며 ‘3일장’ 등을 검색한 사실 등이 입증됐다.

2017년 오사카로 신혼여행을 가서 아내를 살해한 피고인도 사전에 햄스터에 니코틴을 주입해 실험을 해보는 등, 범행을 계획한 정황이 명확하게 입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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