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중앙] 특별 인터뷰 | 라종일 교수가 분석한 ‘한국전쟁의 비밀스러운 구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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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라종일 교수가 분석한 ‘한국전쟁의 비밀스러운 구조’

‘양안(兩岸)(중국·대만) 긴장’은 6·25 기획한 스탈린 유산


■“스탈린, 강대국 부상하는 중국 견제 위해 김일성의 한반도 전쟁 승인”
■“윤 대통령, 북한에 김일성의 전쟁 책임과 평화 공존 방안 함께 물어야”
■“국정원의 최근 인사 파동은 정보·정책의 밀착에 따른 필연적 부산물”
■“분단 야기한 국론 분열과 갈등의 폭주, 21세기 대한민국 위태롭게 해”

라종일 동국대 석좌교수는 7월 5일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전쟁의 개전(開戰)과 휴전(休戰)이 모두 주변 강대국 이해관계의 산물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라종일 동국대 석좌교수는 7월 5일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전쟁의 개전(開戰)과 휴전(休戰)이 모두 주변 강대국 이해관계의 산물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한반도의 여름은 물리적으로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뜨거운 계절이다.

해방(1945년 8월), 전쟁(1950년 6월), 휴전(1953년 7월)에 이르기까지 현대사에서 남북한과 외세가 뒤엉킨 결정적 사건들은 무더운 여름과 오버랩된다. 국권 회복과 동시에 분단(分斷)이 찾아왔고, 분단은 동란(動亂)으로 치달았으며, 동란이 휴전(休戰)으로 봉합되기까지는 3년이 걸렸다.

2023년 7월 27일은 휴전 7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 뒤로 다행히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남북 간에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불안한 대치 국면이 70년째 이어지고 있다. 전쟁도 아니고, 평화도 아닌 지금의 어정쩡한 상황은 휴전을 그저 오래된 기억 속의 빛바랜 이벤트 정도로만 되새기게 한다.

라종일 동국대 석좌 교수는 지금이라도 한국전쟁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정의(定義)하고, 전쟁의 부산물들에 대한 인식을 냉철하게 가다듬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쟁을 잉태한 전사(前史)와 전쟁에서 파생된 역사가 지금도 대한민국의 존립과 생존 여건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과 피- 정치의 이해](2022년 10월), [세계와 한국전쟁](2019년) 등 틈틈이 한반도 분단과 전쟁에 관한 생각을 기록으로 남긴다.

해방 직후 우리를 승전국이 아닌 분단국으로 전락하게 한 ‘어떤 힘’이 오늘날 남북한 관계, 대한민국 내부의 정치에서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그는 감지한다. 그 힘이란 결정적 시기에도 소멸하지 않는 내분, 갈등, 분열과 같은 원심력·척력이다. 라 교수는 “해방 국면이나 지금이나 우리의 ‘정치적 능력’에 대한 회의가 존재한다”면서 “생각과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끼리 뜻과 힘을 모으는 일은 우리가 직면한 가장 어려운 문제”라고 지목했다.

라 교수는 평생을 국내외 대학에서 외교·안보 분야 연구에 몰두해온 석학이다. 진보정권에서는 국가정보원 북한과 해외 담당 차장(김대중 정부), 대통령 비서실 국가안보보좌관(노무현 정부) 등 한동안 고위 공직도 수행했다. 그래서 한반도 안보 사정에 밝고, 권력에 대한 이론과 경험도 풍부하다. 월간중앙은 7월 5일 라 교수를 서울 송파구 자택에서 만나 현대사의 여름에 아로새겨진 전쟁과 평화 그리고 정치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전쟁’과 ‘평화’에 대한 공방이 오갔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6·25전쟁 73주년에 즈음해 “평화는 굴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닌 강력한 힘으로 지키는 것”이라고 강조했지요.

“힘을 강조하는 건 옳아요. 힘이 있어야 안보가 보장되니까요. 그런데 힘만으로는 안 되는 게 또 안보라고 할 수 있어요. 힘을 잘 쓸 명분 등 힘의 구조적인 면뿐만 아니라 기능적인 면이 고려돼야 합니다. 힘은 전략적 목표를 정의할 수 있어야 하고, 목표를 효과적으로 성취할 전략을 구사할 수 있을 때 써야 합니다. 가장 좋은 건 힘을 쓰지 않고도 목표를 달성하는 것인데, 그러자면 여유를 가져야겠지요. 저는 윤 대통령이 6·25전쟁 73주년에 즈음해 한국전쟁은 김일성의 명백한 잘못이며, 이제는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고 남북이 힘을 모아 국제사회로 나아가자는 메시지를 제시해 주기를 기대했어요. 이는 한반도의 화해와 평화에 대한 어젠다를 우리가 주도적으로 정의하는 일이니까요.”

“지금은 힘 강조하는 일전불사 내세울 때 아냐”

6·25전쟁 발발 73주년인 6월 25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찾아 ‘한·미 참전용사 10대 영웅’ 전시 코너 방명록에 서명하고 있다.

6·25전쟁 발발 73주년인 6월 25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찾아 ‘한·미 참전용사 10대 영웅’ 전시 코너 방명록에 서명하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아무리 더러운 평화라도 이기는 전쟁보다 낫다’고 했지요.

“그러면 나라를 지키는 국군은 왜 필요한 거죠? 임진왜란 때 외적과 싸운 이순신 장군이나 의병들은 바보인가요? (이런 말씀 하는 분들은) 어딘가에서 선(線)을 그었어야 해요. 김정은 치하에서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겠다는 그런 결연한 자세를 견지하는 게 국가 지도자의 기본자세이지요. 이런 각오가 오히려 평화의 기초가 됩니다.”

이 대표의 말은 전쟁이 나면 나라가 초토화되니 북한을 달래서라도 평화를 유지하자는 취지 아닐까요?

“그런 저자세가 아니어도 전쟁은 막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교류협력을 통해 평화 레짐(구조)을 유지할 수 있다면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미리부터 저자세를 취하면 상대는 더 세게 나오는 것 아닌가요? 저는 ‘더럽게’ 생명을 부지하는 것보다는 당당하게 싸우는 걸 택할 겁니다. 이 대표의 말이 어떤 뜻인지는 잘 몰라도 추구하는 가치를 지키려면 싸울 각오도 해야 하는 겁니다. 어디에 빌붙거나, 기대어서는 평화가 유지될 수 없는 법이니까요. 저 개인적으로는 지금의 국제 정세를 한국전쟁 이래 가장 어려운 시기로 봅니다. 민족적 차원의 냉철한 사고와 각오가 필요한 때입니다.”

언급한 한국전쟁에 대한 어젠다를 정의하는 방법론이 있나요?

“사람 관계도 마찬가지이지만 국가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현안 어젠다를 정의(定義)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햇볕정책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현안을 주로 정의한 쪽은 북한이었고, 대한민국은 그저 따라가는 처지였죠. 북한이 무리해가며 핵,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를 연일 과시하는 것도 남북 관계의 어젠다를 자기 쪽에 유리하게 정의하려는 시도였지요.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전쟁의 책임소재를 분명히 함과 동시에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예컨대 ‘한국전쟁에 대한 공동 연구’를 북한에 제안하거나, 2020년 북한이 제정한 ‘반동 문화 사상 배격법’ 같은 모순을 정면으로 제기할 수 있지요. 이 법안은 북한 정권이 결코 극복할 수 없는 체제 모순과 실패를 상징하는 사례입니다. 이는 북한 엘리트층을 겨냥하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김씨 일가 내부는 외부 문화를 즐기면서, 인민들은 가혹하게 처벌을 하는 모순 같은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같이 힘을 강조하며 ‘일전불사(一戰不辭)’와 같은 자세로 우리가 대처하는 건 핀트가 맞지 않는 정책인 거죠. 우리는 강자입니다. 대한민국의 위상에 걸맞은, 합리적이고 평화지향적이며 상대방의 어려운 상황을 이해하여 주는 식의 대응이 요구되는 시기입니다.”

이 시점에서 한국전쟁을 정의하는 이점(利點)은?

“대한민국에 70여 년 전의 전쟁은 지나간 역사의 일부이지만, 북한에는 정권의 정당성이 걸린 중요한 사안입니다. 북한 정권 정통성의 큰 지주(支柱) 중 하나가 왜곡된 한국전쟁의 역사니까요. 김일성은 ‘국토완정(國土完整)’과 ‘사회주의혁명’ 명분으로 전쟁을 일으켰지만, 그 결과 분단은 더욱 굳어지고, 남한에서는 반공주의가 압도했습니다.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할 김일성은 거짓말로 상황을 호도하고 정당화했지요. ‘미국과 남한의 침략을 내가 물리쳤다’는 식으로 말이죠.

그래서 적절한 시기에 우리 정부가 북측에 공개 제안을 하는 겁니다. 예컨대 ‘북한 정권이 일으킨 전쟁으로 인해 분단은 굳어지고, 남북한 적대의 골은 깊어졌다. 이제라도 지난 세기의 어리석은 일을 함께 반성하고 민족이 평화와 복지를 누리도록 힘을 모아 노력하자’고 말입니다. 한국전쟁과 관련해 문재인 전 대통령이 SNS에 [1950 미중전쟁]이란 책을 소개했지요. 이게 자칫 북한 김일성의 전쟁 책임을 가리는 결과로 이어질까 걱정도 됩니다.”

문 전 대통령에게 한국전쟁 책 보낸 이유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휴전협정 조인식. / 사진:국사편찬위원회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휴전협정 조인식. / 사진:국사편찬위원회

문 전 대통령의 메시지에 굴절된 측면이 있다는 말인가요?

“한국전쟁의 주역이자 가장 큰 행위자는 (중국이 아닌) 스탈린이니까요. 어쩌면 중국도, 한국도, 미국까지도 희생자였습니다. 스탈린의 허락 없이는 김일성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거든요. 군사력, 물자 보급은 물론 전략·전술·지휘까지 소련이 허락하고 도와야 가능한 전쟁이었죠. 그런 전쟁을 계속 불허하던 스탈린이 갑자기 마음을 바꿔 전쟁을 허락했어요. 공산당이 통일한 중국을 견제하고 완전한 통일을 막으려는 차원이었죠.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지면 중국의 대만(타이완) 통일은 물 건너가는 상황이었습니다. 실제로 북한이 남침하자 미국은 제7함대를 대만 인근 해역에 급파했지요. 스탈린의 계략이 맞아떨어진 겁니다.”

스탈린의 계산법에 따르면 한국전쟁은 세계전쟁이었군요?

“한국전쟁 직전 대륙을 통일한 중국 공산당 정권은 소련이 동북지역에 차지했던 이권을 되찾으려 했고, 스탈린은 언짢아했지만 그걸 거절할 순 없었습니다. 그래서 스탈린은 중국 내전이 계속되기를 바랐습니다. 실제로 공산군이 승기를 잡고 통일을 이룩할 즈음 장강(長江, 양쯔강) 이남으로는 진격하지 말라는 조언을 하기도 했으니까요. 마오쩌둥은 이 말을 듣지 않았지요. 스탈린은 대만 침공을 앞둔 마오쩌둥의 해·공군 지원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스탈린은 중국 동북지역에서 확보한 이권에 대한 미련 이외에도 중국이 통일돼 강대한 국가로 성장하는 것도 탐탁지 않게 여겼습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면 대만까지 정복하는 것은 불가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과거나 지금이나 자국 이익을 향한 치열한 모색은 여전하군요?

“그렇습니다. 한국전쟁 전 미국의 ‘트루먼-애치슨 라인’은 대만을 완전히 포기하는 전략의 일환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전쟁이 터진 뒤 달라졌습니다. 스탈린은 미국의 한국전쟁 참전을 기대했어요. 미·중이 한반도에 격돌하기를 바랐던 것이죠. 개전(開戰) 직후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유엔군 파병 결의안을 제출했지요. 당시 유엔 주재 소련 대사 야곱 말리크가 안보리에 참석해 거부권을 행사했다면 미국이 유엔 깃발로 참전하지 못했을 겁니다. 안보리에 참석하려던 말리크 대사를 스탈린이 말렸습니다. 이는 서방 측만 아니라 소련의 외교 라인도 의아해했던 일이지요. 스탈린의 셈법은 미국뿐만 아니라 자기 측까지도 속인 것입니다. 소련의 경쟁자가 될 수도 있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포석이 적중한 것이지요. 미국의 키신저도 나중에서야 이런 내막을 깨닫고 놀랐다고 합니다. 이런 마당에 어떻게 6·25를 미·중 간의 전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런 내용을 담은 졸저 〈세계와 한국전쟁〉을 문 전 대통령에게 보내드렸습니다. 한국전쟁의 본질을 통찰하시는 데 참고가 되시리라 생각해요(7월 14일 문 전 대통령이 전화로 감사의 뜻을 전했고, 간단히 책 내용에 관한 얘기를 나누었다고 라 교수가 밝혔다).”

석연찮게 취소된 휴전 70주년 학술회의

1949년 12월 29일 자리를 함께한 마오쩌둥과 스탈린(오른쪽). 두 사람은 한국전쟁에 대한 셈법이 달랐다.

1949년 12월 29일 자리를 함께한 마오쩌둥과 스탈린(오른쪽). 두 사람은 한국전쟁에 대한 셈법이 달랐다.

얼마 전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던 휴전 70주년 관련 학술회의가 무산됐죠?

“전쟁기념관과 군사편찬연구소가 공동 주최하는 학술회의가 6월 14일 서울 전쟁기념관 문화아카데미에서 열릴 예정이었어요. 정전(停戰)체제의 기원과 특징을 토론하는 학술회의였는데 저를 비롯해 여러분들이 원고 청탁과 함께 초청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학술회의에 임박해 행사 자체가 없던 일로 되고 말았습니다. 전쟁기념관으로부터 갑자기 행사를 안 하겠다는 얘기만 들었을 뿐, 왜 안 하는지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이 없었어요. 좀 미안했던지 나중에 전쟁기념관 쪽에서 하는 말이 민간 차원에서 학술회의를 한다면 행사장은 빌려주겠다고 하더군요. 참 황당한 일입니다.”

교수님이 차장으로 재직했던 국가정보원이 얼마 전 인사파동으로 홍역을 앓았습니다.

“내막은 저도 잘 몰라요. 하지만 내부의 인사 자료들이 외부에 막 돌아다니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이는 아주 중대한 사안이기도 합니다.”

짚이는 구석이라도 있지 않을까요?

“원래 정보는 누구나 챙기는 것입니다. 기업, 언론, 경찰이나 각종 국가기관은 제각각 자기 관심사의 정보를 챙깁니다. 공공과 민간의 영역에서 수집하는 정보는 방대하지만 그걸 다 쓰는 건 아니에요. 이를 활용하고자 제가 국정원에 있을 때 국정원과 민간의 정보 교류·공유를 추진했지요. 국정원은 국가를 떠받치는 중앙의 정보기관이므로 모든 정보를 총괄해서 다루는 게 당연하니까요. 그런데 우리 국정원엔 태생적인 한계가 있어요. 정치하고 너무 긴밀하게 연결된다는 점입니다. 정보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정보’와 ‘정책’의 분리입니다. 둘이 밀착되면 정보가 왜곡, 오염됩니다. 정보의 왜곡과 오류는 한국전쟁, 이라크전쟁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에서도 되풀이됐습니다. 우리의 경우는 정치, 정책, 정보가 서로 연관됐지요. 연장선에서 이번 국정원 인사 파동이 일어난 게 아닌가 합니다.”

정보가 왜곡, 오염될 때 생기는 부작용과 손실을 듣고 싶네요.

“먼저 인사(人事)가 꼬입니다. 국정원은 정권과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죠. 우리는 국정원과 정권이 너무 밀착하는 경향이 있다 보니 지연, 학연 등 연줄도 동원되지요. 그 결과 특정인들이 위계질서를 무시하고 제 마음대로 전횡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조직 관리에서 제일 중요한 게 인사상의 신상필벌(信賞必罰)인데 그게 안 되는 것이죠. 정치판에 줄 대고, 실세를 등에 업으면 출세하는데 누가 죽어라고 위험을 무릅쓰고 몸을 던져 일할까요. 그래서 국정원장도 검찰총장처럼 임기제를 도입했으면 합니다. 그래야 어느 정도의 자율성이라도 보장할 수 있으니까요.”

“국정원, 시민사회 어디든 출입할 수 있어야”

라종일 동국대 석좌교수는 우리 내부에 자리한 분열과 갈등 요소가 해방 이후는 물론 현재까지도 공동체를 옥죄고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라종일 동국대 석좌교수는 우리 내부에 자리한 분열과 갈등 요소가 해방 이후는 물론 현재까지도 공동체를 옥죄고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역대 정부 국정원을 돌이켜본다면?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을 거치면서 국정원장 7명이 갈렸습니다. 업무 파악도 제대로 하기 전에 집에 가야 하는데 어떻게 제대로 된 지휘나 기능이 가능할까요. 이명박 정부에서도 정보와는 관계없는 분이 국정원장을 오래 했고, 파행도 겪었죠. 박근혜 정부에서는 남재준 국정원장이 인사 관련 데이터를 전산화해서 공정하게 하려고 했지만 남 원장 이후에는 중단된 걸로 압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초고속 승진하는 케이스가 나오면서 열심히 일하기보다는 지연, 학연에 줄을 대는 일이 잦았다고 들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원은 제대로 일을 못 한 거 같아요. 국가의 안전을 지키고, 북한 정보 같은 걸 잘 챙기고 해야 하는데 그런 일이 제대로 안 된 것이죠.”

특히 미흡한 분야가 있었다는 얘기로 들립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한 번도 간첩을 잡은 일이 없었죠. 또 간첩 잡는 일도 경찰한테 다 넘기잖아요. 이건 말이 안 되는 조치입니다. 간첩은 종류가 여러 갈래입니다. 북한이 양성해서 남파하는 간첩도 있지만, 무의식적인 간첩 혹은 ‘양심에 따라’ 자발적으로 북한에 협력하는 경우도 있지요. 냉전시대 서방 진영에서 일어난 많은 간첩 행위는 소련이 직접 고용한 간첩이 아닌, 미국이나 유럽의 이른바 ‘양심적인’ 지식인들인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레닌의 표현을 빌리면 ‘유용한 바보들(Useful Fool)’입니다. 대한민국에서도 북한을 돕는 게 옳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지요. 그럴수록 국가정보원은 시민사회를 비롯해 어디든 출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더구나 내년 1월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이 폐지되면 그 일이 경찰로 넘어갑니다. 문재인 정부는 이렇게 중요한 임무를 경찰로 이관하면서 제대로 된 보완 조치도 하지 않았지요. 왜 그랬는지 이해하기 어렵더군요.”

노무현 정부 시절 주일대사를 지낸 분으로서 한·일 관계의 특수성을 잘 알 것 같습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로 나라가 떠들썩합니다.

“과학적 방법으로 검증해서 어느 정도 유해한가를 따지고, 국제적으로 유사 사례는 없는가를 찾아보는 길 외에는 뾰족한 방도가 없을 거 같아요. 우리는 중국의 황사, 미세먼지 피해도 많이 봤잖아요. 우리가 중국을 대하듯 일본도 대하는지도 돌아볼 문제입니다.”

우리가 일본과 관련된 사안에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왜일까요?

“일본은 무조건, 전부 다 나쁘다는 사고는 말았으면 해요. 우리에게 일본이라는 건 큰 추상체(抽象體)예요. 일본 하면 한반도 강점(强占), 3·1운동 탄압, 유관순 열사, 이런 걸 연상하게 됩니다. 우리가 특별히 일본에 불편한 감정을 가지는 건 민족주의가 싹트는 시기에 일제에 강점당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남북한 공히 나라를 세울 때 그 정당성을 항일 투쟁에서 찾았기에 집중적으로 항일 투쟁 관련 교육을 많이 행한 측면도 있지요. 지금은 정치적인 입지를 노려 무조건 반일·항일을 부추기는 이들도 없지 않잖아요. 한·일 관계는 중대합니다. 일본에는 군국주의만 있는 게 아니고 양심적인 흐름도 있습니다. 무조건적인 항일·반일이 아닌, 보편적이고 정당한 차원에서 일본을 대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북한 관련 정보를 가장 많이 가진 나라가 일본이고, 극동 미군의 주력이 주둔하는 곳도 일본이라는 점도 생각해 볼 현실입니다.”

대한민국의 놀라운 성취와 놀라운 정치

요즘은 외교와 안보 이슈까지도 국내 정치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드는 형국입니다.

“좀 다른 얘기입니다만, 우리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승전(勝戰)국 대열에 합류하지 못했잖아요. 당시 우리 민족은 힘에 부칠 정도로 처절한 항일투쟁을 전개했음에도 말이죠. 그건 바로 항일운동이 한곳으로 모이지 않은 탓도 있습니다. 프랑스는 비시 정부가 독일과 손잡고 전쟁에 협력했음에도 승전국 지위를 획득했습니다. 그건 드골의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모든 정파, 활동가가 이념적 지향, 이해관계를 떠나 똘똘 뭉쳐 레지스탕스 활동을 벌였기에 연합국이 저항의 실체를 인정해서입니다. 만약 우리도 항일 투쟁의 연합체, 구심점을 굳건히 세우고 결집된 민족 역량을 발휘했다면 승전국 대열에 합류했을지도 모릅니다. 대한민국은 세계가 부러워하는 놀라운 성취를 이룩한 국가이지만, 정치 영역의 난맥상은 결코 녹록지 않아 보입니다. 어느 사회나 두 가지 힘이 충돌하는 갈등은 있게 마련입니다. 이 갈등이 사회 전체에 유리한 방향으로 작용할 수도 있고, 파괴적인 동력으로 쓰일 수도 있습니다. 갈등을 잘 공론화하고, 신뢰와 상식에 근거해 해소하는 지혜가 요구되는 시절 같습니다.”

- 글 박성현 월간중앙 지역전문위원 park.sunghyun@joongang.co.kr /사진 최기웅 기자 choi.gi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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