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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마비 아버지 옆에서 책 낭독 3년 “치유 받는건 나더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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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요즘 저는 아버지께 책을 읽어드립니다’ 저자 김소영 전 대표(왼쪽)와 아버지. [사진 김소영]

요즘 저는 아버지께 책을 읽어드립니다’ 저자 김소영 전 대표(왼쪽)와 아버지. [사진 김소영]

“잘 이해가 안 됐어요.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13년 전 낙상 사고 이후 전신 마비로 병상에 누워 계신 80대 아버지, 옆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대소변을 받아내는 어머니. 김소영(52) 전 허스트중앙 대표는 한동안 부모님께 닥친 시련이 혼란스러웠다고 털어놨다. 지난 21일 서울 중구 정동길 그의 사무실에서 만난 김 전 대표는 “열심히 베풀며 살던 부모님의 삶이  이러한 결말인 것인지, 그렇다면 나는 어떤 기준으로 살아야 하는 건지 회의감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변화는 책을 읽으면서 시작됐다. 퇴사 후 그는 책을 통해 삶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 노력했다. 점차 자신이 치유받고 있음을 깨달았고, 누워 계신 아버지와 이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상의 아버지 옆에서 3년째 책을 낭독하게 된 계기다.

『요즘 저는 아버지께 책을 읽어드립니다』

『요즘 저는 아버지께 책을 읽어드립니다』

지난달 28일 출간한 에세이집 『요즘 저는 아버지께 책을 읽어 드립니다』(사진)에 이러한 경험을 담았다. 그는 “사람들이 효녀라고 하는데, 책의 유익함을 경험하지 않았으면 이 일(낭독)을 하진 않았을 것 같다”며 “사람이 힘들면 ‘내 안의 고난’에만 갇혀 있기 마련인데 책을 읽으면 생각의 시야가 넓어지고, 인생을 줌아웃해서 볼 수 있는 시각이 생긴다”고 말했다. ‘비블리오테라피’(독서치료)의 효능을 경험했다고 강조했다.

소설부터 에세이, 고전문학, 우화집까지 김 전 대표가 낭독한 책은 30여 권에 이른다. 코로나19 유행 때는 휴대전화로 낭독을 녹음한 뒤 파일을 전송했다.

아버지와 할 말이 생겼고 교감도 늘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사후생』에 죽음에 가까워지면 돌아가신 분들이 마중을 나온다는 내용이 있다. 아버지께 누가 마중 나올 것 같냐고 여쭤보니 ‘돌아가신 어머니가 마중 나오겠지’ 하시더라”면서 “이렇게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책을 통해 대화를 나누며 아버지의 장점을 많이 발견했고 그걸 물려받은 것 같아 자긍심도 들었다”고도 했다.

가장 큰 변화는 김 전 대표 자신에게 나타났다. 아버지가 사고를 당하고 7년 후, 두 아들 옆에 있기 위해 회사를 그만뒀던 그는 허탈감을 크게 느꼈다고 했다. 잡지사 최고경영자 자리까지 오를 정도로 “20년 넘게 일을 재밌게 했다”던 그는 “아쉽고 속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인문학, 성경 공부 등을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내가 누구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근본적인 나에 대해 알 수 있었다”고 했다.

두 아들의 교육에서도 가치관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무조건 성취해야 하고, 놓치거나 뒤처지면 불안했는데, 이제는 아이들의 성향, 무엇에 재미를 느끼는지 파악해 진로를 풀어나가도록 시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몰입의 즐거움을 아이들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김 전 대표는 다음 달 2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성우 서혜정, 송정희 씨와 ‘한여름 밤의 낭독회’를 연다. 이 자리에서 자신의 책을 낭독할 예정이다. 그는 “부모님 세대의 힘들었던 시간이 단지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미쳤으면 한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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