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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프리미엄으로 얻은 ‘13조 코인대금’ 불법 해외유출…은행도 한몸

중앙일보

입력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시세가 해외보다 높은 ‘김치 프리미엄’을 악용해 13조원이 넘는 가상자산 매각대금을 해외로 빼돌린 일당 49명을 검찰이 재판에 넘겼다. 시중은행 지점장, 증권사 팀장도 가담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은행에 허위서류를 제출하는 등 가상자산 차액거래(아비트리지)로 거둔 이익을 해외로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금융회사 직원들, 허위서류 꾸미고 명품도 받아

그래픽=김주원 기자

그래픽=김주원 기자

25일 검찰에 따르면 이들 가상자산 투기세력은 해외 거래소에서 매입한 가상자산을 국내 브로커들에게 전송한 뒤, 상대적으로 시세가 높은 국내 거래소에서 팔아 시세차익을 남겼다. 국내 브로커들은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가상자산 매각대금을 무역대금 등으로 위장한 뒤 해외로 송금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이 거둔 시세차익은 3900억원에 달한다. 국내 브로커들은 은행 직원들에게 로비도 하고, 약 281억원을 수수료 명목으로 받아 챙겼다.

국내 은행·증권사 직원들의 조력도 있었다. A은행 전 지점장(52)은 지난해 5~6월 허위서류를 꾸며 163억원 상당의 외화를 송금하는 등 외국환거래법 위반 방조 혐의를 받는다. 이를 대가로 2500만원을 받아 챙기고, 검찰의 계좌추적이 시작되자 이를 공범에게 누설(은행법 위반)하기도 했다. B증권사 팀장(42)도 허위서류로 5조7845억원의 외화를 송금(업무방해)하고, 그 대가로 약 3000만원 상당의 명품시계와 1300만원 상당의 명품 가방 등 총 5800여만원을 받아 챙긴 것으로 나타났다.

C은행 관계자는 허위서류로 267회에 걸쳐 2223억원의 외화를 송금하고, 외환 전산망에 수입대금을 지급하는 것처럼 허위내용을 입력해 한국은행의 외화자금 유출입 동향 모니터링을 방해(위계 공무집행방해)한 혐의도 있다. 이 관계자는 골프장 이용대금, 특급호텔 숙박비 등 170만원을 대가로 받았다. 이렇게 외화유출 사범들을 도운 혐의로 기소된 금융회사 직원들은 A은행 1명, B은행 1명, C증권사 5명 등이다.

韓 코인투자 열풍에 높아진 시세…주변국은 코인 ‘불모지’

지난 5월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 연합뉴스.

지난 5월 1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 연합뉴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가상자산 투자 열풍이 불었지만 그 중에서도 한국이 투자 과열로 지난 몇 년간 시세가 높았다는 게 업계 정설”이라며 “주식은 다른 증권사를 통해 거래하더라도 가격이 같지만, 가상자산은 거래소마다 가격이 달라 해외 투기세력의 차액거래 타깃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는 “한국 가상자산 거래소가 일종의 환치기나 세탁창구로 이용된 셈”이라며 “차액거래 자체는 불법이 아니지만, 13조원에 달하는 자금이 해외로 불법 송금됐고, 결과적으로 가상자산 시세가 떨어져 선량한 투자자에 피해가 돌아가는 구조”라고 말했다.

‘김치 프리미엄’이 형성된 한국과 달리 우리 주변 국가들이 가상자산 거래가가 사실상 금지된 점도 이번 범행에 영향을 미쳤다.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거래대금이 불법 송금된 곳으로 홍콩·중국·일본 등이 꼽힌다. 중국은 2021년 9월 이후 가상자산 거래가 금지됐고, 홍콩도 올해 초까지만 해도 일부 전문가 외에는 가상자산을 거래할 수 없었다.

‘의심거래’에도 은행장 포상까지 받아

검찰은 외국환거래 전반의 관리·감독 의무를 게을리한 혐의로 A은행과 B증권사 법인도 기소했다. 의심거래보고제도(Suspicious Transaction Report·STR)가 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외환송금 고객을 유치하는 데 정신이 팔려 서류심사를 면밀히 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문제가 된 A은행 지점의 경우 2021년 하반기 외화송금 실적이 2020년 하반기보다 300배나 뛰었는데도, ‘실적 우수 지점’으로 선정돼 은행장 포상까지 받았다.

검찰은 “앞으로 가상자산 투기거래로 인해 국부가 해외로 유출되고, 선량한 가상자산 투자자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불법 외화유출 범행에 엄정 대응하는 한편, 유관기관과 협의해 금융회사들의 외국환 업무 관리·감독에 대한 개선방안을 마련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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