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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과 바로 맞서는게 천직" 오늘도 수색대는 지뢰밭에 삶 던진다 [정전 70년 한미동맹 7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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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중서부 전선의 철책선. 밤이 되면 라이트를 켠다. 박영준 작가

중서부 전선의 철책선. 밤이 되면 라이트를 켠다. 박영준 작가

지난 2월 강원도 화천의 제7보병사단(칠성부대) 통문. 통문은 휴전선 남방한계선(SLL)의 철책선에서 비무장지대(DMZ)로 들어가고 나가는 문이다. 보통 통문은 2개의 철문으로 굳게 잠겨 있다. 이곳은 한반도의 엄중한 안보 현실을 보여주는 최전방 현장이다. 정전협정 70년을 맞은 2023년에도 무장한 장병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DMZ로 들어가 수색하고 때론 매복한다. DMZ 남쪽에서 매일 맞는 일상의 평화는 이곳 장병들의 긴장된 수색작전으로 지켜진다.

통문 앞에는 DMZ 수색작전에 들어갈 사단 수색대대 수색팀이 무장한 채 대기하고 있었다. 휴전선 경계를 담당하는 전방부대 수색팀은 DMZ를 작전 지역으로 삼으면서 DMZ를 수색하거나 DMZ에서 매복한다. 매복 작전 때는 DMZ 안에서 밤을 보내야 한다. 이렇게 수색대가 DMZ 지역을 훑고 다녀야 북한군이 군사도발을 꾀하는지 아닌지를 탐지할 수 있다.

이날 7사단 수색팀의 임무는 DMZ 수색로를 정찰하면서 적의 동향이나 특이사항을 살피는 것이다. 길병준 소령이 수색팀 군장검사를 맡았다. 수색팀 군장에는 통신장비, 여분의 배터리, 응급처치 키트 등이 들어 있다. 군장의 무게는 보통 20㎏이 넘는다. 겨울 매복작전 때는 방한복까지 넣어야 해 군장이 35㎏ 정도로 무거워진다.

병사

병사

수색팀은 우산도 장비로 챙겨간다. 비를 막는 용도가 아니라 갑자기 나타난 멧돼지가 달려들 때 쫓는 데 쓴다고 한다. 수색팀장인 전영서 중사는 “DMZ 안은 멧돼지·고라니·산양 등 동물의 왕국”이라며 “매복 작전을 할 때 멧돼지가 갑자기 튀어나와 놀란 적이 많다”고 말했다. 수색대는 정예화를 위해 부사관 위주로 개편됐으며, 병사는 드물다. 이날 수색팀의 유일한 병사인 박준성 상병(현재 전역)은 “최전방을, 그것도 수색대를 지원했다”며 “체력적으론 힘들기 때문에 평소 운동을 꾸준히 한다”고 말했다.

군장검사 후 총기검사가 끝나자 길 소령이 수색팀에 실탄을 나눠줬다. 정전협정에 따르면 DMZ엔 유사시 개인 방호를 위한 개인화기 소지가 가능하다. 총격전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수색팀 얼굴에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전 하사는 “긴장할 때는 다른 건 다 잊고 임무만 생각한다”고 말했다.

수색팀원들이 통문을 열었다. 자물쇠가 여러 개라 시간이 꽤 걸린다. 지원팀의 엄호 속에 수색팀은 천천히 통문을 통해 DMZ로 들어갔다.

겨울 매복 땐 군장 35㎏…“수색대가 천직” 지원자 많아

긴장 또 긴장, DMZ 수색팀

지난 4월 강원도 화천 휴전선 철책을 이동하며 점검하는 육군 7사단 장병들. 철책선 을 따라 감지 시스템과 감시 카메라 등 첨단 장비로 이뤄진 과학화 경계 시스템이 촘촘하게 깔려 있다. 철책선엔 감지기로 이뤄진 광망(光網)이 그물처럼 덮여 있어 누군가 철조망을 일정 시간 잡거나 자르면 감지해 상황실에 경보를 울린다. [연합뉴스]

지난 4월 강원도 화천 휴전선 철책을 이동하며 점검하는 육군 7사단 장병들. 철책선 을 따라 감지 시스템과 감시 카메라 등 첨단 장비로 이뤄진 과학화 경계 시스템이 촘촘하게 깔려 있다. 철책선엔 감지기로 이뤄진 광망(光網)이 그물처럼 덮여 있어 누군가 철조망을 일정 시간 잡거나 자르면 감지해 상황실에 경보를 울린다. [연합뉴스]

곧바로 이중 철문이 ‘철컹’ ‘철컹’ 소리와 함께 닫혔다. 수색팀은 금세 시야에서 사라졌다.

최전방 수색대원들이 가장 힘들다고 얘기하는 게 긴장감이다. DMZ는 지뢰 천지다. 수색로가 아닌 곳에 발을 잘못 디딘다면 지뢰밭일 수 있다. 2012년 4월 제15보병사단(승리부대) 수색팀이 DMZ 작전 도중 지뢰를 밟았다. 사고를 조사하러 간 분석팀도 지뢰 폭발로 중상을 입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문배길 상사는 “한동안 정신적으로 무척 힘들었다. 가족과 전우 덕분에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북한군은 끊임없이 도발하고 있다. 2015년 8월 4일 경기도 파주에서 수색팀이 DMZ로 들어가던 중 통문 곁에서 목함지뢰가 터져 2명이 중상을 입었다.

지난 1월 만난 제22보병사단(율곡부대) 진혁 원사는 “1999년~2013년 14년간 1053회 수색작전에 참가했다”며 “첫 작전과 마지막 작전 모두 통문을 들어갈 때 가슴이 쿵쿵 뛰면서 긴장하는 것과 똑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여름의 모기, 겨울의 추위도 수색팀의 적”이라고 했다.

육체적·심리적으로 힘든 임무지만, 수색대를 가겠다는 젊은이가 많다. 문 상사도 그런 경우다. 그는 2006년 병사로 입대한 뒤 수색대가 됐다. 그리고 수색대가 천직이라 여겨 2008년 부사관으로 임관해 지금까지 수색대에 있다. 그가 뛴 DMZ 수색작전은 1200번이 넘는다. 문 상사는 “나라를 지키는 데 조금이나마 이바지하고 싶었고, DMZ에서 북한과 바로 맞서는 수색대가 가장 잘 부합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같은 부대의 이혜정 하사는 여군 수색대원이다. 그는 검도·합기도·유도·주짓수 등 무술 유단자다. 군인이 멋있어 보여 2021년 3월 부사관으로 임관했다. 이 하사는 “2021년 8월 통문에 처음 들어갔는데 갑자기 겁이 났다”며 “주위를 둘러보니 팀원들이 있었다. 그들을 믿고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수색대는 작전과 작전 사이엔 훈련에 열중한다. 훈련에서 흘린 땀의 의미를 가장 잘 아는 부대가 수색대다. 중점을 두는 훈련이 체력과 사격이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지난달 초 제3보병사단(백골부대)에서 만난 김경천 중사. 김 중사가 하는 실전 사격훈련은 단순하게 표적을 맞히는 사격 훈련이 아니었다. 장애물을 엄폐물로 이용하는 등 DMZ에서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을 상정해 대응사격을 하는 훈련이었다. 김 중사는 “최근 지휘부에서 실전적 훈련을 강조하면서 사격 훈련도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2000년 개봉한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엔 DMZ를 수색하던 국군과 북한군이 만나 담배를 나눠 피우는 장면이 있다. 문 상사는 “과장됐다. 과거엔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지금은 북한군과 접촉할 기회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민 상사는 “DMZ 안 풍경은 대한민국 그 어떤 곳보다 아름답다. 적과 대치하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잊게 할 정도”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름다운 노을과 고즈넉한 자연 속엔 엄중한 현실이 여전하다. 진 원사는 “DMZ에는 녹슨 철모·탄피·수통 등 6·25전쟁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이름 없는 가묘도 보인다”며 “누군가의 목숨으로 대한민국을 지켜낸 만큼 우리가 임무에 소홀할 순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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