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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한·미 ‘핵협의그룹’, 첫 발 순조롭게 뗐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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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조남훈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조남훈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한국과 미국의 첫 ‘핵협의그룹(NCG)’ 회의가 지난 18일 서울에서 열렸다. 확장억제 보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한·미의 핵심 협의체가 드디어 시동을 걸었다. 이번 NCG 회의는 확장억제의 신뢰성 제고 및 관련 조치 확대 등을 위해 지난 4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워싱턴 선언’에 따른 것이다. 당시 합의는 주로 확장억제의 원칙과 큰 틀에 관한 것이었는데, 확장억제 강화를 위한 세부 실천 방안은 NCG 논의에 맡겨졌다.

4월 ‘워싱턴선언’ 세부안 논의
양국 정보공유 계속 넓혀가야
최고위급 정책 결정자 참여 필요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워싱턴 선언은 전술핵의 한반도 재배치가 작전 측면에서 별 이득이 없는 상황에서 한·미 양국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한국은 미국의 핵 사용 결정 과정에 좀 더 깊숙이 참여함으로써 북한의 핵 도발 억제와 대응의 이해 및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미국은 한국의 자체 핵 무장 가능성을 제한함으로써 핵 비확산 정책을 이어나갈 수 있다. 하지만 워싱턴 선언이 미국의 원활하고 효과적인 확장억제 제공을 완벽하게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큰 틀에서 합의된 워싱턴 선언의 구체화와 세부 발전 조치 등이 뒤따라야 한다. 이번에 시작된 한·미 NCG 회의가 매우 중요한 이유다.

한·미 양국은 이번 회의를 통해 ‘한·미 일체형 확장억제’ 실현에 필요한 의미 있는 첫발을 내디뎠다고 평가할 수 있다. 회의 기간 오하이오급 전략핵잠수함(SSBN) 켄터키함의 부산항 기항이 이를 뒷받침했다. 향후 양국은 북핵 위협 억제 및 대응을 위한 최적의 방안을 찾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특히 다음 몇 가지 조치가 요구된다.

첫째, 핵 사용 결정 과정에 대한 한국의 참여가 한·미 NCG를 통해 좀 더 빠른 속도로 가시화돼야 한다. 이를 위해 한·미의 긴밀한 정보 공유와 공동 기획이 이뤄지고 관련 제도가 수립돼야 한다. 한·미 NCG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다자간 핵 공유 체계와는 구별되는 세계 최초의 양자 협의체다. 한·미는 나토 사례를 참고하면서도 나름의 장점 발휘가 가능한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 유사시 최종 핵 사용 결정은 미국 대통령이 할지라도 핵 사용 대상·수단·규모 등의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 한국의 사전 참여가 충분히 보장돼야 할 것이다.

둘째, 한·미 간에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시도해야 한다. 누가 사용하건 핵 사용 문제는 여러 경우의 수와 돌발 이슈를 일으킬 수 있다. 그에 따른 파급효과가 어마어마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문제가 생길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사전에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양국 군 실무자가 참여하는 다양한 시뮬레이션의 실행이 요구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한·미의 최고위급 정책 결정자들이 참여하는 시뮬레이션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실제 핵 사용과 관련해 양국 최고위급 정책 결정자들의 이해와 결심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핵 대응은 단순히 군사적 문제가 아니다. 사용의 당위성이 제시되거나 불사용에 대한 설득 작업이 필요한 문제다. 중요한 것은 어떤 경우라도 동맹의 신뢰가 깨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군사적·정책적·정치적 요소 등을 기반으로 실제 핵 사용 결정에 참여하는 최고위급 정책 결정자들 공통의 상황 인지와 절차 습득 등이 필요한 이유다.

끝으로 NCG 활동에 부응하는 한국의 핵 대응 체계 구축도 필요하다. 한국의 경제 능력과 전쟁 수행 능력을 잘 아는 북한이 상대적으로 불리한 전쟁 발발을 각오하면서 핵을 사용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미국의 확장억제가 확실히 작동한다면, 북한의 실제 핵 사용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하지만 북한이 핵 사용을 강행하는 만약의 사태에 철저히 대비할 필요가 있다. 군은 ‘한국형 3축 체계’를 발전시키고, 정부는 북한의 핵 공격이 포함된 핵 대응 훈련 체계를 수립해야 한다. 국민은 대규모 핵 공격에 대응한 민방위 훈련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실전처럼 훈련할 수 있는 핵 억제 및 대응의 민·관·군 3박자를 구축해야 한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까지 동원한 북한의 무력시위 와중에도 첫 한·미 NCG 회의가 순조롭게 마무리됐다. 한·미는 앞으로 열릴 차기 NCG 회의에서 북한의 도발 위협에 맞서 부족한 부분을 더 보완하고 채워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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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훈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