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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후남의 영화몽상

물과 불이 서로 사귈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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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이후남 기자 중앙일보 문화선임기자
이후남 문화선임기자

이후남 문화선임기자

불과 물과 흙과 공기.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라면 몰라도, 21세기에 이런 네 가지 원소로 세상이 이뤄져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애니메이션 같은 판타지의 세계에서라면 몰라도 말이다.

국내 극장가에서 500만 넘는 관객을 모은 ‘엘리멘탈’이 바로 그런 애니메이션이다. 네 원소가 마치 사람들처럼 살고 있는 도시에서 ‘불’에 속하는 앰버가 주인공이다. 앰버는 젊은 시절 고향을 떠나 이 도시로 이주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이주민 2세대. 아버지가 맨손으로 시작해 일군 가게를 외동딸 앰버가 언젠가 물려받으리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하고 기대하는 바다.

애니메이션 ‘엘리멘탈’. [사진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애니메이션 ‘엘리멘탈’. [사진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문제는 그야말로 불같은 성격. 앰버는 손님들의 이런저런 요구에 아버지처럼 능숙하게 대처하는 대신 종종 불같이 화를 내며 폭발한다. 그러다 어느 날 대형 사고를 친다. 이를 수습하려다가 시청 공무원이자 물에 속하는 청년 웨이드와 엮이게 된다. 적대적 관계로 처음 만난 두 사람, 아니 원소는 점차 서로에게 이끌린다.

불과 물이라니, 상식적으로 상극 중에 상극이다. 서로 만나면 치명적이다. 불이 꺼지든 물이 끓어 기화하든 서로의 존재를 없애버릴 수도 있다. 게다가 불은 이 도시에서 다른 원소들과 어울리지 않고 특정 지역에 모여서 살아왔다. 암암리에 차별도 받았다. 어린 시절 앰버도 그런 경험이 있다. 이와 달리 물은 이 도시의 주류다.

한데 이런 설정이 낯설지만은 않다. 신분과 빈부의 차이에 더해 서로 첫인상부터 나빴던 두 주인공이 결국 사랑에 빠지는 건, 한국 로맨스 드라마에서도 자주 보아온 전개다. 흔히 비슷한 사람에게 끌린다고 하지만, 세상에 꼭 같은 사람은 없다. 차이를 넘어서는 것은 극적 로맨스의 필수 과정이나 다름없다.

이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이 친근하게 다가오는 게 그래서만은 아니다. 앰버는 웨이드와 만나면서 자신의 재능에 새로이 눈을 뜬다. 가게를 물려받는 것 이외에 다른 삶을 꿈꿔 본 적 없는 앰버는 혼란에 빠진다. 그는 부모의 헌신과 희생을 절감하며 자란 자녀, 그래서 부모에 반항하거나 기대를 저버리면 안 된다고 스스로 체화한 자녀다. 한국 사회에서 익숙하게 보아온 부모-자식 관계다.

눈에 띄는 건, 그렇다고 앰버가 엄청난 자기 확신 속에 새로운 인생을 추구하게 되는 건 아니란 점이다. 따지고 보면 젊은 날 아버지의 선택에 비하면, 앰버의 선택은 반항이라고 하기도 힘들다. 부모가 원하는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던 길에서 벗어나, 기존에 생각해 본 적 없는 스스로의 가능성을 직접 타진해 보기 위해 조심스레 한 발을 떼는 정도에 가깝다. 돌아보면 우리도 그런 때가 있었다. 그래서 이 애니메이션이 새롭기보다는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