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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으면 손해” 한달간 조업 안나가…‘금징어’ 이유 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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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면

지난 15일 주문진항에 조업을 나가지 못한 오징어 채낚기 어선이 줄지어 정박해 있다. 박진호 기자

지난 15일 주문진항에 조업을 나가지 못한 오징어 채낚기 어선이 줄지어 정박해 있다. 박진호 기자

오징어 채낚기 어선 선주 윤국진(65·강원 강릉)씨는 한 달이 넘도록 조업을 못 하고 있다. 동해안 오징어 어획량이 확 줄었기 때문이다.

윤씨가 마지막으로 바다에 나선 건 지난달 중순. 울릉도 인근에서 3박 4일간 조업했지만 50두름(1000마리)을 잡는 데 그쳤다. 윤씨는 지난 5월부터 한 달 반 동안 10회 정도 조업에 나섰는데 한번 나갈 때 400~1000마리를 잡았다. 당시 오징어 가격은 1두름(20마리)에 15만~20만원. 어획량과 크기에 따라 오징어 가격이 책정되는데 30㎝ 정도 되는 비교적 큰 오징어 기준 400마리를 잡은 날엔 300만~400만원, 1000마리 잡은 날엔 750만~1000만원에 거래됐다.

10t 크기의 어선은 한번 조업을 나갈 때 경유 15드럼(1드럼에 200L)이 필요하다. 경유 1드럼이 가격은 16만원 정도로 240만원이 들어가는 셈이다. 인건비는 선원 1명당 평균 15만원(1일) 선이다. 나흘간 조업에 나설 경우 선원 1명당 60만원, 4명을 데리고 나가면 인건비만 240만원이 들어간다. 여기에다 부식비(50만원)와 장비값, 수수료까지 포함하면 한번 조업에 600만원 안팎의 비용이 나간다.

윤씨는 “조업이 시원치 않은 날엔 인건비와 기름값 등을 내고 나면 오히려 적자”라며 “오징어 크기도 작아 (바다에) 나가봐야 경비도 못 건지니 기다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5일 강릉시 주문진항엔 조업에 나서지 못한 오징어 채낚기 어선 20여 척이 정박해 있었다. 강릉시채낚기선장협회 관계자는 “수온이 평년보다 높아 오징어가 빨리 러시아 쪽으로 북상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강원도환동해본부에 따르면 12일부터 18일까지 일주일간 강원 동해안에서 잡힌 오징어는 8t에 불과하다. 전주엔 10t, 그 이전 주에도 12t밖에 잡히지 않았다. 올해 들어 잡힌 오징어는 792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318t보다 526t(39.%) 감소했다. 최근 3년 평균(2863t)과 비교해도 2071t(72.3%)이나 줄었다. 이 때문에 산 오징어(1마리) 가격이 2만~3만원까지 올랐다.

가격이 뛰자 속초항 오징어 난전 대부분은 문을 닫았다. 지난 15일에는 난전 20곳 중 6곳만이 문을 열었다. 관광객은 1마리에 2만~3만원인 가격에 놀라 발길을 돌렸다. 상인들은 경매에서 오징어 20마리가 47만원(1마리당 2만3500원)에 거래된 것을 고려하면 남는 게 없다고 하소연한다.

속초에서 30년 넘게 난전을 운영한 강미순(65·여)씨는 “원가에 파는데 손님은 비싸다고 하고, 잡는 사람은 손해가 나는 이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립수산과학원 동해수산연구소에 따르면 이달 초 동해 근해 표면 수온은 18~23도였다. 연안 수온은 18.2~22.9도로 평년보다 0.2~2.7도 높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오징어 어군 형성에 문제없는 데도 잡히지 않고 있다.

김중진 국립수산과학원 박사는 “오랫동안 중국 어선 남획과 기후변화 영향 등으로 동해에서 오징어 개체 수가 급감한 상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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