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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도 “처음 봤다”는 경북 산사태…국보 사찰도 덮쳤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18면

지난 15일 경북 예천 용문사 인근에서 산사태가 발생, 용문사 주차장으로 토사가 밀려든 모습. 김정석 기자

지난 15일 경북 예천 용문사 인근에서 산사태가 발생, 용문사 주차장으로 토사가 밀려든 모습. 김정석 기자

지난 19일 경북 예천군 용문면 용문사. 사찰로 들어가는 초입에 도로에서 떨어져 나온 아스팔트 덩어리가 쌓여 있었다. 지난 15일 내린 집중 호우로 용문사가 위치한 용문산에서 산사태가 발생, 용문사 초입 도로 아스팔트 포장이 유실된 흔적이었다.

용문사 경내로 들어가 보니 상황은 더욱 나빴다. 주차장은 산에서 밀려 내려온 진흙에 덮여 진창이 돼 있었고, 사찰 담벼락이나 구조물도 부서져 있거나 급히 임시 복구를 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주차장에 쌓인 진흙을 걷어내기 위해 굴삭기 1대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국보 제328호인 ‘대장전과 윤장대’를 보유하고 있는 용문사는 예천 주민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유명한 사찰이다. 대장전 보수공사를 맡은 주식회사 서정 김윤기 대표는 복구 현장을 가리키며 “아직 진흙이 많이 깔렸지만 이것도 며칠 동안 토사를 정말 많이 치운 상태”라며 “산사태가 난 직후만 해도 토사에 건물과 자동차가 매몰돼 사람이 드나들기조차 힘들었다”고 전했다.

김 대표를 비롯한 공사 업체 직원들은 복구 작업에 닷새째 매달리고 있었다. 김 대표는 “산사태로 기존 계곡 물길이 막히면서 그 계곡물이 곧장 용문사 경내로 쏟아졌다”며 “국보인 대장전과 윤장대 바로 옆으로 물이 콸콸 흘러 아찔했다”고 했다.

예천 초간정 입구 다리는 난간이 유실돼 있었다. [사진 김윤기 대표]

예천 초간정 입구 다리는 난간이 유실돼 있었다. [사진 김윤기 대표]

용문사 인근의 또 다른 국가지정문화재인 초간정 원림(명승 제51호)도 불어난 계곡물에 입구 다리 난간이 모두 유실됐다. 19일 찾은 초간정 입구는 부서진 다리에 출입 통제 테이프가 둘려 있었고 다리 밑 계곡에는 다리 난간이 떨어져 나간 채 계곡물을 맞고 있었다. 급류에 휩쓸려 내려온 통나무가 초간정 외곽에 부딪혀 담장이 부서진 모습도 보였다.

이처럼 집중 호우로 곳곳에서 산사태가 발생한 경북은 국가지정문화재에도 상당한 피해가 났다. 특히 이번 호우로 사망·실종자가 나왔던 예천과 봉화·문경·영주 등 지역에 문화재 피해가 집중됐다. 지난 17일 예천 산사태 현장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몇백t 바위가 산에서 굴러내려 올 정도의 산사태는 지금까지 살면서 처음 봤다”고 한 경북에서 국가유산(문화재) 피해 역시 유례없이 컸던 셈이다.

국보 제46호인 영주 부석사 조사당 벽화가 있는 조사당 인근에는 산사태로 토사가 유실됐고, 문경새재 1관문 배수로도 일부가 떠내려갔다. 봉화 만회고택 담장에는 급류에 휩쓸려 온 퇴적물이 쌓였고 봉화 쌍벽당종택과 만산고택 지붕도 일부가 부서졌다. 명승 제19호 예천 선몽대 일원은 집중호우로 일대가 침수됐고, 명승 제16호인 예천 회룡포는 소나무 일부가 유실되고 마을 일부가 침수되는 등 피해가 발생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지난 20일 오후 기준으로 지난달 23일부터 시작된 장마기간 중 발생한 국가유산 피해 건수가 총 59건으로 파악됐다.

지역별로는 호우가 집중적으로 내린 경북이 20건으로 가장 많았다. 전남과 충남이 각각 9건으로 그 뒤를 이었다. 이밖에 지역에서는 전북 6건, 강원·충북·경기가 각각 3건, 부산이 2건이다. 서울·광주·대전이 각 1건이었다. 지정 국가유산별로 살펴보면 국보 2건, 보물 3건, 사적 21건, 천연기념물 9건, 명승 8건, 국가민속문화재 12건, 등록문화재 4건 등이다.

문화재청은 국가유산 피해가 계속 늘자 오는 28일까지 문화유산 수리 현장 26곳에 대한 긴급점검에 나서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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