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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가 팔아도 욕먹는 '금징어'…"잡으면 손해" 한달째 배 멈췄다 [르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5일 강원 강릉시 주문진항에 조업에 나서지 못한 오징어 채낚기 어선들이 줄지어 정박해 있는 모습. 박진호 기자

지난 15일 강원 강릉시 주문진항에 조업에 나서지 못한 오징어 채낚기 어선들이 줄지어 정박해 있는 모습. 박진호 기자

채낚기 어선 한 달째 조업 나서지 못해 

오징어 채낚기 어선 선주 윤국진(65·강원 강릉시)씨는 한 달이 넘도록 조업을 못 하고 있다. 동해안의 오징어 어획량이 확 줄었기 때문이다.

윤씨가 마지막으로 바다에 나선 건 지난달 중순. 울릉도 인근에서 3박 4일간 조업을 했지만 50두름(1000마리)을 잡는 데 그쳤다고 한다. 윤씨는 지난 5월부터 한 달 반 동안 10회 정도 조업에 나섰는데 한번 나갈 때 400~1000마리를 잡는 데 그쳤다. 당시 오징어 가격은 1두름(20마리)에 15만~20만원. 어획량과 크기에 따라 오징어 가격이 책정되는데 30㎝ 정도 되는 비교적 큰 오징어 기준 400마리를 잡은 날엔 300만~400만원, 1000마리 잡은 날엔 750만~1000만원에 거래됐다.

선주 "조업 나가면 오히려 마이너스" 

10t 어선의 경우 한번 조업을 나갈 때 고경유 15드럼(1드럼에 200L)이 필요하다. 현재 고경유 가격이 1드럼에 16만원을 넘은 점을 고려하면, 최소 240만원의 비용이 기름값으로 든다. 여기에 기본적으로 나가는 인건비는 선원 하루 평균 15만원 선이다. 한 번 조업을 나가면 선원 1명에게 60만~70만원의 임금이 지급되니 4명이 나갈 경우 이 비용도 최소 240만원이다. 여기에 부식비 50만원, 장비 구입비, 수수료 등을 내면 한번 조업에 600만원 안팎의 비용이 나간다.

윤씨는 “한 번 나갈 때 선원 3명과 함께 조업을 나가는데 오징어가 조금 잡히는 날엔 인건비와 기름값, 부식비, 수수료 등을 내고 나면 오히려 마이너스”라며 “오징어도 작아 바다에 나가봐야 경비도 못 버니 많아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강릉시 주문진항엔 조업에 나서지 못한 오징어 채낚기 어선들이 줄지어 정박해 있었다. 10t 미만 작은 배부터 70t이 넘는 대형 어선도 보였다. 현장에서 만난 강릉시채낚기선장협회 관계자는 “개체 수가 크게 줄어든 데다 수온이 평년보다 높아 오징어가 빨리 러시아 쪽으로 북상한 것 같다”며 “배 타고 나가서 4박 5일을 열심히 잡아 봐야 500마리 정도를 싣고 돌아온다”라고 말했다.

지난 15일 강원 강릉시 주문진항에 조업에 나서지 못한 오징어 채낚기 어선들이 줄지어 정박해 있는 모습. 박진호 기자

지난 15일 강원 강릉시 주문진항에 조업에 나서지 못한 오징어 채낚기 어선들이 줄지어 정박해 있는 모습. 박진호 기자

일주일간 잡힌 오징어 8~10t 불과 

강원도환동해본부에 따르면 지난 12일부터 18일까지 일주일간 강원 동해안에서 잡힌 오징어는 8t에 불과하다. 전주엔 10t, 그 이전 주에도 12t밖에 잡히지 않았다.

올해 들어 현재까지 잡힌 오징어는 792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318t과 비교해 526t(39.%) 감소했다. 최근 3년 평균 2863t과 비교해도 2071t(72.3%)이나 줄었다. 오징어가 잡히지 않으면서 가격은 치솟았다. 산오징어 한 마리 시중가가 2만∼3만원에 달하고 있다.

오징어가 잡히지 않으면서 가격이 뛰자 강원 속초항 오징어 난전 대부분은 문을 닫았다. 이날 20곳 난전 중 6곳만 영업하고 있었다. 그나마 난전을 찾은 관광객은 1마리에 2만5000원이나 하는 오징어 가격에 놀라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상인들은 전날 경매에서 오징어 20마리가 47만원(1마리 2만3500원)에 거래된 것을 고려하면 ‘남는 게 없다’고 하소연한다.

지난 15일 강원 속초시 동명동 속초항 오징어 난전 수조 모습. 이날 오징어 한 마리 가격은 2만5000원이었다. 박진호 기자

지난 15일 강원 속초시 동명동 속초항 오징어 난전 수조 모습. 이날 오징어 한 마리 가격은 2만5000원이었다. 박진호 기자

경매서 20마리 '47만원'에 팔려 

30년 넘게 난전을 운영해 온 강미순(65·여)씨는 “오징어가 이렇게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건 30년 만에 처음 본다”며 “파는 사람은 (사실상) 원가에 팔고 있는데 먹는 사람은 비싸다고 생각하고, 잡는 사람은 어획량이 적어 손해가 나는 이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부 난전은 손님과 오징어 가격 문제로 실랑이가 벌어지자 가격이 내려갈 때까지 아예 문을 닫아둔 상태라고 한다.

국립수산과학원 동해수산연구소에 따르면 이달 초 동해 근해 표면 수온은 18∼23도였다. 연안 수온은 18.2∼22.9도로 평년보다 0.2∼2.7도 높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오징어 어군 형성에 문제없는 상황인데도 오징어가 잡히지 않고 있다.

이런 이유로 중국 쌍끌이 어선도 현재 북한수역으로 조업을 나서지 않고 있다. 지난 13일 기준 141척(운반선과 어선을 합한 척수)만이 조업에 나선 것으로 집계됐다.

오징어가 잡히지 않는 데다 가격까지 크게 오르자 소비자들이 외면하고 있다. 지난 15일 강원 속초시 동명동 속초항 오징어 난전 대부분이 문을 닫은 모습. 박진호 기자

오징어가 잡히지 않는 데다 가격까지 크게 오르자 소비자들이 외면하고 있다. 지난 15일 강원 속초시 동명동 속초항 오징어 난전 대부분이 문을 닫은 모습. 박진호 기자

중국 쌍끌이 어선 무분별한 어획 주요 원인 

어민들은 과거 중국 쌍끌이 어선의 무분별한 어획이 오징어가 사라진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보고 있다. 강원도환동해본부에 따르면 2004년 북-중간 계약 체결 당시 북한수역에서 조업을 시작한 중국 어선은 144척이었다. 당시 강원 동해안 오징어 어획량은 2만2243t 수준이었다.

이후 2011년 중국 어선이 1299척으로 늘자 동해 오징어 어획량은 1만4343t으로 눈에 띄게 줄었다. 2014년엔 중국 어선이 1904척까지 불어나면서 1만t 아래로 떨어진 9461t을 기록했다.

러시아 원정 조업도 중국 어선 때문 

2018년에는 중국 어선이 2161척으로 늘자 4146t으로 또 반 토막 났다. 2020년엔 동해안에 일시적으로 오징어가 많이 잡히자 역대 최대인 2429척의 중국 어선이 북한 동해 수역에서 조업했다. 이후엔 중국 어선 조업이 크게 줄어 2021년 554척, 지난해 33척에 그쳤다.

어민들은 “중국 어선의 북한 동해 수역 입어 계약이 체결된 2004년 이후 오징어 어획량이 점점 줄기 시작했다”며 “러시아 원정 조업도 중국 어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 15일 강원 강릉시 주문진항에 조업에 나서지 못한 오징어 채낚기 어선들이 줄지어 정박해 있는 모습. 박진호 기자

지난 15일 강원 강릉시 주문진항에 조업에 나서지 못한 오징어 채낚기 어선들이 줄지어 정박해 있는 모습. 박진호 기자

국립수산과학원은 대책 마련을 위해 2018년부터 오징어 유생(幼生) 조사를 시작했다. 2019년엔 기상여건으로 조사하지 않다가 2020년 들어 재개했다. 하지만 오징어가 급격하게 줄어든 이후 조사가 시작돼 과학적인 자료로서 객관성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다.

김중진 국립수산과학원 박사는 “오랫동안 중국 어선 남획과 기후변화 영향 등으로 동해에서 오징어 개체 수가 급감한 상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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