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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빚 상속포기해도…아빠가 가입한 '즉시연금' 탈 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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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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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모씨와 형제들은 2015년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남긴 빚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상속재산 내에서만 빚을 갚는 ‘한정 승인’을 선택했다. 아버지가 생전 가입한 ‘상속연금형 즉시연금’에서 나오는 약 4000만원의 사망보험금을 형제들이 나눠가진 직후에 이런 절차를 밟은 것이다.

상속형 즉시연금은 피보험자가 한꺼번에 목돈을 보험료로 납부한 뒤, 매달 그 이자로 연금을 받는 상품이다. 만약 계약 기간 중에 피보험자가 사망하면 상속인이 사망보험금을 받는다.

그런데 김씨 형제에게 변수가 생겼다. 아버지에게 돈을 빌려줬던 방모씨가 형제가 이미 받은 사망보험금도 활용해 빚을 갚으라고 소송을 낸 것이다. 김씨 형제는 “사망보험금은 보험사에서 받은 우리의 고유재산이지, 아버지가 남긴 상속재산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법원은 김씨 형제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지난달 29일 “상속형 즉시연금보험 계약에 따른 보험금은 상속재산이 아닌 상속인의 고유재산이므로, 상속재산 범위 내에서만 빚을 갚으면 된다”며 파기환송했다. 원심이 “김씨 형제가 사망보험금을 받아 소비한 것은 상속재산 처분행위에 해당하고, 사실상 단순승인한 것”이라며 방씨에게 승소 판결한 것을 뒤집은 것이다.

민법 1026조는 상속인이 상속을 포기하거나 한정 승인 절차를 밟기에 앞서 상속재산 일부를 미리 수령하는 경우, ‘상속인의 재산과 채무 일체를 상속하겠다’는 단순승인 행위로 간주한다.

대법원 전경. 뉴스1

대법원 전경. 뉴스1

이 사건의 쟁점은 ‘상속형 즉시연금’이라는 금융상품을 생명보험의 하나로 볼 수 있는지였다. 그간 판례는 생명보험의 경우 피보험자가 사망하며 발생하는 보험금 청구권은 상속인의 고유재산이지 상속재산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즉, 상속 승인이나 포기와 상관없이 보험금을 미리 받아도, 사망한 사람의 남은 빚을 모두 떠안을 위험은 없다는 얘기다.

1·2심은 ‘즉시연금 상품은 생명보험과 다르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 사건 보험계약은 다른 생명보험 계약과 달리 피보험자가 사망하면 기존에 납입했던 보험료 원금이 상속인들에게 그대로 상속되는 방식”이라며 “이 경우 사망보험금을 상속인들의 고유재산으로 보는 것은 상속 한정승인 제도를 이용하여 상속재산은 그대로 취득하면서 상속채무는 면탈하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라고 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보험계약이 피보험자의 사망과 생존을 보험금 지급 원인으로 하는 이상 생명보험에 해당하고, 그 보험계약에서 많은 보험료를 일시에 납입해야 한다거나 사망보험금이 일시 납입한 보험료와 유사한 금액이라 하더라도 생명보험으로서의 법적 성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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