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귀가 즐거운 ‘반지의 제왕’ 영화와 만난 오케스트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영국 런던의 로열 앨버트홀에서 열렸던 ‘반지의 제왕’ 필름 콘서트. [사진 아트앤아티스트]

영국 런던의 로열 앨버트홀에서 열렸던 ‘반지의 제왕’ 필름 콘서트. [사진 아트앤아티스트]

“소리 없는 영화(무성 영화, silent pictures)라는 건 애초에 없었다.” 영화 음악가 존 윌리엄스의 말이다. 이 말은 무성 영화 상영에 음악의 실연(實演)이 있었던 역사를 설명한다. 공연 연출가인 스티브 린더는 한 동영상에서 “본래 영화가 상영될 때는 그 앞에 오케스트라, 혹은 오르간 연주자가 있었다. 음악은 관중의 경험, 반응을 의식하며 흘러갔다”고 했다.

세종문화회관의 ‘해리포터’ 시리즈는 티켓 판매율이 높다. [사진 세종문화회관]

세종문화회관의 ‘해리포터’ 시리즈는 티켓 판매율이 높다. [사진 세종문화회관]

영화 한 편이 상영되는 동안 음악을 실제로 연주하는 필름 콘서트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다음 달 26일 서울에선 두 공연이 열린다. 다음 달 26~27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 필름 콘서트, 26일 롯데콘서트홀에서는 영화 ‘날씨의 아이’ 필름 콘서트가 예정돼 있다. 오케스트라 연주와 함께 영화가 상영되는 공연이다. ‘너의 이름은 필름 콘서트 2023’(9월 2~3일, 롯데콘서트홀), ‘해리포터와 불의 잔 인 콘서트’(10월 7~9일 세종문화회관)도 예정돼 있다.

필름 콘서트의 역사는 20여년이다. 그동안 흥행·관심 정도에서 오르내리는 곡선을 그려왔다면, 최근엔 상승이다. 불황에 공연 시장이 위축될 때마다 필름 콘서트가 불려 나왔다는 점도 짚을 만하다. 공연 칼럼니스트 한정호는 “2008년 말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후 공연계는 원소스 멀티유스가 필요했다. 히사이시 조와 스튜디오 지브리의 합작 25주년 기념 공연에서 200인조 뉴재팬필하모닉 공연이 히트하며 필름 콘서트의 흥행 물꼬를 텄다”고 했다. 코로나19 이후 공연 시장에서도 필름 콘서트가 활로의 하나로 선택되고 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 ‘너의 이름은’ 필름 콘서트. [사진 라이브러리컴퍼니]

신카이 마코토 감독 ‘너의 이름은’ 필름 콘서트. [사진 라이브러리컴퍼니]

한국의 필름 콘서트는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지만 최근 들어 주목받고 있다. 2019년 롯데콘서트홀의 ‘아마데우스 라이브’, 2019~22년 세종문화회관이 주최한 ‘해리 포터’ 시리즈 세 편(‘마법사의 돌’ ‘비밀의 방’ ‘아즈카반의 죄수’) 필름 콘서트가 성공작으로 꼽힌다. 특히 ‘아즈카반의 죄수’는 공연예술통합전산망 기준 지난해 클래식 공연 중 유료 티켓 판매수 1위에 올랐다. 현재 공연을 한달여 앞둔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 또한 관심이 높다. 공연을 제작하는 아트앤아티스트의 이상민 부사장은 “이틀 공연의 티켓 중 약 80%가 이미 판매됐다”고 전했다.

대부분 영화의 매니어인 필름 콘서트 청중은 음악에도 민감하다. ‘날씨의 아이’ 필름 콘서트를 만드는 박수인 라이브러리컴퍼니 PD는 “영화의 OST와 실제 연주 음악이 조금만 달라져도 항의가 들어온다”고 했다.

귀가 높아진 청중을 위해 제작 수준도 올라간다. 다음 달 ‘반지의 제왕’ 필름 콘서트에는 100인조 오케스트라, 합창단 80명, 어린이 합창단 40명이 무대에 선다. 오케스트라의 크기가 팽창하고 합창단까지 동원한 후기 낭만주의 교향곡 수준이다. 여기에 영화 음악의 효과음을 위한 특수 악기가 필요하다. 금속 줄을 채로 치는 ‘해머드 덜시머’, 17세기의 백파이프인 ‘뮈제트’ 같은 악기를 구해야 한다. 아트앤아티스트 측은 “악기 대여에 드는 비용만 1200만원 정도”라고 예상했다.

영국 런던의 로열 앨버트홀에서 열렸던 ‘스타워즈’ 필름 콘서트. [사진 아트앤아티스트]

영국 런던의 로열 앨버트홀에서 열렸던 ‘스타워즈’ 필름 콘서트. [사진 아트앤아티스트]

지휘자, 연주자들에게도 쉽지 않은 작업이다. 2018년 ‘스타워즈 에피소드4: 새로운 희망’의 필름 콘서트에서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던 지휘자 백윤학은 “마디 숫자와 박자가 적혀있는 모니터를 보면서 연주해야 하는 일도 어렵지만 2~3시간 쉼 없는 연주가 정말 까다롭다”고 했다. “영화 OST는 오케스트라가 며칠 동안 나눠 녹음한다. 그걸 한 무대에서 하니 특히 금관 악기처럼 쉽게 지치는 파트는 더 힘들다.”

제작 비용도 만만치 않다. 세종문화회관 관계자는 “보통 오케스트라 공연보다 연주자 숫자도 많은 데다 영화 판권 관련 비용도 많이 들어서 제작비가 높다”고 전했다. 청중은 티켓 가격을 영화 관람 비용과 비교하곤 한다. 따라서 필름 콘서트의 티켓 가격에는 심리적 저항선이 있다.

필름 콘서트는 클래식 오케스트라 공연의 발판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제작자들에 따르면 필름 콘서트의 관객은 젊거나 어리며, 오케스트라 공연에서는 초심자다. 백윤학 지휘자는 “영화를 좋아해 공연장에 왔는데 오케스트라 소리를 실제로 처음 듣고 빠져들어 교향악 공연도 찾아가는 사례가 많다”고 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