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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세컷칼럼

인기 절정 피프티 피프티 분란… K팝의 어두운 그늘인가

중앙일보

입력

이지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벼락 출세’에 ‘벼락 파국’이다.

 4인조 걸그룹 피프티 피프티의 운명이 벼랑 끝에 몰렸다. 데뷔 8개월 만에 소속사와의 분쟁으로 빚어진 위기다.

 여론은 소속사에 우호적인 분위기다. 뜨자마자 소속사에 등을 돌리는 멤버들의 모습에 ‘배은망덕’ ‘뒤통수’ 프레임이 씌워졌다. 한국연예제작자협회ㆍ한국연예매니저먼트협회 등 관련 단체들도 각각 지난 5일과 18일 “불순한 세력의 기회주의적 인재 가로채기”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선량한 풍속과 질서를 흐트러뜨리는 일”이라며 공식 성명을 내고 소속사 편을 들었다.

17주 연속 빌보드 ‘핫100’ 신화
소속사ㆍ외주사 진흙탕 싸움에
저작권료 정산 등 활동 올스톱
“화해 중재로 K팝 자산 지켜야”

중소 기획사가 키워낸 걸그룹 분쟁

 지난해 11월 18일 데뷔한 피프티 피프티는 올 2월 발표한 노래 ‘큐피드’로 세계 음악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데뷔 4개월 만인 4월 첫째주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100’에 이름을 올리며 K팝 역사상 데뷔 후 최단 기간 진입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19일 발표된 최신 차트(7월 22일자)까지 17주 연속 ‘핫100’ 진입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8주차에 기록한 17위는 K팝 걸그룹 단독곡으로 역대 최고 순위다.

 그뿐인가. K팝 걸그룹 최초로 영국 오피셜 차트 톱10에 진입했고, 빌보드 글로벌(미국 제외) 차트와 스포티파이 바이럴 송즈 차트 등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일찌감치 미국 빌보드와 그래미 시상식의 신인상 후보로 거론된 데 이어 지난달 19일 미국 포브스는 피프티 피프티가 그래미 베스트 팝 듀오ㆍ그룹 퍼포먼스 부문 후보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방탄소년단(BTS)이 2021년부터 3년 연속 후보에 올랐던 부문이다.

 피프티 피프티가 중소기획사 소속인 것도 이들에게  ‘중소돌의 기적’ ‘흙수저의 신화’ 등의 수식어를 붙이며 화제성을 키웠다. 소속사 어트랙트는 유열 매니저 출신, 나이 환갑의 전홍준 대표가 2021년 설립한 회사다. 아이돌 그룹을 처음 만들어보는 어트랙트엔 음악 프로듀싱을 담당할 인력과 조직이 없었다. 외부 업체인 더기버스에 외주를 맡겼고, ‘틱톡 챌린지’ 등이 대박을 터뜨리며 흥행 질주가 시작됐다. 하지만 이들의 행복한 동행은 이어지지 못했다. 복권 당첨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이혼이라더니, 바로 그 꼴이 된 셈이다.

 파국의 서막은 피프티 피프티 멤버들이 지난달 19일 어트랙트를 상대로 전속계약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하면서 열렸다. 소속사의 지원 능력이 부족하고 정산자료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다는 것 등이 이유였다. 이에 어트랙트는 더기버스 안성일 대표를 ‘멤버들을 빼가려는 외부세력’으로 지목하고 업무방해ㆍ사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이후 한 달 동안 두 회사가 벌인 공방은 점입가경이다. 더기버스 안 대표의 ‘큐피드’ 저작권 빼돌리기 의혹까지 불거지자 한국음악저작권협회는 이달부터 ‘큐피드’의 저작권료 지급을 보류하기로 했다. 녹취록 공개와 서명 위조 논란 등 갖가지 진흙탕 싸움이 펼쳐지는 동안 피프티 피프티의 활동은 전면 중단됐다. 할리우드 영화 ‘바비’의 사운드트랙에 신곡 ‘바비 드림스’가 수록됐지만, 뮤직비디오 촬영과 미국 LA 프리미어 행사 참석은 무산됐다. 예정됐던 공연과 TV 출연 일정도 모두 취소됐다. 한국 대중음악사에 전례없는 일이다.

불붙은 K팝 동력 이어가야

 K팝의 세계화 시대를 연 BTS가 지난해 그룹 활동 중단을 선언하면서 K팝 산업은 변곡점을 맞았다. BTS의 낙수효과가 사라진 이후 K팝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3월 관훈포럼에서 방시혁 하이브 이사회 의장은  “K팝 산업의 성장률 둔화가 명확하다”면서 위기의식을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소속사 후광 없이, 팬덤의 지지 없이 세계시장에서 자리 잡은 피프티 피프티는 허무하게 놓쳐버리기 아쉬운 자산이다.

 내홍에 휩싸인 피프티 피프티를 두고 “어리석은 정도가 아니라 망한 것 같다”(김갑수 문화평론가), “‘원 히트 원더’(단 한 곡을 히트시키고 사라지는 아티스트)가 될 가능성이 크다”(최광호 한국음악콘텐츠협회 사무총장), “허무하게 됐다”(김대현 음악프로듀서) 등 혹평이 쏟아진다. 멤버들의 나이는 이제 고작 18∼21세. 이들이 진짜 망한 걸까.

 대중음악계의 터줏대감 임진모 평론가에게 물어봤다. 그는 “피프티 피프티의 상업적 잠재력은 아직 유효하다. 두 회사가 다시 손을 잡아야 산다. 누군가 중재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대답하며 “곡이 글로벌 차트 안에 살아있을 동안”이란 단서를 붙였다. 업계 내부에서부터 싸움 구경 대신 화해 중재에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다. 피프티 피프티의 히트곡 ‘큐피드’의 인기는 이제 정점을 찍고 하향 중이다. 빌보드 ‘핫100’ 차트의 이번 주 순위는 27위. ‘골든타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글=이지영 논설위원  그림=김아영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