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개미에겐 종교"…939% 폭등 황제주, 믿음으로 더 오른다?

중앙일보

입력

증권가 에코프로 광풍

K-배터리 혁명인가, 광기인가. 에코프로 신드롬이 증권가를 뒤흔들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연초 11만원으로 출발한 주가가 지난 18일 종가 기준 111만8000원을 기록하며 국내에서 가장 비싼 황제주에 등극했다. 에코프로는 현재 국내 증시에서 유일한 황제주이기도 하다. 황제주는 주가가 100만원이 넘는 주식을 이른다. 코스닥시장에선 지난 2007년 9월 동일철강이 110만2800원을 찍으며 황제주에 등극한이래 16년 만에 에코프로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21일 현재 에코프로는 종가 기준 사상 최고가를 재차 경신해 114만300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연초 대비 상승률(종가기준)은 무려 939%에 달한다.

에코프로는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양극재를 생산하는 에코프로비엠, 에코프로에이치엔 등을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다. ‘전기차’ 훈풍을 타고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에코프로그룹의 시가총액은 60조원을 넘어섰다. 올해 들어 시총이 5배나 불어나며 19일 기준 삼성(622조7430억원), LG(237조8593억원), SK(160조293억원), 현대차(126조6329억원), 포스코(93조5425억원) 등 5대 그룹에 이어 6위로 올라섰다. 그러나뜨거운 관심만큼 논란도 많다. 개인 투자자들의 소문으로 주가가 오르는 ‘밈 주식’이란 평가와 더불어 소외증후군(FOMO·Fear of Missing Out)에 따른 추격 매수를 경고하는 목소리도 적잖다. 한 주식 전문가는 “기업 분석을 통한 합리적인 예측이 무의미해질 정도로 폭등했다”며 “일종의 ‘종교’와 같은 경지에 있다”고 말했다.

개미들 “공매도 세력 물리치자”

에코프로의 질주는 올해 2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월만 해도 11만~12만원 선을 오가던 주가는 2월 들어 급등세를 타기 시작했다. 2월 말 종가 기준 28만5000원→3월 말 49만500원→4월 말 73만원으로 매달 약 50~70%의 폭풍 상승세를 보였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최대 수혜 분야로 2차전지 산업에 대한 성장 기대감이 커지고 있던 데다, ‘배터리 아저씨’로 불리는 박순혁 전 금양 이사 등이 유튜브와 각종 세미나에서 국내 2차전지 기업의 경쟁력을 설파하며 불이 붙었다.

에코프로는 ‘2차전지’ 대장주로 꼽힌다. 2차전지 핵심인 양극재 생산부터 폐배터리 리사이클링 등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일괄적으로 해낼 수 있는 계열사 체계를 구축했다는 점 등에서 전망이 밝다. 특히 핵심 자회사인 에코프로비엠은 글로벌 삼원계 양극재 생산 1위 업체다. 에코프로 매출은 양극재 사업을 시작한 2004년 75억원에서 18년 만인 지난해 5조원으로 660배 이상 커졌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이러한 성장성에도 증권업계는 ‘과열주의보’를 내렸다. 매도 의견을 거의 내지 않는 증권업계에서 지난 4~5월 잇따라 과열 경고를 보냈다. 하나증권은 4월 리포트에서 “끝까지 이성의 끈을 놓쳐선 안 된다. 소외증후군에 따른 매수 및 회피를 모두 경계한다”며 적정 가치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당부했다. 삼성증권은 “순자산가치(NAV) 대비 50% 프리미엄을 받는 현저한 고평가 상황 지속되고 있다”며 목표주가를 40만원으로 제시했다. 이날(5월2일) 주가를 73만3000원으로, 시세 대비 목표주가가 45%나 낮춘 셈이다.

대관식을 앞두고 증권가에서는 황제가 될 주식은 아니라는 분석을 잇달아 내놓은 것이다. 에코프로는 이같은 악재에 50만원대 초반까지 밀리기도 했지만, 6월 말 이후 다시 오름세를 회복했다. 미국 전기차업체인 테슬라의 깜짝 실적 발표가 에코프로 주가에도 날개를 달아줬다. 테슬라의 2분기 차량 인도 규모가 전년 동기 대비 83%(47만대)나 급등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6월 30일 에코프로 주가는 20.42% 급등했다.

다음 달 에코프로가 MSCI(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한국 지수 구성 종목에 편입되면 주가가 더 뛸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시가총액 규모가 크고 유동주식 비율이 높아 편입이 유력하다는 분석이다. 김동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현재 시점에서 편입 기준을 충족하는 종목은 에코프로, 한화오션, 금양, JYP엔터테인먼트”라며 “에코프로는 편입 기준 금액을 크게 상회하고 있어서 편입이 확실시 된다”고 했다. 에코프로가 이러한 예측대로 MSCI 편입에 성공하면 개인 투자자뿐 아니라 외국인들의 매수세가 강해져 주가는 더 오를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러한 호재를 반영하더라도, 현재 주가는 적정 수준을 넘어섰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올해 들어서는 에코프로그룹의 실적은 주춤한 상태다. 지주사인 에코프로는 올해 2분기 연결 재무제표 기준 매출 2조132억원, 영업이익 1664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이익은 전년 대비 63.4%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2.1% 감소한 수치다. 증권가 전망치(컨센서스)도 크게 밑돌았다. 에코프로 관련 2분기 추정 실적을 증권사 중 유일하게 제시한 삼성증권 예상치 대비 각각 7.5%, 26% 하회한다. 핵심 계열사인 에코프로비엠이 리튬 가격 하락 여파로 판가 하락을 겪으며 수익성이 낮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에코프로 주가수익비율 800배 달해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에코프로의 주가수익비율(PER)은 19일 기준 798.74배에 달한다. 코스닥지수의 평균 PER은 50.99배다. 기업 펀더멘털(기초체력)에 비해 주가가 이미 과도하게 상승해 향후 흐름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다음 분기 혹은 길어도 내년 실적에 대한 기대를 주가에 반영하는 게 일반적인데, 에코프로는 2030년 실적까지 끌어온 수준”이라며 “2000년도 IT 버블 때 IT만 붙으면 주가가 올라갔던 것처럼, 2차전지에 대한 맹목적인 테마장세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 주식 전문가는 “에코프로가 투자자들 사이에서 거의 신격화되면서 큰 변동성을 갖고 거래되는 것”이라며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 에코프로에 대한 믿음이 있는 한 급등세는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미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음에도, 달궈진 심리에 따라 주가는 더 치솟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이달 에코프로의 ‘황제주’ 등극은 개미 군단(개인 투자자 연합)이 외국인 공매도 세력을 이겨냈다는 애국 운동(?)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2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상반기 개인 투자자들은 에코프로 주식을 무려 1조4769억원이 넘게 순매수했다. 반면 외국인은 6512억원어치, 기관은 8057억원어치 순매도했다. 외국인과 기관의 매도 물량을 개인들이 받아낸 셈이다. 그런데 이달 들어 외국인들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이달 들어 20일까지 외국인은 에코프로 주식을 5494억원치 사들였다. 특히 지난 18일 JP모간이 에코프로 8만7126주를 매수하면서 ‘쇼트 스퀴즈’ 현상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JP모간은 에코프로의 ‘공매도 잔고 대량보유자’로 110만원을 넘긴 에코프로를 하루에 8만주 넘게 대량 매수한 것은 이례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쇼트 스퀴즈란 주가 하락을 기대했던 공매도 투자자가 주가 상승 압박을 못 이겨내고 주식을 다시 매수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제 시장의 관심사는 에코프로가 ‘왕관의 무게’를 견뎌내느냐로 모아진다. 박순혁 전 금양 이사는 추가 상승에 무게를 둔다. 그는 최근 한 경제 유튜브에서 “현재 에코프로의 공매도 금액이 대략 1조2000억~1조3000억원 정도인데, 이 규모가 2000억~3000억원으로 떨어질 때까지는 계속 쇼트 스퀴즈에 의한 상승이 나타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연초 『K-배터리 레볼루션』이라는 책을 내고 유튜브 방송 등에서 에코프로를 비롯한 2차전지 8종목을 공개 추천해왔다. 에코프로와 에코프로비엠을 비롯해 LG에너지솔루션·SK이노베이션·LG화학·포스코퓨처엠·포스코홀딩스·나노신소재 등이다. 지난 상반기 이들 종목의 주가는 포스코퓨처엠(94.44%), 나노신소재(55.74%) 등 8종목 모두 상승했다. 이와 같이 족집게 전망을 내놓은 덕에, 개인 투자자들은 과열을 경고하는 증권업계보다 상승을 주장하는 박 전 이사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였다.

향후 JP모간보다 에코프로의 공매도 잔고가 더 많은 모건스탠리, 메릴린치, 골드만삭스 등에서 쇼트 스퀴즈가 나올 경우 주가는 더 오를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나온다. 2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에코프로와 에코프로비엠의 공매도 잔고는 코스닥 1·2위에 올라있다. 에코프로의 공매도 잔고는 17일 기준 131만주(1조3094억원)로, 전체 주식의 4.92%가 공매도로 잡혀 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지금이라도 에코프로를 사야 하냐는 문의가 많은데, 삼성전자가 10만원 바라볼 때나 테슬라가 300달러 넘볼 때도 똑같은 질문을 받았다”며 “그런 질문들이 나올 때가 거의 예외없이 고점이었던 시점”이라며 신중한 투자를 당부했다. 최근 에코프로의 기록적인 과속질주에 개인 투자자 일부는 매도세로 돌아서는 양상이다. 황제주에 오른 지난 18일 이후 3일간 개인 투자자들은 2134억원을 순매도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