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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교체→CEO 수사→무죄·집유…KT 잔혹사 이번엔 다르다?

중앙일보

입력

남중수 구속·사의…KT 창사 이래 최대 위기 (2008년 11월)
이석채 사의…재계 ‘MB맨 물갈이’ 본격화 (2013년 11월)
평창올림픽 5G 잔칫날에 압수수색…KT 황창규 ‘당혹’ (2018년 1월)
연임 도전 KT 구현모…‘배임·일감 몰아주기’ 檢수사 (2023년 3월)

 2002년 민영화 이후 정권 교체기마다 수사를 받아온 KT 수장들에 대한 당시 언론 보도 제목이다. 최근 KT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수사중인 검찰의 칼끝이 구현모·남중수 전 대표를 향하자 질곡의 세월동안 축적돼 온 ‘KT 사법리스크’의 정형화된 패턴이 눈길을 끌고 있다.

민영화 이후 역대 KT 수장인 이용경 대표(2002~2005), 남중수 대표(2005~2008), 이석채 대표(2009~2013), 황창규 대표(2014~2020), 구현모 대표(2020~2023) 가운데 이용경 대표를 제외한 4명은 모두 임기 전후로 사법리스크에 휘말렸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① 정권교체 6개월 내 논란

 KT에 대한 검·경 수사는 대체로 정권이 바뀌고 6개월 안에 시작돼 ‘사퇴 압박’이라는 평가를 수반했다. 노무현 정부 때 취임한 남중수 전 대표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 11월 업체선정·인사청탁 등의 대가로 자회사와 하청업체에서 3억원을 수수해 검찰에 구속됐다. 구속 당일 남 대표는 사의를 표명했다.

이명박 정부 때 취임한 이석채 전 대표는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2013년 2월, 신사업 추진 과정에서 회삿돈 27억여원을 빼돌리고 회사에 103억원의 손해를 끼쳤다는 참여연대의 고발로 수사 대상에 올랐다. 검찰은 임원 연봉을 높게 책정한 뒤 일부를 돌려받는 식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도 이 전 대표를 수사했다. 수사가 속도를 내자 이 대표는 그해 11월 “직원들의 고통을 볼 수 없어 솔로몬 왕 앞의 어머니 심정으로 결단한다”며 사임했다.

KT 채용 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이석채 전 KT회장이 지난 2019년 4월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KT 채용 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이석채 전 KT회장이 지난 2019년 4월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박근혜 정부 때 자리에 오른 황창규 전 대표는 유일하게 임기 6년(연임 포함)을 채우고 퇴진했다. 하지만 임기 전후로 전방위 논란에 시달렸다. 아직도 재판이 이어지고 있는 ‘국회의원 쪼개기 후원’이 대표적이다. 2014~2017년 KT 법인이 일명 ‘상품권깡’으로 조성한 비자금 중 4억원가량을 국회의원 99명의 후원·접대비로 제공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다. 이밖에도 이석채 대표 시절 벌어진 김성태 전 의원 딸 채용비리와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금 무단 출연에 대한 시민단체 고발, KT 아현지사 화재, 전직 국회의원·고위 공무원 등 14명을 경영고문에 부정위촉한 의혹 등이 황 대표 임기 동안 불거졌다.

황창규 KT 전 회장(가운데)이 지난 2018년 11월 화재가 발생한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KT 아현지사를 찾아 화재로 인한 통신 장애 등에 사과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황창규 KT 전 회장(가운데)이 지난 2018년 11월 화재가 발생한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KT 아현지사를 찾아 화재로 인한 통신 장애 등에 사과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문재인 정부 때 취임한 구현모 전 대표는 윤석열 정부에서 연임을 시도한 직후인 지난해 12월 공정거래위원회가 일감 몰아주기 의혹 조사에 착수했다. KT가 시설관리 일감을 몰아준 하청업체 KDFS가 본사 경영진의 비자금 창고였다는 이 의혹은 지난 3월 시민단체 고발로 현재 검찰이 수사중이다. 구 전 대표는 지난 2월 연임 도전을 포기했다. 이와 별개로 그는 KT 임원 시절 국회의원 쪼개기 후원에 명의를 빌려준 혐의로도 재판을 받고 있다.

구현모 전 KT 대표가 지난 5월 1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구현모 전 KT 대표가 지난 5월 1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② 배임·횡령·정자법 단골집

 KT 수사에서 흔히 등장하는 죄명이 배임·횡령과 정치자금법 위반이다. 배임수재(남중수), 배임·횡령(이석채), 배임·횡령·정치자금법 위반(황창규), 정치자금법 위반·공정거래법 위반(구현모) 등이다. 이재우 변호사는 “기업가는 배임·횡령죄와 아슬아슬한 선을 타는 경우가 많아 정권 교체기에 입맛에 따른 수사에서 자주 활용될 소지가 있다”며 “정치자금법도 우리나라의 경우 정치적 자유를 지나치게 옥죄는 면이 있다”고 말했다.

세부적으로도 공통된 흐름이 존재한다. 자회사·하청업체 등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하거나 정치권에 ‘불법 후원’을 꾀하고 정·관계 유력 인사의 ‘채용 비리’가 엮이는 식이다. 시민단체나 여당의 고발이 수사의 단초가 되는 것도 자주 관측되는 패턴이다. 다만 검찰은 이번 일감 몰아주기 수사와 관련해선 “KDFS의 특혜 채용도 내부 임원들 가족이 대상이고, 비자금도 거의 KT 안에서만 흐른 것으로 보인다. 아직 정계가 연루된 정황은 없다”고 말했다. 익명을 원한 정치권 인사는 “공기업의 탈을 벗은 주인없는 회사들은 국회의원들의 암묵적인 후원 압박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KT·포스코 외부 압력설을 보도한 지난 2018년 4월 19일 본지 사설. 중앙포토

KT·포스코 외부 압력설을 보도한 지난 2018년 4월 19일 본지 사설. 중앙포토

③ 결론은 무죄·집행유예?

 남중수 전 대표의 배임수재 혐의는 2010년 서울고법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이 확정됐다. 이 사건은 자회사 KTF와 하청업체에서 뒷돈을 받았다는 구조가 자회사 KT텔레캅과 하청업체를 통해 조성된 비자금에 대한 최근 검찰 수사와도 구조가 비슷해 종종 환기되는 사건이다. 검찰은 이번 사건의 배후로도 남 전 대표를 주목하고 있다.

이석채 전 대표는 2018년 배임·횡령 혐의에 대해 최종 무죄를 선고받아 형사보상금까지 받았다. 김성태 전 의원 딸 특혜채용과 관련해선 지난해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받았다. 황창규 전 대표의 경우 미르·K스포츠 자금출연 고발 건은 관련 사건이 무죄가 나오며 검찰에서 각하됐고, 국회의원 쪼개기 후원은 대법원이 지난 5월 “불기소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경영고문 부정위촉 사건도 송치 2년 만인 2021년 불기소됐다. 구 전 대표는 아직 수사·재판이 진행중이지만 국회의원 쪼개기 후원 건에 대해선 지난 5일 서울중앙지법 1심에서 벌금 700만원만 선고됐다.

일감 몰아주기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서울 KT 본사 광화문빌딩. 뉴스1

일감 몰아주기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서울 KT 본사 광화문빌딩. 뉴스1

이들의 최종 재판 결과가 나오는 데는 자리에서 물러나고 최소 2~9년이 걸렸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주주에게 견제받아야 마땅한 민영화 기업의 지배구조를 만들지 못한 게 20년째 반복되는 악순환의 원인”이라며 “임원 중심 경영에선 대표 개인의 약점이 집권세력의 표적수사에 이용된다. 주주 중심의 새로운 지배구조를 짜야 한다”고 말했다. 통신업계 관계자도 “매번 외부 요인에 흔들리는 모습으로 정치·사회·경제적 비용과 피로도가 막심하다”며 “경쟁사로서도 실력 경쟁만으로 평가받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번엔 다를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이전 수사들과 달리 공정거래법 위반을 앞세워 이른바 ‘이권 카르텔’의 구조적 비리를 도려낸다는 복안이다. 검찰 관계자는 “현재 하청업체→자회사→본사 단계별로 탄탄한 입증이 이뤄지고 있다”며 “과거 무죄나 집행유예를 받고 끝내는 것처럼 용두사미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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