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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맛있어서 슬픈 중국 멜론 하미과

중앙일보

입력

중국의 대표 과일 중 하나인 하미과(哈密瓜). 사진 셔터스톡

중국의 대표 과일 중 하나인 하미과(哈密瓜). 사진 셔터스톡

달콤한 과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꼽는 가장 맛있는 중국 과일 중 하나는 하미과(哈密瓜)가 아닐까 싶다. 다른 나라에서는 맛보기 쉽지 않은 과일로 중국 신강성과 중앙아시아에서 주로 재배하는데 맛이 다소 독특하다.

그런 만큼 중국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로부터 그 맛이 그립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요즘은 한국에서도 인터넷 주문이 가능하다. 아마 종자를 들여와 재배하는 듯싶다.

어쨌든 대부분 한국인한테는 낯선 이름인데 중국 서부에 위치한 신강 위구르 자치구에 있는 도시인 하미(哈密)시에서 재배하는 품종이 특히 맛있어서 하미과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우리한테는 익숙하지 않기에 애써 이 과일에 대해 설명하자면 크기는 수박만큼 크지만 수박은 분명 아니다. 그렇다고 참외라고 하기에는 크기도 엄청 크고 당도와 식감도 다르다. 일단 달기가 참외와는 맛과 식감이 다른 데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다. 그렇다고 우리가 아는 멜론과도 또 다른 맛이다. 일단 식감이 부드러운 멜론과는 달라서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참외와 수박을 합친 것 같다. 그래서 중국 현지에서 하미과를 처음 맛보고는 그 정체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미과의 식물학적 정체부터 알아보면 실은 우리도 많이 먹는 머스크 멜론의 한 종류다. 그중에서 당도가 특히 높은 변종인 캔털루프 멜론 계열로 프랑스의 대문호 알렉산더 듀마가 사랑에 빠졌다는 멜론과 같은 계열이다. 하미과는 그중에서도 특히 당도가 높은 품종인 것 같다.
어쨌거나 우리한테는 낯선 하미과라는 과일, 알고 보면 꽤 많은 흥미로운 역사를 품고 있다. 먼저 현대 한국인에게는 익숙하지 않지만 옛날 조선의 선비들은 이미 이 과일을 알고 있었다. 문헌에 여러 차례 관련 이야기가 나온다.

숙종 때 사신을 수행해 북경을 다녀온 김창업이 『연행일기』에 회회국(回回國)에서 청나라 황제에게 진상하는 참외 종류로 맛은 참외와 달리 기이한데 지나치게 상쾌해 많이 먹을 수 없다고 했다. 얼마나 달콤하면서 시원하고 상큼한지를 연행일기를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겠는데 사실 하미과는 청나라 황제도 처음 먹어보고는 그 맛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이렇게 지나치게 상쾌하고 놀랄만큼 맛있는 하미과였기에 이 과일에는 지금은 중국의 지배 아래 놓인 위구르 민족의 아픈 역사가 깃들어 있다.

일단 하미과가 나온다는 도시 하미(哈密)는 17세기 말까지만 해도 독립된 위구르의 땅이었다. 하지만 이후 청나라 영향권 아래 들어가면서 조공을 바치게 되는데 당시 청에 보냈던 공물이 바로 하미과였다. 청나라 문헌인 『신강회부지(新疆回部志)』에는 강희제 때부터 하미국에서 참외(멜론)을 조공으로 보냈다고 나온다.

참고로 신강 위구르 자치구의 하미시에서 북경까지는 직선거리로 약 2200Km이니 서울과 부산까지의 5배 정도 거리다. 이 먼 거리를 공물로 바치기 위해 쉽게 무르고 상하는 멜론 종류 과일을 날랐으니 그 고생이 얼마나 심했을 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조선의 연행기록에도 회회국에서는 이 과일이 썩고 무르지 않도록 주로 겨울에 실어 날랐다고 나온다. 중국에 억압받고 정복당한 위구르 민족의 불행이 이때 이미 시작됐다.

또 하나, 하미과와 관련이 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현대 중국어에서도 그 아픔의 편린을 엿볼 수 있다. 사과(傻瓜, shagua)는 어수룩하다, 멍청하다는 뜻의 중국어 단어다. 어리석을 사(傻)와 오이, 참외 과(瓜)자를 쓴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어리석은 오이, 혹은 멍청한 참외라는 말이 되겠는데 여기서 과(瓜)는 여러 정황상 오이나 참외보다는 멜론에 가깝다. 그러니 사과는 어수룩한 멜론이라는 뜻이 되겠는데 왜 실속 못 차리고 잘 속아 넘어가는 사람을 바보 같은 멜론이라고 부른 것일까?

다양한 어원설이 있지만 중국 소수민족에서 비롯됐다는 민간 어원설도 있다. 중국 고전인 『좌전(佐傳)』에 "옛날 강융(羌戎)족의 조상이 진나라에 쫓겨 과주(瓜州)에 자리를 잡았다"는 기록이 보인다. 여기서 강융은 고대 중국에서 중원 밖 서북지역에 살았던 소수민족이고 과주는 지금의 감숙성 일대다. 물론 고대 지명을 지금과 직접 대비할 수는 없지만 아마 감숙성과 신강 위구르 자치구와 연결되는 지역일 것으로 추정한다. 어쨌든 멜론의 고장이라는 뜻의 과주는 고대에도 관련된 농사를 많이 지었기에 생긴 지명일 것이다. 과주에 정착한 강융족을 멜론 농사짓는 사람들이라는 뜻에서 과자족(瓜子族) 혹은 과인(瓜人)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 사람들, 성실함을 넘어 우둔하다 싶을 정도로 고지식해서 아무리 노동착취를 당해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묵묵히 일만 했다. 그래서 어리석고 멍청한(傻) 과자 사람들(瓜子族)이라고 놀렸는데 이 말이 줄어 어리숙한 멍청이라는 뜻의 사과가 됐다는 것이다.

근거를 찾기 힘든 민간 어원설이지만 중국의 뿌리 깊은 서부 소수민족에 대한 적대감과 조롱, 먼 길을 고생하며 조공으로 하미과를 보냈던 위구르 민족에 대한 핍박이 담긴 것이 아닌가 싶다.

윤덕노 음식문화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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