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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은 수요 없을것”…문턱 낮춘 저축은행 합병, 업계 시큰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금융당국이 저축은행에 대한 합병 규제를 완화했지만, 업계 반응은 미지근하다. 저축은행의 전반적인 업황이나 비수도권 저축은행의 건전성 등을 고려하면 인수합병(M&A) 수요가 크지 않다는 얘기다.

지난 4월 서울의 한 저축은행 앞. 연합뉴스

지난 4월 서울의 한 저축은행 앞. 연합뉴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최근 금융규제혁신회의를 열고 ‘저축은행 대주주 변경·합병 인가기준’ 개정안을 마련했다. 저축은행의 영업 구역을 확대하고, 관련 합병 및 지배구조 관련 규제를 완화한 게 주 내용이다. 저축은행의 경쟁력을 강화해 은행권의 과점 체제 해소하겠다는 취지다.

개정안은 구조조정 목적이거나 비수도권 저축은행에 대해 동일 대주주가 영업구역이 확대되더라도 최대 4개의 저축은행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그간은 동일 대주주가 3개 이상의 저축은행을 갖지 못했고, 영업구역이 다른 저축은행의 합병은 원칙적으로 허가되지 않았다. 현재 저축은행 영업구역은 수도권 2개(서울, 인천·경기)와 비수도권 4개(부산·울산·경남, 대구·경북·강원, 광주·전라·제주, 대전·세종·충청) 등 총 6개로 나뉘어 있다.

금융위는 “규모의 경제를 통해 자금 중개 기능을 향상하고 경영 건전성을 제고하려는 저축은행의 수요에 적기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제8차 금융규제혁신회의. 이날 회의에는 박병원 의장의 주재로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혁신회의 위원들이 참석했다. 연합뉴스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제8차 금융규제혁신회의. 이날 회의에는 박병원 의장의 주재로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혁신회의 위원들이 참석했다. 연합뉴스

하지만 저축은행 업계에선 실효성에 의문부호가 달린다. 전반적인 업황이 어려워 M&A 수요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저축은행 79개사는 올해 1분기 523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저축은행 사태’ 당시인 2014년 2분기 이후 첫 적자다. 고금리 여파로 이런 추이는 더 이어질 전망이다. 자금 조달 비용과 연체율이 높아진 데다, 우량 대출자 발굴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다.

지방 중소형 저축은행의 건전성이 상대적으로 좋지 않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업계 관계자는 “인구·실적 등에서 수도권과 지방이 양극화돼 있다”라며 “건전성이 좋지 않은 지방 저축은행을 인수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영업 구역을 넓힐 이유는 부족해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앞서 금융당국이 허용키로 한 저축은행의 지방은행 전환도 단시일에 실효성이 있긴 어렵다는 관측이다. 지방은행의 경우 자본금 250억원 이상을 보유해야 하고, 산업자본은 지방은행의 지분을 최대 15% 가질 수 있다. 이미 은행을 가지고 있는 금융그룹 계열이 아닌 대다수 저축은행은 이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다만 금융당국의 규제 완화 방향 자체는 긍정적이다. 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M&A나 지방은행 전환 등으로 저축은행의 선택권이 넓어진 점이 분명하다”면서 “각 저축은행의 영업 방식이나 지배 구조 등 따져봐야 할 내용이 많아 실제 M&A나 지방은행 전환사례가 등장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도권 저축은행 관계자는 “저축은행은 할 수 있는 게 정해져 있는 ‘포지티브 규제’를 받고 있다. 이번에 지배·합병 규제가 풀리면서 다른 규제들도 이어서 완화될 여지가 커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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