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대 대선 과정에서 MBC 측이 김건희 여사 ‘7시간 통화’ 녹취 내용을 유출했다고 폭로한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던 김광중 변호사가 2심에서 패소했다. 김 변호사는 김 여사가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이하 ‘스트레이트’)를 상대로 냈던 방송금지 가처분 사건에서 MBC를 대리했던 인물이다.
스트레이트가 김 여사와 서울의소리 이명수 씨의 2021년 7월~12월 약 7시간의 통화 녹취를 확보하고 방송을 예고했자, 김 여사는 지난해 1월 법원에 방송금지 가처분을 신청했었다. 이 사건에서 서울 서부지법은 수사 중인 사건이나 김 여사의 사생활에 대한 발언에 대해서만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3-3부(부장 송승훈)는 지난 14일 김 변호사가 유 의원을 상대로 “5000만원을 배상하라”고 낸 소송 항소심에서 유 의원에게 700만원을 지급하라고 내린 1심 판결을 뒤집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유 의원의 발언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 인정되고, 그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은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것이거나 정당의 감시·비판 기능의 중요성에 비춰 허용되는 범위 내의 것”이라면서다.
당시 일부 언론이 방송 금지된 김 여사의 발언이 무엇인지를 보도하자, 국민의힘 법률자문위원장인 유 의원은 “김 변호사와 스트레이트 제작진이 방송이 금지된 부분이 포함된 법원 결정문을 기자들에 유포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내고 이들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그러자 김 변호사는 “유 의원이 허위 사실을 유포해 명예를 훼손했다”며 5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1심을 맡은 남부지법 민사9단독(유정훈 판사)은 지난 3월 “유 의원이 허위 사실을 포함한 보도자료를 배포해 인격권을 침해했다”며 김 변호사의 손을 들어줬다.
2심 “명예 보호 명목 비판 봉쇄돼선 안 돼”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유 의원의 의혹 제기가 정당했다고 판단했다. 방송 금지된 김 여사의 발언 내용이 뭔지 등이 공적인 관심의 대상이었던 만큼, 이를 일반 국민에게 공개한 행위에 대한 평가 역시 공익적 목적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2심 재판부는 “다소 단정적인 표현을 사용하기는 했으나, 이 사건에 관한 정치적 의견을 밝히는 과정에서 과장되게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며 “(보도자료에선) 인신공격적 비방이나 경멸적 표현은 사용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서부지법 가처분 결정문에 김 변호사가 이를 다운로드 받았다는 표시가 적혀 있었던 만큼, 유 의원으로선 김 변호사가 결정문을 유출했다고 볼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고도 지적했다. 법원에 따르면 김 변호사는 해당 결정문 파일을 내려받아 MBC 법무팀장과의 단체 대화방에 공유했고, MBC 법무팀장으로부터 파일을 전달받은 MBC 공영미디어국장은 이를 기자들에게 배포했다.
2심 재판부는 이어 “김 변호사는 가처분 사건에서의 역할과 행위에 대해 상반되는 사회적 평가가 있을 수 있음을 예상할 수 있었다”며 공론의 장에 나선 인물의 경우 자신에 대한 비판과 의혹의 제기를 감수하고, 해명과 재반박을 통해 이를 극복해야 한다. 그에 대한 의혹의 제기가 명예 보호라는 명목으로 봉쇄돼선 안 된다”고 판시했다.
한편 유 의원이 김 변호사와 MBC 스트레이트 제작진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지난해 8월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