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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장작값 폭등에…에르도안, 빈살만에 구명요청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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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오른쪽)이 17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사우디의 실권자인 무하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나 악수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튀르키예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오른쪽)이 17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사우디의 실권자인 무하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나 악수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5월 연임에 성공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본격적인 ‘경제 위기 구명’에 나서고 있다.

17일(현지시간) 사우디 국영 SPA통신·튀르키예 TRT 등에 따르면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사우디의 제2도시 제다를 방문해 실권자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를 만나 ‘깨알 케미스트리’를 과시했다. 에르도안 대통령과 빈살만 왕세자는 제다의 알 살람 궁전에서 튀르키예 방산업체 바이카르의 계약 두 건을 포함한 방산·에너지 분야의 양해각서(MOU) 여러 건을 체결했다.

이번 정상회담은 어느 때보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사우디의 SPA는 “정상회담이 끝난 뒤 빈살만 왕세자가 직접 에르도안 대통령을 숙소로 데려다줬다”고 보도했다.

빈살만 왕세자가 미소 띤 얼굴로 운전대를 잡았고, 에르도안 대통령은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왕과 빈살만 왕세자에게 튀르키예가 자체 개발한 전기차를 각각 선물했다고 한다.

사우디 국영 SPA통신은 17일(현지시간)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직접 운전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을 숙소로 안내하고 있는 장면을 촬영해 보도했다. 알아라비야뉴스 홈페이지 캡처

사우디 국영 SPA통신은 17일(현지시간)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직접 운전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을 숙소로 안내하고 있는 장면을 촬영해 보도했다. 알아라비야뉴스 홈페이지 캡처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부터 19일까지 사우디와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등 걸프만 3국 순방길에 오른 터였다. 이에 앞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를 제외하면, 지난 5월 에르도안 대통령이 신승으로 정권을 연장한 이후 사실상 첫 해외 순방이었다.

그의 이번 걸프만 순방은 철저히 투자에 초점이 맞춰졌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출국 전 기자회견에서 “지난 20년 동안 사우디에서 튀르키예 기업들이 수행한 프로젝트의 가치는 250억 달러(약 31조 5000억원)”라며 “우리는 튀르키예 기업들이 사우디의 대규모 프로젝트에서 더 큰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앞서 튀르키예와 사우디 관계는 지난 2018년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으로 급격히 냉각됐다. 카슈끄지는 2018년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영사관을 찾았다가 사우디 정부 관계자들에게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사우디 측은 이를 부인했지만, 자국 영토에서 벌어진 살인에 격분한 튀르키예는 자체 수사를 통해 사건의 전말을 국제 사회에 공개했다. 튀르키예 당국은 빈살만을 겨냥해 “사우디 최고위층이 연루돼 있다”라고도 했다.

양국 간 외교 긴장은 그러나 경제 위기에 뒷전으로 밀려났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사건이 일어난 지 4년 만인 지난해 4월 사우디를 방문했고, 두 달 뒤 빈살만 왕세자를 앙카라로 초청했다. 이때 두 정상은 “양국 간 새로운 협력의 시대”를 선언했다. 에르도안이 경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빈살만에게 손을 내밀었다는 해석이 나왔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이번 제다 방문도 이런 맥락에서 이뤄졌다고 로이터통신 등 외신들이 평가했다.

튀르키예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국수주의 경제 정책을 고수하면서 고물가와 통화 약세 등에 시달려왔다. 튀르키예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10월 80%대로 정점을 찍었다가, 지난달 39%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비슷한 경제 규모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선 여전히 높은 수치로, 체감 물가는 훨씬 높다. 영국 BBC 방송은 지난 15일 “이스탄불의 베이커리 등 소매점에선 밀가루 가격이 지난해 대비 500%, 오븐용 장작값은 900% 폭등했다”고 전했다.

연임 이후 에르도안 대통령은 경제통들을 전면에 배치하면서 본격적인 경제 살리기에 돌입했다. 튀르키예 중앙은행 총재에 미 월가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 출신의 하피즈 가예 에르칸을 임명했고, 재무부 장관에도 정통 경제 관료인 메흐메트 심섹을 임명했다. 이에 따라 에르도안 대통령의 압박에 따라 내렸던 기준 금리를 8.5%에서 다시 15%로 회복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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