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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적 지원이나 '살상무기' 못잖다…尹 묘수, 우크라 지뢰제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윤석열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 성 소피아 대성당을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손을 잡은 채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 성 소피아 대성당을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손을 잡은 채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

지난 15일(현지시간)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김건희 여사가 키이우의 아동권리보호센터에서 만난 한 어린이는 김 여사의 손목에 스티커를 하나 붙여줬다. 지뢰를 탐지하는 강아지가 놀이터에서 어린 아이들을 이끌고 가는 그림이었다는 게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의 설명이다. 러시아군이 퇴각하며 아동 이용 시설에까지 빼곡하게 지뢰를 매설, 어린이를 비롯한 민간인들도 언제든 목숨을 잃을 위험에 처해 있는 잔인한 현실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윤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지뢰 탐지기·제거기의 지원 확대를 약속한 것도 이런 배경이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본격적인 반격에 나선 우크라이나의 발목을 잡는 가장 큰 장애물 역시 지뢰밭이기 때문이다. 지뢰 제거 지원이 인도적 지원인 동시에 살상 무기 못지않은 전세 역전 효과를 꾀할 수 있어 양국 모두에게 일종의 ‘묘수’가 될 수 있다.

지뢰에 막힌 반격…“수요 절박”

대통령실은 1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와의 정상회담 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가진 언론 브리핑에서 지뢰 탐지기·제거기 지원은 우크라이나 측의 요청으로 이뤄졌다고 밝혔다. “이들 무기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수요가 절박하리만큼 컸다”는 게 김태효 차장의 설명이다.

러시아 군이 살포한 지뢰는 민간 피해를 야기할 뿐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진군에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NYT)가 최근 우크라이나 군 장병들을 인터뷰했더니 이들은 지난 5주 간 반격이 지지부진했던 이유로 지뢰를 공통적으로 꼽았다. ‘마녀’ ‘잎사귀’ 등 수십 가지 이름이 붙은 지뢰가 광범위하게 펴졌다는 것이다. 러시아 군이 주요 거점 앞 5∼16㎞ 지역에 대전차ㆍ대인 지뢰를 빼곡하게 심어놨다는 증언도 나왔다.

자포리자에서 파괴된 우크라이나 군의 브래들리 장갑차, 레오파르트 전차. 러시아 국방부

자포리자에서 파괴된 우크라이나 군의 브래들리 장갑차, 레오파르트 전차. 러시아 국방부

지난 6월 반격이 본격화할 무렵 미국이 제공한 브래들리 장갑차, 독일산 레오파르트 전차 등 우크라이나 군의 무기손실률이 20%에 이른 것도 지뢰 때문으로 분석된다. 자포리자에 투입된 주력 부대인 제47기계화여단의 경우 99대 브래들리 중 28대가 지뢰로 무력화됐다고 한다. 이에 우크라이나 군은 미사일과 포를 앞세우는 식으로 전술을 바꿔 무기손실률을 10%로 낮췄지만, 진격 속도는 크게 떨어졌다.

NYT는 2014년 아프가니스탄·체첸과 전쟁 때부터 지뢰가 러시아 군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고 분석했다. 이때 지뢰로 이득을 본 경험을 살려 전쟁이 이뤄지는 동안 우크라이나에 꾸준히 지뢰를 뿌리고 있다는 것이다. 데니스 슈미할 우크라이나 총리는 지난 1월 언론 인터뷰에서 “전쟁 후 우크라이나에 25만㎢ 규모의 지뢰 지대가 생겼다”며 “이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라고 밝혔다.

살상무기 이상 효과 기대도

우크라이나가 한국에 지뢰 제거 지원을 콕 집어 요청한 건 한국이 이 분야에서 강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6·25전쟁에 이어 분단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각종 유실지뢰는 한국 군 평시 작전에서 여전한 위험요소다. 신형 지뢰탐지기 PRS-20K, 장애물개척전차 K600 등이 국내 기술로 개발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슈미할 총리 역시 “지뢰 제거 작업에서도 풍부한 경험과 기술, 장비 등을 갖춘 한국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우크라이나가 지뢰 탐지 및 제거에 속도를 내게 된다면 이는 살상무기 직접 지원 이상의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분석도 그래서 나온다. 미국 주도의 통합억제(integrated deterrence) 전략에 동참하기로 한 정부가 향후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받을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지뢰 제거 지원은 우크라이나 군의 전투력 제고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면서도 인도적 성격의 비살상 군수품만 지원한다는 정부의 기존 원칙과 명분을 유지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리투아니아 빌뉴스 리텍스포에서 열린 나토 동맹국·파트너국 정상회의에서 참석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리투아니아 빌뉴스 리텍스포에서 열린 나토 동맹국·파트너국 정상회의에서 참석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대통령실

실제 양국 정상이 합의해 발표한 우크라이나 지원책 ‘평화 연대 이니셔티브’는 안보·인도·재건 지원 분야 각 3가지씩으로 구성됐는데, 지뢰탐지기는 인도 분야에 포함됐다.

장애물개척전차 지원도 가시권

이미 물꼬도 트였다. 정부는 지난 5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지난주 군 수송기를 띄워 휴대용 지뢰탐지기 등을 보냈다. 당시엔 한국 군 보유 상황을 고려해 신형(PRS-20K)이 아닌 구형 탐지기를 보냈다고 한다.

정부는 향후 PRS-20K는 물론 장애물개척전차 K600 지원이 가능한지도 들여다볼 계획이다. 정부는 당장 K600 대신 다목적 굴착기를 우선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국내기술로 연구개발에 성공한 ‘신형 지뢰탐지기(PRS-20K). 방위사업청

국내기술로 연구개발에 성공한 ‘신형 지뢰탐지기(PRS-20K). 방위사업청

양국은 또 이번 정상회담에서 방위산업 협력 방안도 중장기 과제로 구상하기로 했다. 이를 놓고 일각에선 우크라이나에 ‘K 방산’의 기술 이전이나 현지 생산 등이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양국 방산 협력은 전쟁 이후를 염두에 둔 사안”이라며 “우크라이나가 인접국과 ‘힘의 균형’을 이룰 수 있다면 이 같은 전쟁이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라는 취지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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