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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긴축·불황에도 일자리 늘어…고용지표 역주행 이유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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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8호 06면

미국 노동시장 미스터리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전경. 고용지표가 견고하게 유지되며 시장은 경기 연착륙 기대와 금리인상 가능성에 대한 불안 을 보이고 있다. [UPI=연합뉴스]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전경. 고용지표가 견고하게 유지되며 시장은 경기 연착륙 기대와 금리인상 가능성에 대한 불안 을 보이고 있다. [UPI=연합뉴스]

3.6%.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지난달 미국의 실업률이다. 노동의 수요와 공급이 사실상 일치하는 ‘완전고용’ 상태가 1년 반째 이어지고 있다. 이론적으로는 실업률이 0%여야 완전고용이지만, 이직 등으로 생기는 자연적 실업이 있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통상 실업률이 4%를 넘지 않을 때 완전고용 수준으로 해석한다.

그런데 미국 실업률은 2021년 11월 4.2%를 마지막으로 월간 기준 4%를 초과한 적이 없다. 1969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실업수당 청구 건수도 지난달 마지막 주 24만8000건으로, 역사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인 20만 건 중반대를 유지했다. 최소 2주 이상 실업수당 신청을 의미하는 계속실업수당 청구 건수 역시 172만 건으로 올해 2월 이후 최저치였다.

고용정보업체 ADP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의 민간 기업 고용은 전월보다 49만7000개 증가했다. 지난해 7월 이후 최대 증가 폭이자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한 전문가 예상치(22만개)의 2.3배에 이른다. 서비스업인 레저·접객업에서만 23만2000개의 고용이 증가해 흐름을 주도했다. 미국 공급관리협회의 지난달 서비스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53.9로 전월(50.3)보다 껑충 뛰었다. PMI가 50을 밑돌면 경기 위축, 웃돌면 경기 확장을 가리킨다. 서비스업의 호황은 노동 수요 증가에 따른 임금 상승과 이로 인한 서비스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전체 경기가 호황인 것처럼 보이는 ‘착시’를 일으키기 쉽다.

팬데믹 시기 ‘대퇴사’ 열풍도 한 몫

고용지표만 보면 미국은 역사적 호황을 누리는 중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물음표가 붙는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제로(0)금리 정책 여파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공급망 재편 등으로 세계경제는 지난해부터 기록적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라는 위기를 만났다. 이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지난해 3월부터 거침없이 올린 기준금리는 올해 5월 5~5.25%에 달했다. 이처럼 연준이 긴축을 하면 그 끝엔 언제나 리세션(recession·경기 후퇴 초기 국면에 나타나는 침체)이 있었다. 기업들이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는 상황이므로 당연히 고용이 줄고, 이로 인해 노동시장은 급랭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고용지표는 역주행하고 있다. 리세션 우려가 과했던 걸까.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이 같은 고용지표 미스터리의 배경을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 첫째, 인구 구조에 따른 노동 공급 감소다.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는 1946~65년생인데 이들의 은퇴가 팬데믹 시기에 집중되면서 노동시장의 수급 불균형이 심화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미국의 전체 고용에선 55세 이상 노동자 비중이 23%에 달할 만큼 높다. 스테파니 퍼거슨 미국 상공회의소 연구원은 “팬데믹으로 55세 이상 노동자 300만 명 이상이 조기 은퇴를 했다”며 “그 결과 미국의 생산 가능 인구도 팬데믹 직전인 2020년 2월 대비 200만 명 가까이 줄었다”고 전했다. 이는 기업들의 ‘때 아닌 구인난’으로 이어지고 있을 개연성이 크다.

둘째, 자발적 퇴직자 급증에 따른 노동 공급 감소다. 미국에선 팬데믹을 계기로 이른바 ‘대퇴사(the Great Resignation)’ 열풍이 불면서 2021년 기준 퇴직자가 4740만 명에 달했다. 팬데믹 이전인 2019년엔 4120만 명이었으니, 불과 2년 만에 퇴직자가 620만 명 늘어난 것이다. 팬데믹이 불러온 자산시장 버블로 증시나 암호화폐 등에 투자했던 이들이 평생 근로소득만으로는 꿈도 못 꿨을 목돈을 버는 경우가 급증했고, 젊은 세대 사이에서 일보다는 가정·취미생활을 중시하는 풍조가 자리 잡은 결과다. 올해 5월에도 미국의 자발적 퇴직자 수는 402만 명이나 됐다.

셋째, 코로나19 엔데믹 전환(팬데믹 종료)에 따른 서비스업 일자리 증가다. WSJ에 따르면 지난 1년간 미국의 음식점·카페·테마파크 등 서비스업 일자리 증가 속도는 전체 일자리 증가 속도의 2배에 달했다. 팬데믹 시기 비대면 서비스 활성화로 급감했던 오프라인 노동 수요가 회복되고 있다는 얘기다. 더구나 서비스업은 기업의 총 투입 비용에서 고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제조업보다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 충격에 대한 민감도가 낮다. 캔자스시티 연방준비은행(연은)은 최근 보고서에서 “1990년대 초반과 2000년대 초반 등 과거 금리 인상기에도 긴축 시작 후 12개월까지 서비스업의 실업률 상승과 임금 하락은 눈에 띄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넷째, 기업들의 풍족해진 재정 상황으로 인한 고용 여력 확보다. 팬데믹 시기 제로금리로 시중에 풀렸던 풍부한 유동성이 증시로 흡수됐다. 이에 상장사 다수는 시가총액과 주가 급등으로 팬데믹 이전보다 자금력이 크게 강화됐다. 그만큼 연구·개발(R&D)과 인력 확보·유지 등에 투입할 돈이 아직 충분하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팬데믹이 유연근로제 활성화로 이어지면서 파트타이머(주당 40시간 미만을 일하는 사람) 등 단시간 노동자가 늘어난 것도 기업들의 인건비 부담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5월 미국 노동자들은 주당 평균 34.3시간 근무해 2009년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이런 몇 가지 배경 속에 미국의 일자리 수(구인 공고 기준)는 팬데믹의 초반 기세가 매섭던 2020년 5월 558만1000개였다가 2021년 5월 984만개로 반등했고, 2년이 지난 올해 5월에도 982만4000개(잠정치)를 유지 중이다. 그나마 지난해 1000만개 이상에서 다소 꺾인 숫자다.

문제는 이처럼 여전히 견고한 고용지표가 역설적으로 향후 경기 후퇴 가능성을 키운다는 점이다. 연준 입장에선 금리를 더 올려도 되겠다는 신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경제연구소 블룸버그이코노믹스의 스튜어트 폴 이코노미스트는 “연준이 인플레이션뿐만 아니라 노동시장 과열을 억제하기 위해 내년까지 더 높은 금리 수준을 유지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연준 “인플레와 싸우기 좋은 타이밍”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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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연준의 매파 인사들은 연내 두 차례의 추가 금리 인상을 주장하고 있다.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은 총재는 “노동시장 상황이 좋아 인플레이션과 싸우기 좋은 타이밍”이라며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1970년대와 같은 심각한 인플레이션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시장에서는 연준이 25~26일(현지시간)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최근의 고용지표가 과장됐으며, 실제 노동시장 분위기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연준이 오판해선 안 된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WSJ에 따르면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의 스티브 잉글랜더 북미거시전략책임자는 월간 20만개, SMBC닛코증권의 조셉 라보르냐 수석이코노미스트는 7만7000개의 고용 집계 오류 가능성을 각각 지적했다.

예컨대 미국의 고용보고서는 급여 조사와 가계 조사 결과를 토대로 한다. 급여 조사에선 전체 노동자의 28%가량이 속한 12만2000개 이상 기업 등의 자료를, 가계 조사에선 약 6만 가구 자료를 본다. 그런데 올해 5월 고용보고서의 경우 급여 조사에선 일자리가 33만9000개 증가한 반면, 가계 조사에선 거꾸로 일자리가 31만개 감소하고 실업자 수가 44만 명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영업자가 가계 조사 대상엔 포함되지만 급여 조사 대상엔 포함되지 않는 등 차이가 있어서다. WSJ는 전문가들을 인용해 이를 짚으면서 “미국 노동통계국의 분석 모델은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경제 상황을 바탕으로 실업자 수를 추정한다”며 “노동시장이 최근처럼 급변했을 땐 부정확한 통계가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도 고용률 70% 사상 최고, 취업자수 28개월째 증가

미국처럼 한국도 고용지표가 호조세를 보이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취업자 수는 2881만2000명으로 전년 동기보다 33만3000명이 증가했다. 취업자 수 증가세는 2021년 3월부터 28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각각 12만6000명, 11만6000명의 취업자가 늘어난 보건·사회복지서비스업과 숙박·음식업이 이런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보건·사회복지서비스업은 2021년 3월부터, 숙박·음식점업은 2022년 10월부터 매월 전년 동기 대비 10만 명 이상 취업자가 늘고 있다. 서운주 통계청 사회통계국장은 “돌봄 수요와 외부 활동이 증가하면서 취업자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힘입어 15~64세 고용률도 69.9%로 1989년 첫 해당 통계 작성 이후로 월간 기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실업률 역시 2.7%로 미국보다도 낮다. 특히 고령층 고용이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통계청은 올해 5월 60대 취업자 수가 446만7000명으로 20대 취업자 수(383만3000명)보다 많은 것으로 집계했다. 2021년 5월부터 3년째 월간 60대 취업자 수가 20대 취업자 수보다 많은 상황이다.

다만 이러다보니 고용지표가 겉으로 좋아 보여도 고용의 질은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고령층 일자리의 대부분이 정부가 만든 단기 일자리여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65세 이상 경제활동참가율이 2011~21년 6.6%포인트 올랐는데 정부의 고령층 일자리 확대 사업에 따른 상승분이 3.9%포인트였다. 이동원 한은 경제연구원 미시제도연구실장은 “정부의 고령층 일자리 확대 사업이 고용지표에 착시를 일으켰다”며 “2010년대 중반 이후 임시·일용직과 기간·시간제 상용직에서 고령층 취업자의 비중이 크게 높아지는 등 고용의 질은 좋지 못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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