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세계 당구 고수들 K구장의 결투…‘롱롱남매’ 최다승 나이스 큐!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848호 12면

미 PGA 부럽잖은 한국 PBA

PBA-LPBA에서 뛰는 선수들. 사진 아래부터 시계방향으로 스롱 피아비(캄보디아), 프레드릭 쿠드롱(벨기에), 세미 세이기너(튀르키예), 용현지(한국). 트로피는 2차대회 우승컵. [사진 PBA]

PBA-LPBA에서 뛰는 선수들. 사진 아래부터 시계방향으로 스롱 피아비(캄보디아), 프레드릭 쿠드롱(벨기에), 세미 세이기너(튀르키예), 용현지(한국). 트로피는 2차대회 우승컵. [사진 PBA]

미국에 PGA-LPGA가 있다면 한국에는 PBA-LPBA가 있다.

PGA(Professional Golf Association)는 1916년 창립한 미국프로골프협회다. 1968년 골프대회를 주관하는 ‘PGA 투어’가 만들어졌다. 전 세계 골프 선수들이 꿈꾸는 최고의 무대다. 2022~23 시즌 47개 대회 상금을 합치면 4억1500만 달러(약 5400억원)나 된다. LPGA는 1950년에 창립한 미국여자골프협회다. LPGA 투어의 올 시즌 33개 대회 상금 총액은 1억140만 달러(약 1480억원)다.

PBA(Professional Billiard Association)는 2019년 대한민국에서 설립한 프로당구협회다. PBA 투어(1부 128명)는 2023~24 시즌 9차례 투어 대회와 왕중왕전 격인 월드 챔피언십을 펼친다. 120명이 출전하는 LPBA도 PBA와 일정이 같다. 대회별 공식 총상금은 PBA가 2억5000만원, LPBA가 5000만원이다. 왕중왕전 우승상금은 남자 2억원, 여자 7000만원이다. PBA-LPBA 선수들이 혼성으로 팀을 구성한 팀 리그는 6라운드로 열린다. 현재 프로당구 팀은 9개다.

PBA는 ‘스리쿠션’으로 알려진 캐롬 종목만을 주관한다. 세계 스리쿠션 4대천왕 중 프레드릭 쿠드롱(벨기에)과 다니엘 산체스(스페인)가 PBA 투어에서 뛰고 있다. 올 시즌에는 ‘미스터 매직’이라 불리는 예술구의 달인 세미 세이기너(튀르키예)가 가세해 데뷔전(블루원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한 해 13억 들여 엄청난 광고효과

LPBA에서는 ‘캄보디아댁’으로 유명한 스롱 피아비를 비롯해 한국·일본 선수들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지난 주 끝난 2차투어(실크로드&안산 챔피언십) 여자부에서는 피아비가 한국의 용현지(22)를 세트스코어 4-3으로 꺾고 LPBA 최다인 6회 우승을 차지했다. 남자부에서는 쿠드롱이 비롤 위마즈(튀르키예)를 4-1로 누르고 8승째를 거둬 자신이 갖고 있던 PBA 최다승 기록을 갈아치웠다. 또한 5시즌 만에 공식 상금 10억2850만원을 따내 ‘상금 10억원 시대’를 열었다.

PBA는 역사·규모·인지도 등에서 PGA의 상대가 못 된다. 그러나 국내의 탄탄한 저변을 기반으로 글로벌 투어를 조직하고, 세계 최고 선수들이 뛰는 무대를 열었다는 것만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문체부장관과 KBL(프로농구연맹) 수장을 역임한 김영수 초대 총재의 리더십, 스포츠마케팅 업계에서 경험을 쌓은 실무진의 기민한 의사결정이 PBA의 빠른 성장을 이끌었다. 2차투어가 열린 안산 상록수체육관에서 만난 김영진 PBA 전무이사는 “우리는 FIFA(축구)나 FIBA(농구) 같은 상위기관이 없다. 우리가 만드는 게 법이고 우리가 가는 게 길이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번 시즌 달라지는 건?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 안에 200석 규모의 전용경기장이 생겨 7월 22일 개막하는 3차 투어부터 여기서 경기가 열린다. 수도권에 2000~3000석 규모의 전용체육관을 지을 때까지 이곳을 사용할 예정이다. 전용경기장이 생김으로써 투어의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해졌고 중계 여건도 더 좋아졌다.”
팀 리그 참가 구단이 9개로 늘었다.
“마음만 먹었다면 20개도 만들 수 있었지만 10개를 채운 뒤 안정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팀을 만들면 선수 급여와 운영비(약 5억원), 대회 타이틀스폰서 후원금(7억5000만원)을 합쳐도 KLPGA(여자골프) 특급 선수 한 명 후원하는 정도밖에 안 된다. 그런데 5개 채널에서 밤낮 없이 경기가 방영되고, 팀명과 로고가 노출된다. 협찬사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PBA가 짧은 기간에 성공한 비결은?
“스포츠마케팅 업계에서 일하던 우리가 ‘제대로 된 스포츠 모델을 만들어 보자’고 의기투합한 뒤 2년 동안 맹렬하게 공부했다. 전국 2만4000개에 달하는 당구장, 한국 선수들의 잠재력, 24시간 방송하는 채널 등 모든 게 완벽했다. 다만 당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가장 두터운 벽이었다. 세계적인 브랜드를 끌고 오면 인식이 바뀔 거라고 봤다. 2019년 PBA 개막전 타이틀스폰서가 글로벌 가전기업 파나소닉이었다. 이후 신한금융, SK렌터카, NH농협 등 대기업들이 들어왔다.”
또 다른 성공 포인트는?
“우리는 당구 전문가가 아니다. 그래서 ‘다르게 가 보자’는 전략을 밀어붙일 수 있었다. 40점 단판 경기를 세트제로 바꾼 것, 뱅크샷(당구대 쿠션을 먼저 맞히고 공을 치는 샷. 속칭 ‘가라쿠’)에 2점을 준 것, 나비넥타이 등 현실과 안 맞는 경기복에 자율성을 부여한 것 등이다. 욕도 많이 먹었지만 결국 다 성공이었다. 앞으로도 단체전에 치어리더 기용 등 참신한 시도를 계속할 것이다.”
기존 국제기구(UMB·세계캐롬당구연맹)가 있고, 스리쿠션은 국제 당구계에서 주류도 아닌데.
“솔직히 말해 스리쿠션(캐롬)은 당구의 마이너 종목인 게 사실이다. 구멍에 공을 집어넣는 포켓볼이나 스누커 시장이 더 크다. 그러나 한국이 앞장서서 스리쿠션의 상품성을 높이고 시장을 키우면 된다. 국제빙상연맹(ISU)이 스피드·피겨·쇼트트랙 종목을 관장하듯 당구도 대표성을 갖는 국제기구 안에 스리쿠션·포켓볼·스누커가 정립(鼎立)하는 구도를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스포츠토토 종목 땐 안정적 성장

스롱 피아비(캄보디아)의 ‘코리안 드림’을 계기로 동남아 시장이 꿈틀대고 있다.
“캄보디아는 당구를 하지 않고 피아비는 한국에 시집와서 당구를 배웠다. 그런데 피아비의 성공 사례를 통해 베트남에 스리쿠션 붐이 일고 있다. 당구장이 성업하고 젊은 층에서 당구를 즐긴다. PBA에서도 10여 명이 뛰고 있다. 이들이 경기를 하면 빛의 속도로 응원 댓글이 달린다. 유튜브나 SNS를 통해 PBA 대회를 무료로 보여준 게 주효했다. 베트남을 기점으로 다른 동남아 국가와 중국으로 시장을 확대할 계획이다.”
여성 프로들의 약진이 돋보이는데.
“KLPGA의 성공 모델을 보는 것 같아 흥분된다. ‘골프 대디’ 같은 ‘당구 대디’가 나오고 있다. 이미래(27)·장가연(19) 선수는 부친이 직업 선수의 길로 이끌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구는 큰 부상 없이 오래 선수생활을 할 수 있고, 은퇴 후에도 레슨이나 당구장 운영을 할 수 있다’고 권했다고 한다. 그동안 대회당 여자부 총상금이 5000만원이었는데 올 시즌 첫 대회(블루원리조트 챔피언십)에서는 후원업체가 9700만원으로 크게 올렸다. 여자부 상금 액수는 점점 올라갈 것이다.”

PBA는 지난 연말 문체부에서 주는 스포츠산업대상을 받았다. 올 4월에는 김영수 총재가 소강체육대상을 수상해 겹경사를 맞았다.

장재홍 PBA 사무총장은 “대한민국이 중심이 되는 스포츠 콘텐트를 만들어 경제적 파급효과를 일으키고, 프로당구 선수라는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낸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앞으로 당구 월드컵 같은 국가대항전도 만들어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문체부나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관심을 갖고 지원해 주면 큰 힘이 될 것 같다. 가장 절실한 건 스포츠토토(체육진흥투표권) 종목에 들어가 안정적인 운영 자금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희망을 밝혔다.

스포츠시설? 오락장? 당구장 허가 이원화 바람직

예술당구(일명 묘기당구)로 유명한 김종석 전 서울시당구연합회장은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서 ‘VIP2000’이라는 당구장을 운영하고 있다. 오후 6시경 당구장 문을 여는 순간, 살짝 놀랐다. 여섯 개의 당구대에서 당구를 치고 있는 손님들이 너무나 진지하고 조용해 대회를 하는 줄 알았다. 김 전 회장은 “우리는 국제규격 대대(大臺·142×284㎝)에서 스리쿠션만 칩니다. 인터넷으로 예약한 손님이 오면 선착순으로 경기를 매치해 주죠. 하루종일 이용해도 1만2000원만 내면 됩니다. 이런 분위기를 좋아하는 분들이 자주 찾습니다”라고 말했다.

당구장 풍경이 많이 바뀌었다. 10년 전만 해도 거나하게 술을 마신 손님들이 편을 먹고 중대(中臺·122×244㎝)에서 일본식 4구 당구를 쳤다. 돈내기가 자연스러웠고, 진 팀이 10분당 요금이 부과되는 게임비를 냈다. 자욱한 담배연기 속에서 짜장면을 시켜 먹었고, 옆 테이블과 시비가 붙어 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

당구장은 2019년 금연구역으로 지정됐다. 당구장 금연운동에 앞장섰던 김 전 회장은 당구장 주인들로부터 숱한 방해와 협박을 받았다고 한다.

지금도 당구장은 스포츠시설과 오락장 사이 어딘가에 있다. 김 전 회장은 “당구를 스포츠로 인식한다면 어떻게 경기장에서 음식을 시켜먹고 술 취한 상태에서 경기를 할 수 있을까요”라고 말했다. 그는 “당구를 스포츠로, 또는 오락으로 즐기는 분이 각자 취향을 존중받을 수 있도록 체육시설업으로 돼 있는 당구장 허가를 이원화하는 방안도 괜찮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