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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역사상 가장 큰 방사능 오염원은 핵실험 낙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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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명자 카이스트 이사장·전 환경부장관

김명자 카이스트 이사장·전 환경부장관

우주산업이 ‘우주경제’를 창출한다는 시대, ‘평평한 지구학회(Flat Earth Society)’가 활동한다. 2018년 미국 국제학회에서는 “우주에서 찍었다는 지구 사진은 모두 가짜다. 인간은 달에 간 적이 없다. NASA 주도로 수백만 명이 ‘지구가 평평하다’는 진실을 은폐하는 음모에 가담했다. 그 권위에 압도돼 믿음을 강요받지 말라”는 궤변에 600여명이 환호했다. 2019년 가디언은 이들이 증가세라고 보도했다. 왜곡된 정보를 퍼나르는 SNS가 과학 불신을 조장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이념적 양극화로 과학 부정 심화
핵실험 금지 후 해양오염 계측결과
일반인 허용기준보다 크게 낮아
국제기준 존중, 준수 확인이 관건

스페인 코밀라스교황청대학의 설문조사(2023년)에서는 1200명 중 17%가 ‘지구가 둥글다’에 부정적으로 답했다. 그 원인으로는 ‘더닝-크루거 인지편향 이론’ 등이 꼽혔다. 과학지식이 없이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며 오류임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과학 부정론자와 대화하는 법(How to talk to a Science Denier, Lee McIntyre, 2021년)』이란 책도 나왔다. 저자는 구형(球形)지구·기후변화·백신·GMO(유전자변형식품) 등을 부정하는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과학 부정론은 그들의 정체성 자체이며 증거는 아무 소용이 없더라고 말했다.

대중은 과학적 사실의 수용에서 정서적·이데올로기적으로 양극화되고 있다(Pew리서치센터). 일례로 미국의 민주당원은 94%가 기후변화가 심각한 위협이라고 답한 반면, 공화당원은 19%만 그렇게 보았다(2016년). 특히 이데올로기와 결합한 과학 부정은 완강하며 미디어 양극화로 인해 조직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역사적으로 과학기술계와 반대진영의 논쟁은 이성·합리성·효율성 대 감성·직관·불신의 대결이었다. 현재도 과학은 국제기준 등 수치와 관측 결과를 강조하고, 반대진영은 자극적 구호와 시위로 방사능의 잠재적 위험과 재앙을 강조한다. 대중은 차가운 이성의 언어 대신 감성적 호소에 쏠린다. 후쿠시마 오염 처리수 방류를 둘러싼 소모적 논란에서 과학기술 혁신역량 5위(36개국, 2021년 KISTEP)인 우리 사회의 과학 부정과 커뮤니케이션 한계를 절감한다.

과학적 시뮬레이션은 믿기 어렵더라도 ‘역사적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지구상 인공방사능 증가 원인은 원전과 핵잠수함 사고, 방사성 폐기물 투기, 핵 관련 시설의 방출, 핵무기 실험이다. 그런데 1988년 모스크바 국제과학연합회의(ICSU; 현재 ISC)에서는 “역사상 심각한 방사능 오염원은 핵실험 낙진이며, 체르노빌 원전사고 오염은 그에 비해 미미한(minor) 수준”이라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미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원).

핵실험은 1945~2016년 사이 8개국이 2055회 했다(워싱턴포스트). 방사성 오염이 이슈가 되면서 1996년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이 채택되고, 1998년 파키스탄 핵실험을 끝으로 우주공간·대기권·수중·지하 등 모든 공간에서의 핵실험이 금지된다. 이후 2000년 IAEA 해양환경연구실은 해양환경에서의 방사성 핵종의 출처와 인체 영향을 계측했다. 결과는 일반인의 허용기준(1m㏜)보다 훨씬 낮았다. 핵실험 절정기(1955~63년)의 삼중수소 연간 피폭선량은 1963년에 최고치였으나 안전기준 이하였고, 1990년대 초반 정상으로 떨어졌다.

1993년 러시아 정부는 1959~92년 사이 소련이 동해와 북극해에 핵폐기물을 무단투기했다는 충격적인 조서(調書)를 발간했다. 거기에는 원자로 14기와 원자력 잠수함도 있었다. 우리 정부는 해수와 어류 오염을 조사한 결과 방사능 오염이 없다고 발표했다.

인공적 방사성 핵종은 어떤 경로로 발생하든 간에 지구표면의 71%를 차지하는 바다로 흘러들게 된다. 사상 최악의 체르노빌 사고로 발트해와 흑해는 큰 피해를 보았다. 그러나 방사능은 시공간에 따라 해수 기둥의 수평 이동과 수직 이동, 퇴적물의 재부유, 먹이사슬의 연쇄와 이동 등에 의해  희석되므로 “영향이 미미하다”로 관측됐다.

21세기 들어 핵실험을 한 경우는 북한뿐이다. 2006년부터 여섯 차례 했다. 지하핵실험이므로 방사능 유출이 전혀 없다는 북한 주장과는 달리, 2017년 벨기에 과학자들은 “2016년 일본에서 관측된 방사성 제논의 분포가 북한의 지하 핵실험과 관련될 수도 있다”고 해석했다. 북한의 7차 핵실험이 기정사실화된 가운데, BBC는 지표면이나 해상에서 대기권 핵실험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가장 가까이에서 국제적으로 금지되고 가장 오염이 큰 핵실험을 거듭하고 있는 북한에 대해서는 함구하면서, 바다 건너 이웃 나라가 자연재해로 인한 원전 사고의 오염수를 처리해 국제기준에 맞게 방류한다는 계획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이중잣대에 의한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과학을 무시한 대가는 국민 피해와 국력 소모의 사회적 비용이다. K-시리즈로 세계 속의 대한민국 위상을 높이고 있는 시점에서, 국제기구에 대한 과도한 불신 표출은 명분도 실리도 없다. 국제기준을 존중하고 그 준수 여부를 확인하는 것 이상의 규범이 없기 때문이다.

김명자 카이스트 이사장 전 환경부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