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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의 V토크] 영리한 배구 꿈꾸는 페퍼저축은행 트린지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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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여자배구 페퍼저축은행의 신임 사령탑 조 트린지 감독. 공대 출신 데이터 분석가다. 김종호 기자

여자배구 페퍼저축은행의 신임 사령탑 조 트린지 감독. 공대 출신 데이터 분석가다. 김종호 기자

2년 연속 꼴찌에 그친 여자배구 막내팀 페퍼저축은행이 도약을 꿈꾼다. 그 중심엔 데이터 전문가인 조 트린지(36·미국) 신임 감독이 있다. 젊은 지도자 트린지 감독을 12일 경기도 성남 페퍼저축은행 본사에서 만났다.

트린지는 지난달 30일 페퍼저축은행 감독에 선임됐다. 지난 2월 선임된 아헨 킴 감독이 개인 사정을 이유로 한 경기도 치르지 못하고 갑자기 한국을 떠나면서 중책을 떠맡았다. 2021년 창단한 페퍼저축은행은 2년 연속 압도적인 최하위에 머물렀다. 트린지 감독이 페퍼저축은행을 일으켜 세울 수 있을까.

지난 9일 한국에 온 그는 "배구는 5세트 경기다. 두 세트를 지고 나서도 세 세트를 따내서 이길 수 있다. 지난해 V리그 챔피언결정전이 그렇지 않으냐"면서 "새 시즌엔 모든 팀이 '제로'에서 시작한다. 선수들과 함께 차근차근 다시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4월 영입한 V리그 대표 공격수 박정아를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트린지 감독은 "박정아는 누구나 아는 리그 최고의 선수다. 폭발적인 공격력과 기술이 좋다. 감독으로서 내가 할 일은 박정아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리시브 가담? 자세한 전술은 시즌 때 공개하겠다"고 했다.

트린지 감독은 2013년부터 미국 여자대표팀 분석관 겸 코치로 일했다. 미국은 2014년 세계선수권과 2015년 그랑프리에서 우승했다. 2016 리우 올림픽에선 동메달을 땄다. 명장 카치 키랄리 감독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2021년 북중미선수권에선 미국 여자 대표팀 감독을 맡았고, 캐나다 남녀 대표팀 코치도 역임했다. 대학 감독만 지낸 아헨 킴보다 경력은 화려하다.

트린지 감독은 "데이터 분석을 오래 했다. 매사를 꼼꼼하게 살피는 편이다. 그런데 이번엔 가슴이 시키는 대로 했다. 해외 리그 경험은 없지만, (페퍼저축은행의) 감독 제안을 받아들였다. 아내도 '마음 가는 대로 하라'고 조언했다. 구단주의 비전에 대한 설명도 좋았다. 나는 도전을 즐기는 편이다. 지금은 스스로 길을 찾아갈 때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트린지 감독은 '배구 가족'의 일원이다. 그는 "미국 필라델피아 출신이다. 어린 시절 미식축구, 농구, 배구 등 여러 가지 운동을 했는데 캘리포니아에서 살다 필라델피아로 돌아가면서 누나가 배구에 빠졌다. 부모님이 다 배구 코치였다. 나도 체육관에 따라다니면서 볼보이를 하거나 코트를 닦으면서 배구 선수가 됐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배구는 인기 종목이 아니다. 프로 리그도 없다. 배구계에 몸담으려면 해외리그에 진출하거나, 지도자가 되는 길 뿐이다. 트린지 감독은 "고등학교 때도 어린 아이들을 가르쳤다. 선수로 뛸 때도 지도자 입장에서 생각을 많이 했다"고 했다.

트린지 감독은 스티븐스공대 시절 응용 수학을 전공했다. 그는 "부모님이 학업을 늘 강조했다. 대학 시절엔 '배구를 좋아하지만, 직업이 될 수는 없다'는 생각도 했다. '월스트리트에 있는 은행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이렇게 은행 팀을 맡게 됐다"며 웃었다.

그는 한국과의 인연도 소개했다. 트린지 감독은 "외할아버지가 한국전에 참전했다. 그는 미식축구와 야구 유소년팀 코치였다. 당시 미국엔 인종 갈등이 심했는데 할아버지는 백인과 흑인을 아우르며 팀을 이끌었던 훌륭한 지도자였다. 내가 12세 때 돌아가셨지만, 할아버지는 항상 내 마음속에 살아 계신다"고 했다.

트린지 감독은 '스마터 발리'란 사이트를 운영 중이다. 그가 생각하는 '더 영리한 배구'는 무엇일까. 그는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배구다. 그러려면 당연히 선수 개개인이 노력해야 한다. 팀의 평균 수준을 높여야 한다. 사실 배구는 상대보다 6점(2점씩 3세트)만 더 내면 이기는 경기다. 작고, 미세한 차이다. 상대를 잘 관찰해 그 차이를 만드는 게 내 몫"이라고 했다.

그는 선수단과의 커뮤니케이션에도 집중할 생각이다. 다행히도 페퍼의 외국인선수 2명은 모두 영어를 쓴다. 인연도 있다. 아내 에린은 세터 출신으로 미국 대학 대표팀에서 야스민 베다르트를 지도했다. 필리핀-미국 국적인 아시아쿼터 MJ 필립스와도 인연이 있다.

트린지 감독은 "외국인 선수들과 말이 통한다. 내게는 좋은 요소"라며 "모든 선수와 개인적으로 가까워지는 게 목표다. 선수를 로봇처럼 대하면 90~95% 수준밖에 안 된다. 사람 대 사람으로 대하면 100%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조 트린지 감독(왼쪽)과 딸 라일리, 아내 에린. 세 사람은 '김치'를 외치며 크게 웃었다. 김종호 기자

조 트린지 감독(왼쪽)과 딸 라일리, 아내 에린. 세 사람은 '김치'를 외치며 크게 웃었다. 김종호 기자

트린지 감독은 아내, 딸 라일리(4)와 함께 연고지 광주에서 지낼 계획이다. 그는 "아내는 내게 최고의 조력자다. 딸도 어렸을 때부터 여행다니는 걸 좋아해 잘 적응할 것 같다. 특히 한국 애니메이션(캐치! 티니핑)을 좋아해 한국에 오는 걸 좋아했다"고 했다.

조 트린지 감독은 …

◦ 생년월일 : 1987년 6월 23일(미국 윌밍턴)
◦ 신장 : 1m93㎝
◦ 현역 시절 포지션 : 아웃사이드 히터
◦ 가족관계 : 아내 에린, 딸 라일리
◦ 주요 경력
2013~2016년 미국 여자 배구대표팀 전력 분석
2019년 캐나다 여자 대표팀 코치
2020년 미국 여자 프로리그 감독
2021년 북중미선수권 미국 여자 대표팀 감독
2022년 캐나다 남자 대표팀 코치
2023년 페퍼저축은행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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