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갠지스강 마신 기안84에 놀라…'생고생' 여행 예능 대박났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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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국 3시간 전, 옷가지만 단출하게 챙겨서 떠난 인도. 거리를 걷던 중 마사지를 받겠냐는 현지인들의 제안에 '하우머치(얼마)?'라 묻기만 했을 뿐인데 곧바로 길거리 마사지가 시작된다. 전문성을 의심 받는 마사지사들이 우르르 몰려들더니 계단 위에서 어깨와 다리 등을 주무른다. '당했구나' 싶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마사지 값을 달라고 내미는 수많은 손들에게 지폐를 쥐어줄 수 밖에.

'배낭여행의 끝판왕'으로 불리는 인도의 생생한 모습에, 가본 이들은 과거의 여행을 떠올리며 추억에 잠기고 가본 적 없는 이들은 그저 신기해 할 뿐이다. MBC 예능 프로그램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이하 '태계일주')가 선보이는 여행은 이처럼 초(超) 현지밀착형인 동시에 이색적이다.

지난 달부터 시작한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시즌2에서 기안84는 버킷리스트 속 여행지인 인도로 여행을 떠난다. [사진 MBC]

지난 달부터 시작한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시즌2에서 기안84는 버킷리스트 속 여행지인 인도로 여행을 떠난다. [사진 MBC]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시즌2 중 인도 바라나시에서 길거리 마사지를 받고 있는 기안84. [사진 MBC]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시즌2 중 인도 바라나시에서 길거리 마사지를 받고 있는 기안84. [사진 MBC]

코로나19 팬데믹이 사그라지면서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은 줄줄이 해외로 떠났다. 관광 명소를 보여주기도 하고, 출연진들이 음식을 팔거나 미션을 수행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차별화를 시도했다. 그럼에도 뚜렷한 흥행작 없는 여행 예능 홍수 속에서 '태계일주'는 두각을 나타냈다. 지난해 남미로 떠났던 시즌1은 4회에서 5.2%의 시청률(닐슨, 전국)을 기록했다. 시즌1의 성공에 힘입어 지난달 시작한 시즌2는 2회 만에 5.8%를 찍고, 시청률 5%대를 유지하고 있다.

'태계일주'로 연출 데뷔한 김지우 PD는 프로그램의 인기 요인을 묻는 질문에 ‘대리 만족’이라 답했다. 12일 서울 상암동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그는 “흔히 많이들 떠올리는 여행은 좋은 숙소와 모든 게 잘 갖춰진 곳에 가서 편하게 쉬는 것”이라면서 “‘태계일주’ 속 여행은 쉽게 가지 못하는 낯선 곳에서 고생을 많이 한다는 점에서 보는 이가 대리 만족을 느낀다. (출연진들이 여행지에서) 다른 삶을 살아보려는 모습 역시 시청자들이 좋게 봐주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여행은 웹툰 작가이자 방송인 기안84(김희민·39)의 가벼운 호기심으로부터 출발한다. 첫 회에서 그는 "스티브 잡스가 대학생 때 인도를 갔는데 미디어에서 봤던 것과 너무 다르다고 하더라. 사람들이 뭐 하며 사는지 궁금하다”면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여행지로 인도를 꼽았다.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시즌2 포스터. [사진 MBC]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시즌2 포스터. [사진 MBC]

프로그램명처럼 말 그대로 '태어난 김에' 떠나는 여행인 만큼 특별한 계획은 없다. 김 PD는 “여행의 처음과 끝만 정하고, 그 중간을 출연자들이 채우는 것이 프로그램의 대전제”라고 설명했다. 여행이 우연과 우연의 연속으로 채워질 수 있는 이유다. 갠지스 강 인근 화장터에서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던 기안84가 인도 청년들의 제안에 강에 입수해 수영 내기를 하며 교감하고, 함께 배를 타게 된 현지인과 친해져 갑자기 인도의 전통 결혼식에 초대를 받는 식이다. 헬스장, 빨래터 등에서도 인도인들의 평범한 일상을 경험한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판타지를 담은 기존 여행 예능과는 정반대로 ‘태계일주’는 주로 유튜브 여행 크리에이터의 영역이었던 극사실주의 여행 예능을 지향한다”면서 “'진짜 여행'이 대세인 여행 콘텐트의 흐름과 변화를 지상파가 끌어안아 보겠다는 취지가 엿보인다”고 분석했다.

기안84는 맨손으로 카레에 밥을 비벼 먹는 등 인도 문화에 동화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 MBC]

기안84는 맨손으로 카레에 밥을 비벼 먹는 등 인도 문화에 동화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 MBC]

프로그램은 인도 갠지스 강에서 시작해 히말라야에서 끝난다. 연출을 맡은 김지우 PD는 "여행의 처음과 끝만 정하고, 그 중간을 출연자들이 채우는 것이 프로그램의 대전제"라고 밝혔다. [사진 MBC]

프로그램은 인도 갠지스 강에서 시작해 히말라야에서 끝난다. 연출을 맡은 김지우 PD는 "여행의 처음과 끝만 정하고, 그 중간을 출연자들이 채우는 것이 프로그램의 대전제"라고 밝혔다. [사진 MBC]

기안84는 극사실주의 여행 예능에 최적화된 인물이자, 프로그램 성공의 일등 공신이다. 인도 여행 중 현지인들처럼 맨손으로 카레에 밥을 비벼 먹고, 하염 없이 늦어지는 기차를 지저분한 터미널 바닥에 누워서 기다린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기안84의 기행에 가까운 행동들은 기존 여행 프로그램에선 볼 수 없었다”면서 “인위적인 방송용 설정이 아니라 그 자체가 리얼(실제)이라는 점을 시청자들이 인지하고 있어서 더욱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단지 재밌고 자극적인 것을 넘어서 현지에 동화돼 그들의 문화를 존중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어머니의 강'으로 불리며 인도에서 신성시하는 갠지스 강물을 기안84가 마셨을 때, 제작진도 많이 놀랐다고 한다. 김 PD는 “뜨악했다기보다는 ‘저렇게 현지 속으로 깊이 들어가려는 거구나’ 싶었고, 삶과 공간의 특성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감탄에 가까운 놀라움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인도의 단면을 넘어 다양한 계층과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며 "인도의 역사와 전통을 상징하는 바라나시에서는 서민적인 모습이 두드러졌다면, 뉴델리에서는 자산가의 저택을 방문해 인도의 현재와 미래를 담았다"고 했다. “인도 안에 전 세계가 있다고 느껴질 정도로 다양성이 특징인 나라여서 풍부한 모습을 담을 수 있었다”면서다.

시즌2 여행의 종점은 문명과 단절돼 모든 것이 멈춰버린 히말라야 지역의 라다크 마을이다. 당초 8회에서 10회로 확대 편성됐는데, 남은 5회분에서는 UDT(해군 특수부대) 출신 유튜버 덱스(김진영·28)와 여행 유튜버 빠니보틀(박재한·36)과 함께 여행을 이어간다. 올해 안에 촬영에 들어갈 시즌3 역시 “쉽고 자주 갈 수 있는 곳보다는 시청자들이 대리만족할 수 있는 곳으로 찾고 있다”고 김 PD는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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