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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안성' '정재영' 뭐길래…'공신' 의대생 주말마다 또 학원간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9일 오후 4시 서울 강남 의대생 대상 사교육업체에서 의대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채혜선 기자

9일 오후 4시 서울 강남 의대생 대상 사교육업체에서 의대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채혜선 기자

명문대 의대생인 A씨(의대 본과 4학년)는 아직도 '학원'에 다닌다. SKY 의대를 노리던 수험생 때처럼 주말에 열공한다. 그가 듣는 강의는 '전문의 직강(직접 강의)'. A씨는 "인기과인 영상의학과에 가고 싶어서요"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의대에 가서도 상위권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은 계속되는 것이다. A씨가 다니는 곳은 국내 유일 의대생 대상 사교육 업체다. '의대교육연구소’를 표방하는 이곳에 연 1200~1500명에 이르는 의대생이 찾는다고 알려졌다. 전국 의대생을 1만5000여명(예과 2학년~본과 4학년)의 10% 가량이 이곳을 거쳐간다는 얘기다.

주말인 지난 9일 서울 강남구 신사역 인근에 위치한 이 업체 강의실을 찾았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의대생 23명이 정신과 이론 강의를 듣고 있었다. 이날 수업을 들은 한 의대생은 “의대 공부는 양이 너무 많은 데다 공부할 시간도 짧아 제때 따라가기 힘들다. 할 수 없이 찾아왔다”라고 말했다.

20년 의대생 사교육업체 대표 “의대 입학은 시작”

20년째 의대생 대상 사교육업체를 운영해온 권양 대표. 그는 영상의학과 전문의다. 사진 채혜선 기자

20년째 의대생 대상 사교육업체를 운영해온 권양 대표. 그는 영상의학과 전문의다. 사진 채혜선 기자

2003년부터 20년째 운영 중인 이 업체는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대표로 있고, 각 과 전문의 11명이 ‘현장 강의(현강)’ 혹은 1대1 과외를 한다. 현강이 여의치 않은 학생이라면 학원에서 태블릿PC로 강의를 보게 해주거나 서울 지역에 한해 직원이 직접 찾아가 동영상 강의가 내장된 태블릿PC를 틀어주기도 한다. 동영상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11일 오전에도 의대생 4명이 강의실에 나와 태블릿PC를 통해 강의를 듣고 있었다. 수강료는 1년 기준 1400만원으로 부담이 적지 않지만, 올해에만 의대생·학부모 480명이 다녀갔을 정도로 성업 중이라고 한다.

지난 5일 이곳 대표를 맡고 있는 권양 씨를 만나 수능 성적 기준 전국 상위 1% 안에 드는 이들이 의대에 진학한 뒤에도 사교육을 찾는 이유를 물었다.

‘공신(공부의 신)’으로 불리는 의대생이 사교육을 찾는 이유는.
의사 전공에 따라 월급이 세 배 정도 차이가 난다. 내신 기준 서울대 8등급보다 건양대 2등급이 더 대우를 받는 게 현실이다. 의사 계급은 학교가 아닌 전공과로 나뉘기 때문이다. 돈 잘 벌고 편한 과를 가고 싶어하는 최상위권 학생 아니면 유급을 당한 하위권 학생이 주 고객이다.
의대생에게 사교육이 왜 필요한가.
의대 공부가 너무 어렵다. 많은 양을 짧은 시간에 가르치려다 보니 더 어렵게 느껴진다. A의대를 예로 들면 평균 졸업 연수가 7.5년이다. 의대 6년을 따졌을 때 50% 이상은 1번 이상 유급을 당하는 것이다. 유급 3번이면 제적을 당해 의대생들의 심적 부담이 상당하다. 학부모들이 “살려달라”고 울면서 전화가 온다. 
유급에 대한 스트레스가 큰 것 같다.
미국 하버드대학만 해도 못 따라가는 의대생을 위한 교수가 따로 있는데 한국엔 그런 게 없으니 낭인이 적지 않다. 학생 때 공부로 전교·전국권이었던 아이들이 아무리 해도 못 따라가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권 대표는 “학업 스트레스로 정신과에 다니는 의대생이 적지 않다”라고 강조했다. 그간 수없이 많은 의대생을 만난 권 대표는 ‘MZ 의대생’에 대한 특징이 있다고도 설명했다. “사교육으로 만들어진 애들이다 보니 (대입 이후에도) 계속 사교육으로 만들어줘야 합니다.”

“만들어진 의대생”이란 어떤 뜻인가.
한국에선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잘하면 부모나 주변에서 의대에 보내겠다고 한다. 이렇게 크다 보니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 공부 내용이 주입된 ‘공부 기계’처럼 큰다. 
의대 선호 현상은 날로 심해지지 않나.
의대생도 어찌 보면 피해자다. 사회가 의대 입학이 끝인 것처럼 주입하지만, 의대 입학은 시작이다. 그걸 모르니 적응을 너무 힘들어한다. 학생들에게 단 한 번의 실수나 실패도 용납하지 않는게 문제다. 

권 대표는 “손흥민 선수가 의대 입학을 준비한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실패한 사회인가. 의사가 되고 싶은 사람이 의대에 가는게 아니라, 공부 잘하는 아이들에게 의대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어서 가는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내과 안 가려고 내과 수업 들어…아이러니”

위 그래픽은 기사 내용과 무관.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위 그래픽은 기사 내용과 무관.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이곳 수강생 6명은 중앙일보와 서면 인터뷰를 통해 모두 의대 공부에 대한 어려움을 털어놨다. 강남 대치동 출신 한 의대생은 “시험이 끝나면 내용을 잊어버리게 되는데 이게 맞는지 막막하고 답답할 때가 많다”라고 털어놨다. 서울권 의대생 B씨는 “교수님께 청강 신청은 여러모로 어려워 학원에 다닐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권 대표는 “의대 입시는 어렵고 공부는 벅차니 학생들의 보상 심리가 더 강해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돈 안되는 필수의료는 외면받고 이른바 ‘피안성(피부과·안과·성형외과)’이나 ‘정재영(정신건강의학과·재활의학과·영상의학과)’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자신을 ‘대치 키즈’라고 소개한 한 의대생은 “졸업 후 돈을 빨리 벌기 위해 미용을 하는 GP(일반의)를 꿈꾸고 있다”라고 말했다. 전문의를 따지 않고 국가고시만 합격한 뒤 바로 미용 시술 시장에 뛰어들겠단 얘기다. “직접 환자를 만나지 않는 게 장점”이라며 영상의학과를 지망하는 명문 의대생도 있었다. 이에 대해 권 대표는 “의사 국가고시 출제 비중은 내과가 가장 높은데, 학생들이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전공을 피하려다보니 내과 수업의 인기가 가장 좋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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