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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 하나에 모든 감정이 오가”…연주자 5인의 ‘베스트 슈베르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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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서울 동숭동의 더하우스콘서트가 이달 1일 ‘헤이, 슈베르트’를 첫 공연했다. 김재원이 위 필하모닉과 교향곡 5·8번을 지휘했다. 모든 관객은 마룻바닥에 앉아 음악을 듣는다. [사진 더하우스콘서트]

서울 동숭동의 더하우스콘서트가 이달 1일 ‘헤이, 슈베르트’를 첫 공연했다. 김재원이 위 필하모닉과 교향곡 5·8번을 지휘했다. 모든 관객은 마룻바닥에 앉아 음악을 듣는다. [사진 더하우스콘서트]

프란츠 슈베르트(1797~1828)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제대로 아는 사람도 적다. ‘뉴요커’의 음악평론가 알렉스 로스는 사람들이 떠올리는 슈베르트 이미지가 제각각인 점을 지적했다. “역사적 기록이 빈약한 탓이다. (중략) 우리는 그의 개인적 삶과 내면세계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다.” 모차르트는 어떤 일이든 편지로 썼고, 청력을 잃은 베토벤은 필담을 남겼다. 하지만 31세에 세상을 떠난 슈베르트는 별다른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음악만 남았다.

‘더 하우스 콘서트’가 이달 내내 슈베르트를 조명한다. 서울 동숭동 예술가의 집에서 31일까지 매일 열리는 슈베르트 축제 ‘헤이, 슈베르트’다. 슈베르트를 세세히 알긴 힘들어도 그의 곡을 연주하는 이들은 그를 가깝게 느낀다. 그래서 이번 축제의 연주자 5인에게 물었다. ‘슈베르트의 어느 작품을 들어야 하나’ ‘그 음악의 어떤 부분이 백미인가’.

10일 피아니스트 김송현(앞쪽)·신수정이 환상곡을 연주하는 장면. 슈베르트 페스티벌은 31일까지 매일 계속된다. [사진 더하우스콘서트]

10일 피아니스트 김송현(앞쪽)·신수정이 환상곡을 연주하는 장면. 슈베르트 페스티벌은 31일까지 매일 계속된다. [사진 더하우스콘서트]

피아니스트 신수정(서울대 명예교수)은 두 피아니스트가 한 피아노를 연주하는 작품을 연주했다. 네 손을 위한 환상곡(작품번호 940)이다. “음악에서 느낄 거의 모든 감정이 들어있다. 특히 비극적이던 음악이 밝게 바뀌는 부분을 추천한다. 그 색깔 변화가 아름답다.” 4악장이 쉼 없이 이어지는 동안 조성을 다채롭게 바꿔 온도도 변화시킨다. 신수정은 자신이 “감성이 넘치는 연주자”라 칭한 김송현(21)과 10일 이 곡을 연주했다.

피아니스트 신수정 - 네 손을 위한 환상곡

피아니스트 신수정 - 네 손을 위한 환상곡

슈베르트의 피아노 트리오 2번(작품번호 929) 1악장은 안정적이고 단호한 주제로 시작한다. 2악장은 영화 ‘해피엔드’에도 나와 유명한 서정적 주제다.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은 “마지막 4악장에서 1·2악장이 합쳐지는 순간이 좋다”고 했다. 슈베르트는 4악장에서 2악장의 유명한 주제를 다시 등장시킨다. “바로 이 부분에서 피아노는 1악장의 반주 음형을, 첼로는 2악장의 주제를 연주한다. 우리는 ‘어? 이거 어디에선가 들어봤는데’ 하며 무의식중에 더 깊게 빠지게 된다.” 한수진은 연주 시간 40분의 긴 이 곡을 피아니스트 문지영, 첼리스트 강승민과 함께 16일 연주한다.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 - 피아노 트리오 2번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 - 피아노 트리오 2번

오래전 마을을 떠난 여인의 집 앞에 한 남성이 서 있다. 사랑을 잃은 그는 고통에 압도됐다. 하인리히 하이네의 시 ‘도플갱어’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 남성이 바로 화자라는 것은 시 중반에 드러난다. 슈베르트는 여기에 아주 단조로운 노래를 붙였다. 피아노 반주는 화음의 골격만 겨우 연주하고, 성악가는 낭송에 가깝게 읊조린다.

바리톤 박흥우 - 백조의 노래 중 도플갱어

바리톤 박흥우 - 백조의 노래 중 도플갱어

바리톤 박흥우는 감정이 상승하는 부분을 ‘슈베르트 음악 최고의 순간’ 중 하나로 꼽았다. 남성의 정체가 자신임을 고백하는 순간이다. “슬픔을 감추며 에너지를 쌓아 올리다 어느 순간 쏟아내야 한다. 그 부분에서 슈베르트의 감정이 굉장히 가깝게 온다.” 박흥우는 ‘도플갱어’가 들어있는 가곡집 ‘백조의 노래’(작품번호 957)를 18일 무대에 올린다. 또 일부 가곡을 선별한 무대를 25일 선보인다.

첼리스트 심준호 -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첼리스트 심준호 -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첼리스트 심준호는 “슈베르트 아르페지오네 소나타(작품번호 821)가 너무 낭만적으로 연주되곤 한다”고 꼬집었다. 아름다운 선율이 있는 이 곡은 슈베르트 작품 중에서도 인기곡이다. 슈베르트 시대에 나왔던 개량 악기 아르페지오네를 위한 작품인데, 현대에는 주로 첼로로 연주된다. 그는 “실제로 아르페지오네로 연주한 것을 들어보면 감정이 절제된 음악”이라고 했다.

피아니스트 이경숙 -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 21번

피아니스트 이경숙 -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 21번

심준호는 특히 3악장이 시작하는 부분을 이 곡의 매력 포인트로 꼽았다. 그는 이 부분을 “오스트리아 빈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춤곡”이라고 소개했다. 캐나다 첼리스트 장 기엔케라스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녹음을 최고로 꼽은 심준호는 27일 피아니스트 추원주와 함께 이 곡을 연주한다.

“어둠에서 겨우 빠져나왔는데 다시 붙잡혀 들어간다.” 피아니스트 이경숙은 슈베르트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 21번(작품번호 960)의 4악장을 이렇게 소개했다. 그는 4악장에서 조성이 바뀌면서 비극적 화음들이 등장하는 부분을 짚어냈다. “재생하던 에너지가 다시 어두움 쪽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 곡은 슈베르트가 죽기 두 달 전에 완성했다.

‘헤이, 슈베르트’는 31일 낮 12시부터 피아니스트 21명이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21곡을 차례로 연주하며 막을 내린다. 이경숙은 그 마지막 순서를 맡았다. 공연은 유튜브로 생중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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