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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호근의 세사필담

해류는 몸을 뒤척이며 흐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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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한림대 도헌학술원 원장 석좌교수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한림대 도헌학술원 원장 석좌교수

이순(耳順)에 도달한 함운경씨는 군산 횟집 주인이 됐다. 1985년 서울 미문화원 점거농성 사건 주인공이자 전 삼민투위원장, 그가 ‘핵폐수’ 충격을 보다 못해 마이크를 잡았다. 오염수 괴담은 비과학적, 반일 감정을 지피는 군불이라고. 광장시위에 나선 야당 의원들은 함씨의 운동권 동료와 후배다. 지난 30년간 사노맹과 ‘경기 동부’처럼 체질과 성향이 많이 바뀌었다. 삼민(三民), 즉 민족·민중·민주에서 분파된 후예들이 치켜든 ‘핵폐수’ ‘깡통보고서’ 피켓이 바닷고기들을 온통 방사능 오염수로 회칠했는데 어민들은 죽을 지경, 국민은 불안하다. 괴담과 과학이 충돌하고, 과학도 분분한 현실에서 세슘 우럭, 방사능 참돔, 트리튬 방어가 뛰어노니 헷갈린다.

운동권 후예들의 ‘죽창가2’ 합창
해류의 일생을 외면한 정치 선동
원자로 밀집한 한반도 주변 바다
후쿠시마식 대응 실험 지켜봐야

다핵종제거설비(ALPS)로 62개 핵물질을 완전히 걸렀다는 일본 정부의 해명에도 항의가 끊이지 않는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일본 맞춤형, 매수됐다고 했다. 가장 시끄러운 나라가 한국이다. 야당이 호기를 잡았다. ‘최인접 국가 한국이 (세계를 대신해) 면죄부를 주고 들러리 서는 것’이라 했다. 정의기억연대, 녹색연합 등 190여 단체가 규탄 대열에 가세했다. 올여름엔 ‘죽창가2’가 더위만큼이나 민심을 강타할 예정이다.

ALPS로 걸러지지 않는 삼중수소가 문제다. 과학자가 나설 대목이다.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모(某) 교수의 연구 결과다(이름은 밝히지 않겠다). 2011년 삼중수소 방류량은 3.5P㏃에 달했다고 했다. 일본 정부는 이를 매년 150분의 1로 줄여(22T㏃) 방류한다는데, 삼중수소 30년 총방류량은 2011년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수치라고 했다. 인체에 해가 없다 해도 여전히 불안하다. 타당한 불안인지를 따지려면 삼중수소를 머금은 해류(海流)를 따라가 봐야 한다.

해류는 바다의 강(江)이다. 후쿠시마 오염수가 일본 남해안을 휙 돌아 한반도로 직행하지 않는다. 오염수는 우선 구로시오(黑潮) 해류를 타고 태평양으로 흘러나간다. 그것은 곧 북태평양 해류를 만나 섞여 흐르다가 캘리포니아만 부근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튼다. 적도 에 이르면 북적도 해류를 만나 몸을 뒤척이다 서쪽으로 돌아선다. 그리고 머나먼 태평양을 가로질러 반환점인 필리핀해에 도착한다. 구로시오 해류의 일회전이다. 한국이 방류수의 최인접 국가인가? 아니다. 일단은 캘리포니아, 다음이 태평양도서국가다.

일회전에 약 10년이 걸린단다 (4~5년 설도 있다). 한국은? 구로시오 해류가 다시 일본 동해안을 타고 북상하면서 지류인 대마 난류가 발생하고, 한반도로 북상하는 황해 난류와 동한 난류가 분기된다(국립해양조사원, 해류모식도). 6개월 걸린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한국에 올라온 황해 난류와 동한 난류는 후쿠시마를 흐르는 구로시오 해류와 같은 것인가? 체질과 성분이 완연히 다르다. 구로시오 해류도 태평양을 회전할 때 농도와 수압 차이로 물갈이를 한다. 난류 확산 작용으로 본류 중 일부를 내보내고 외부 해수를 유입해 흐른다. 10년간(혹은 5년간) 몸을 뒤척이는 것이다. 일회전을 마친 구로시오 해류는 태평양 본류와도 다르고, 지류인 대마 난류와는 성분과 색깔이 다르다. 구로시오 해류는 흑조(黑潮), 대마 난류는 코발트 빛이다. 그러면 삼중수소는 어떻게 되었을까?

일본의 계획대로라면 하루 삼중수소 방출량은 태평양 총(總)수량에 비해 이슬비 한 방울, 일 년 생수병 하나 정도? 삼중수소를 품은 바다의 강은 해풍과 해류를 만나 수천억 번 몸을 뒤척이며 확산과 혼합 여정을 계속한다. 2011년 일본이 속수무책 흘려보낸 오염수가 이미 도착했을 터인데, 대만 부근에서 측정된 세슘 농도는 세제곱미터 당 0.01㏃였다고 서울대 모 교수가 확인해줬다. 영일만과 순천만, 명량과 노량 어디든 세슘은 세제곱미터 당 평균 1~2㏃ 정도 측정된다고 했다. 이 더위에 난리를 칠 일도, 수족관의 해수를 떠먹을 일도 아니다. 한국보다 더 안달해야 할 당사자는 일단 미국 캘리포니아 주민들, 그런데 조용하다. 다음은 태평양에 원양어선을 보내는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 이들도 조용하다. 필리핀과 태평양도서국가들이 우려하고는 있으나 한국처럼 소란스럽지는 않다.

그래도 세슘을 삼킨 재빠른 물고기들이 어시장에 팔려나가고 그놈을 맛있게 먹어 치운 재수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다. 세슘의 반감기는 30년, 인체에서 분열을 일으키면 낭패다. IAEA와 각국이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는 이유다. 우리도 별도의 감시 기제를 작동한다. 미세먼지 예보처럼 측정치를 매일 알리면 좋을 것이다. 후쿠시마는 원자로 120여 기가 밀집한 한반도 주변 미래의 비상사태에 대처하는 방안 중 하나의 실험이다. 북한 풍계리 오염수는 어떻게 됐을까. 이렇게 말하면 시위에 찬물을 끼얹는다. ‘태평양을 지키자!’는 체감효과 제로, ‘그래도 삼중수소!’라고 하면 한반도 연안 물고기들의 명예훼손 고소감이다. 운동권 후예들이 성향을 바꿨듯이, 해류도 몸을 뒤척이며 체질을 바꾼다. 다만 조용히 흐를 뿐이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한림대 도헌학술원 원장·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