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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이 월드컵 첫골 터뜨린 그곳…25년 후 제자 슛돌이 홈구장 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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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파리생제르맹에 입단한 이강인이 영문 이름과 계약 마지막 시즌이 새겨진 유니폼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사진 파리생제르맹 홈페이지

파리생제르맹에 입단한 이강인이 영문 이름과 계약 마지막 시즌이 새겨진 유니폼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사진 파리생제르맹 홈페이지

마침내 ‘옷피셜(옷+오피셜)’이 떴다. 프랑스 명문 파리생제르맹(PSG) 유니폼을 입고 찍은 사진 속 이강인(22)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았다.

PSG는 9일(한국시간) “이강인과 2028년까지 (5년) 계약을 맺었다. 등번호 19번을 단 그는 구단 최초의 한국인 선수”라고 발표했다. 지난 7일 서울에서 축구 선수 권창훈 결혼식에 참석한 이강인은 이튿날 프랑스 파리로 떠났다. PSG가 현지 시간 10일부터 프리시즌 일정을 시작하는 점을 감안해 출국을 앞당겼다.

이강인이 9일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한 모습이 포착됐다. PSG는 소셜 미디어에 태극기 디자인, 한글로 ‘여기는 파리’라고 적힌 휴대폰 사진 등을 올려 발표를 예고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난달 파리에서 일찌감치 메디컬 테스트를 마친 이강인의 공식 입단 발표가 나왔다. PSG는 홈페이지와 소셜 미디어를 이강인 사진으로 도배했다. “한국에서 6세에 축구 신동으로 이름을 알렸고, 2019년 20세 월드컵에서 엘링 홀란(맨체스터시티)를 제치고 골든 볼을 받은 선수”라는 설명을 곁들였다.

이강인 사진으로 도배된 파리생제르맹 인스타그램. 사진 파리생제르맹 인스타그램 캡처

이강인 사진으로 도배된 파리생제르맹 인스타그램. 사진 파리생제르맹 인스타그램 캡처

이강인의 축구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다. 6세이던 지난 2007년  ‘날아라 슛돌이’에 출연했고, 2011년 10세에 스페인 발렌시아 유스 팀에 입단했다. 태권도 사범인 아버지를 비롯한 온 가족이 스페인으로 함께 건너가 직업까지 바꾸며 아들을 뒷바라지했다. 이강인은 2019년 국제축구연맹 20세 이하 월드컵 준우승을 이끌며 ‘골든볼(MVP)’을 수상했다. 그해 스페인 라 리가 데뷔 골도 터트렸다.

하지만 소속팀 주전 도약 과정은 여전히 험난했다. 발렌시아는 지난 2021년 선수단 내 비유럽(Non-EU) 쿼터(최대 3명)을 초과하자, 이강인을 방출하다시피 FA(자유계약선수)로 내보냈다. 마요르카(스페인) 유니폼으로 갈아 입은 이강인은 2022~23시즌 6골-6어시스트를 올렸고, 지난해 카타르월드컵에서 2골에 관여해 전세계에 재능을 알렸다.

당초 이강인을 먼저 주목한 팀은 스페인 강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였다. 1500만 유로에 선수 한 명을 포함한 조건으로 마요르카와 협상을 벌였다. 하지만 이강인이 지난 4월 헤타페전에서 60m 드리블 골을 포함해 2골을 몰아친 이후 분위기가 달라졌다. PSG가 루이스 캄포스 단장 주도로 이적료 2200만 유로(310억원)를 제시하며 영입 전쟁에 뛰어들었다. 토트넘 손흥민(400억원)에 이어 역대 한국 선수 2번째로 높은 액수다.

이강인과 작별하며 감사를 표한 마요르카. 사진 마요르카 인스타그램

이강인과 작별하며 감사를 표한 마요르카. 사진 마요르카 인스타그램

앞서 이강인은 2021년 마요르카에 입단하며 계약서에 ‘추후 타 팀으로 이적할 경우 이적료의 20%를 선수에게 지급한다’는 조항을 포함 시켰다. 덕분에 기존의 10배인 400만 유로(57억원)의 연봉과 함께 이적료 분담금 62억원을 보너스로 수령하게 됐다. 이적료 248억원을 챙긴 마요르카는 이날 한국어로 ‘강인 선수, 고마워요. 건승을 빌어요’라는 글을 남겼다.

‘파리지앵(파리 시민)’으로 거듭난 이강인은 “세계적인 빅 클럽에서 새로운 모험을 빨리 시작하고 싶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75초짜리 문답 인터뷰에서는 PSG 레전드로 호나우지뉴(브라질) 첫 손에 꼽았다. ‘봉쥬르(안녕)’를 제외하고 아는 프랑스 단어로는 ‘메르시(고마워)’를 언급했다.

KBS ‘날아라 슛돌이’ 출연 당시 고 유상철 감독 등에 업힌 이강인. [KBS 캡처]

KBS ‘날아라 슛돌이’ 출연 당시 고 유상철 감독 등에 업힌 이강인. [KBS 캡처]

이강인이 뛸 새 홈구장 파르크 데 프랭스는 ‘날아라 슛돌이’ 시절 스승인 고(故) 유상철 감독이 1998년 프랑스월드컵 벨기에전에서 골을 넣은 역사적 장소다. 2021년 1월 유튜브에서 유 전 감독은 “건강하게 일주일을 보낼 수 있다면 강인이 경기를 현장에서 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에 이강인은 “다시 제 감독님 해주셔야죠”라고 답했다. 안타깝게도 유 전 감독은 췌장암 투병 끝에 2021년 6월 별세했다. 당시 이강인은 “내가 더 좋은 선수가 되는 게 감독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이라 생각한다. 계신 곳에서 꼭 지켜봐 달라”는 글을 남겼다.

파리생제르맹에 입단한 이강인. 사진 파리생제르맹 홈페이지

파리생제르맹에 입단한 이강인. 사진 파리생제르맹 홈페이지

꼬마였던 이강인은 이날 PSG 후원사인 명품 디올 정장을 입고 입단 사진을 찍었다. 국내 팬들은 “유 감독이 하늘에서 잘 자란 슛돌이를 지켜볼 것”이라고 했다. 팬들은 “이강인이 어린 시절을 거쳐 PSG에 입단하기까지의 성장 과정은 일거수일투족을 생중계로 지켜본 것만큼 생생하다”면서“영화 '트루먼 쇼'의 실사판이나 마찬가지”라며 열광하고 있다.

UEFA 클럽 랭킹 6위 신흥 강호…음바페·네이마르가 돌격대장

네이마르(左), 음바페(右)

네이마르(左), 음바페(右)

이강인의 새 소속팀 파리생제르맹(Paris-Saint Germain)의 약어는 ‘PSG’다. 흔히 영어식으로 ‘피 에스 지’라 부르지만 프랑스어 발음 규정에 따르면 ‘뻬 에스 졔’로 읽는 게 맞다.

PSG가 속한 프랑스 리그1은 최근 유럽 5대 리그에서 밀려났지만, 유럽축구연맹(UEFA) 클럽 랭킹 6위에 올라있는 신흥 강호다. 2011년 카타르 국부 펀드인 스포츠 인베스트먼트(QSI)가 인수한 뒤 즐라틴 이브라히모비치, 데이비드 베컴 등 스타들을 대거 영입했다. 2017년엔 각각 이적료 3100억원과 2550억원을 투자해 네이마르와 킬리안 음바페를 데려왔다. 2021년에 리오넬 메시를 영입해 정점을 찍었다.

‘오일 머니’를 쏟아부은 뒤 리그를 9차례 제패했지만, 정작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에는 번번이 실패했다. 수퍼스타에 의존하다 보니 감독이 끌려 다니기 바빴다. 아랍에미리트 자본이 투입된 맨체스터 시티(잉글랜드)가 지난 시즌 트레블(3관왕)을 달성했는데, PSG도 새 시즌을 앞두고 구단 운영 기조를 바꿨다. 메시를 미국 인터 마이애미로 떠나 보내고 이강인과 밀란 슈크리니아르, 마누엘 우가르테 등 새 얼굴을 데려왔다. 가성비와 밸런스를 고려한 팀 개편이다.

바르셀로나와 스페인대표팀을 이끈 루이스 엔리케(스페인) 신임 감독과의 궁합도 나쁘지 않을 전망이다. 스페인어가 유창한 이강인은 엔리케와 프리 토킹이 가능하다. 4-3-3 포메이션을 쓰는 엔리케는 네임 밸류만 따지기 보다는 전술에 부합한 선수를 중용한다.

기존 스리톱 메시-네이마르-음바페가 ‘MNM 트리오’라 불렸는데, 이강인이 메시 공백을 메운다면 ‘LNM 트리오’를 이룰 수도 있다. 입단 동기인 레알 마드리드 마르코 아센시오가 경쟁 선수다. 이강인은 양쪽 윙어 뿐만 아니라 공격형 미드필더도 소화가 가능하다.

기존 간판 스타 음바페와 네이마르가 각각 레알 마드리드와 사우디팀 이적설에 휘말린 건 변수다. PSG 추가 합류설이 나오는 베르나르두 실바(맨시티)와 주앙 펠릭스(AT 마드리드)가 가세할 땐 이강인의 포지션 경쟁이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이강인의 PSG 데뷔전은 오는 25일 일본에서 열리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소속팀 알 나스르(사우디)와의 프리 시즌 매치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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