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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이 있는 집·순정복서…한국소설, 화면을 휘어잡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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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김태희·임지연 주연의 드라마 ‘마당이 있는 집’은 2018년 출간된 김진영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사진 지니TV]

김태희·임지연 주연의 드라마 ‘마당이 있는 집’은 2018년 출간된 김진영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사진 지니TV]

채널 ENA에서 방영 중인 지니TV 오리지널 8부작 드라마 ‘마당이 있는 집’이 11일 종영을 앞두고 6회 방송에서 자체 최고 시청률(유료플랫폼 수도권 가구 3.1%)을 경신했다. 넷플릭스에서도 비영어권 TV 부문 2주 연속 톱10에 올랐다. 결말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면서 동명의 원작 소설 판매도 역주행했다. 2018년 출간된 김진영 작가의 『마당이 있는 집』은 최근 교보문고의 7월 1주차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한국소설 부문 6위까지 진입했다.

『마당이 있는 집』.

『마당이 있는 집』.

드라마 ‘마당이 있는 집’은 제작 단계부터 원작의 힘이 구심점이 된 작품이다. 원작자인 김진영 작가가 한예종 영화과 출신에 영화감독으로 데뷔(‘미혹’ 연출)한 점도 영상화에 적합한 소설이 나온 요인으로 꼽힌다.

『행복배틀』. [사진 고즈넉이엔티]

『행복배틀』. [사진 고즈넉이엔티]

『순정복서』. [사진 교보문고]

『순정복서』. [사진 교보문고]

문학작품의 영화·드라마화는 이뿐이 아니다. ENA 수목 드라마 ‘행복배틀’은 치열하게 행복을 전시하던 엄마들 사이에 의문사가 발생한다는 내용의 동명 소설이 토대. 다음 달 KBS2가 방영할 월화 드라마 ‘순정복서’는 사라진 천재 권투선수의 승부조작 탈출기를 그린 소설이 바탕이다.

영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의 한 장면. 김애란 소설집 『바깥은 여름』수록 단편이 원작이다. [사진 디스테이션]

영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의 한 장면. 김애란 소설집 『바깥은 여름』수록 단편이 원작이다. [사진 디스테이션]

극장가에서는 최은영 작가의 단편소설을 옮긴 하이틴 퀴어 로맨스 애니메이션 ‘그 여름’(6월 7일 개봉)에 이어 지난 5일 김애란 작가의 단편소설을 영화로 만든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감독 김희정)가 개봉했다. 김애란의 단편은 중학생 제자를 구하려다 남편이 죽은 주인공이 외국에 사는 사촌 언니의 빈집을 잠시 봐주며 상실감을 이겨내는 내용이다.

『바깥은 여름』. [사진 문학동네]

『바깥은 여름』. [사진 문학동네]

출판업계에 따르면 최근 2~3년간 순문학·에세이의 2차 판권 문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웹툰·웹소설 화제작이 웬만큼 판권이 팔린 데다 자기복제적인 경향을 띠면서, 출판 문학으로 눈을 돌린 영화·드라마 제작사가 늘어나면서다.

과거에도 소설의 영상화는 있었다. 『태백산맥』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도가니』 등 묵직한 목소리를 담은 작품들이 주목받았다. 요즘에는 젊은 세대의 감성을 사로잡은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이 재조명된다. 『7년의 밤』의 정유정 등 과거 장르 소설이 소수 유명 작가들의 전유물이었다면 이제는 ‘추미스(추리·미스터리·스릴러)’를 중심으로 장르문학 공모전이 다채로워지고, 출판과 영상 기획을 겸하는 안전가옥·고즈넉이엔티 등 장르문학 브랜드의 등장으로 신인 작가가 대거 유입되는 현상도 보인다. OTT의 등장으로 신선한 IP를 찾는 제작사들과, 책만 팔아선 생존이 어려워진 출판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측면도 있다. 출판사·대형서점도 사내에 IP 전담인력을 두는 추세다.

한석규 주연 드라마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는 강창래 작가가 암 투병 중인 아내를 위해 요리한 기록을 담은 에세이집이 토대다. [사진 왓챠]

한석규 주연 드라마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는 강창래 작가가 암 투병 중인 아내를 위해 요리한 기록을 담은 에세이집이 토대다. [사진 왓챠]

문학동네 이현자 편집국장은 “작가들도 영상화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계획하는 경우가 늘어났다”고 말했다.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의 원작자 정세랑 작가는 시나리오를 직접 쓰며 장르(출판·영상) 구분 없이 활동한다. 또 “한국 소설도 이제는 SF·판타지 등 장르가 다양해진 데다 해외 원작보다 판권 절차가 덜 복잡하고 한국인의 정서에 더 맞는 부분이 있어 선호한다”고 했다. 한석규 주연의 왓챠 오리지널 드라마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는 에세이가 원작이다. 최근 영상화 판권이 팔린 이슬아 작가의 소설 『가녀장의 시대』는 작가의 실제 생활에 기반한 내용이다.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사진 문학동네]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사진 문학동네]

캐릭터·세계관 등 매력적인 요소만 따로 떼어내 구입하는 사례도 생겨난다. IP 판권 전문가 정길정씨는 “단편소설 속 캐릭터 하나만 구매해 OTT 시리즈로 개발 중인 사례도 있고, 기존 스타일을 바꿔 가명으로 작품을 발표하는 기성 작가도 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문화평론가 강유정(강남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독특한 여성 서사의 JTBC 드라마 ‘너를 닮은 사람’(2021)이나 동성애 소재 ‘그 여름’처럼 기존 영화나 드라마에서 내놓고 이야기하기 어려웠던 소재를 문학 작품이 먼저 다룬 것도 제작사·창작자들이 주목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특히 SF 장르는 5, 6년 전부터 인기 작가 작품들의 판권 구매 경쟁이 치열하다. 『천개의 파랑』의 천선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김초엽 작가는 발표만 하면 단편까지 판권이 팔려나간다고 알려졌다. 김초엽의 단편 ‘스펙트럼’은 ‘벌새’로 주목받은 김보라 감독이  SF 대작영화로 준비 중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 ‘D.P’ 등을 만든 SLL 산하 클라이맥스 스튜디오가 제작한다.

IP 확보 경쟁이 과열되면서 신인작가들이 부당 계약에 내몰릴 가능성도 제기된다. 출판사가 출판 계약을 하며 작가들에게 영상화 판권 수익 배분에서 출판사 몫이 유리하도록 조건을 걸어도 신인작가의 경우 거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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