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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병원에 출생신고 맡기지 말고, 국가가 직접 등록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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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7호 04면

출생통보제 도입, 남은 과제

생후 6일된 딸이 숨지자 쓰레기봉투에 담아 유기한 친모가 경찰에 붙잡혔다. 광주경찰청은 아동학대치사·사체유기 혐의로 30대 여성을 긴급체포해 조사 중이라고 7일 밝혔다. 이 여성은 2018년 4월 광주 광산구 자택에 신생아만 놔둔 채 3시간 가량 외출했다가 딸이 숨져 있자 다음날 새벽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렸다고 진술했다. 이번 사건은 경찰이 출산 기록만 있고 출생신고는 되지 않은 아동 관련 자료를 전달받아 조사하던 중 5년 만에야 세상에 알려졌다. 앞서 경찰은 4년 전 아기를 출산한 직후 수일간 방치해 숨지게 한 것으로 알려졌던 ‘대전 영아 사망’ 사건의 피의자인 20대 여성에게 살인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당초 경찰은 이 여성에게 아동학대치사죄를 적용했지만 피의자 진술 확보로 살인죄를 적용했다.

정부는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간 출산 기록만 있고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일명 ‘그림자 아이’ 2000여 명의 소재와 안전을 전수조사하고 있다. 수원에서 발생한 ‘냉장고 영아 시신 보관 사건’을 비롯해 아기를 방치해 숨지게 한 뒤 시신을 유기한 부모들이 잇따라 검거됐다. 부산에서는 생후 8일 된 딸을 암매장한 40대 친모가 경찰에 입건됐다. 경남 거제에서도 생후 5일 된 영아를 야산에 묻어 유기한 부부가 경찰에 구속됐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접수된 867건 가운데 780건을 수사 중이고, 지금까지 27명의 아동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림자 아이’ 2000여 명 전수조사

관련 사건이 급속도로 불어나자 정부가 범부처 차원의 대응을 강화하고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행정안전부·여성가족부·법무부·교육부·경찰청 등 관계부처와 ‘출생 미등록 아동 보호체계 개선추진단’을 발족하고 1차 회의를 개최했다고 5일 밝혔다. 이 회의에서 관계 부처는 현재 진행 중인 임시신생아번호 아동 전수조사 외에 오는 10월까지 출생미등록 아동 신고 기간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한편 정부는 임산부의 익명 출산을 지원하는 보호출산제 입법, 미혼모 지원을 강화할 방침이다.

지난 30일 국회를 통과한 출생통보제 도입 준비도 급물살을 탔다. 출생통보제는 의료기관을 비롯한 제3자에 아동의 출생 사실을 국가에 통보할 의무를 부여하는 제도다. 나라마다 차이가 있지만 태어난 아동의 출생 사실을 공적으로 즉시 등록하기 위해서 실시한다. 미국·캐나다·호주 등은 의료기관에서 출생 후 48시간에서 10일 내로 정부에 통보하도록 했다. 이중 부모와 동시에 출생신고 의무를 진 나라도 있지만 부모의 출생신고 기간은 최대 6개월 내로 상대적으로 길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미국은 주마다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출생병원 의사 또는 대표자가 출생증명서를 정부기관에 등록해야 한다. 이를 사회복지사 등의 확인을 거쳐 국가 시스템에 등록한다. 영국은 출생 즉시 병원 등록시스템을 통해 정부 전산망에 등록하고, 담당관이 확인 후 의료보장번호를 발급한다. 캐나다와 독일은 부모와 병원(의사) 모두에게 출생신고 의무를 부여한다. 태국은 2008년 법 개정을 통해 미등록 이주아동을 포함한 모든 아동의 출생등록을 법적으로 보장한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출생신고는 지금껏 부모의 몫이었다. 부모가 출생 후 한달 내 출생신고를 하지 않더라도 과태료 5만원 외엔 별다른 처벌 규정이 없어 고의로 누락할 수 있는 가능성도 컸다.

우리나라에서 시행되는 출생통보제는 의료기관장이 해당 정보를 아동 출생일로부터 14일 안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통보하도록 했다. 심평원은 이를 산모 주소지가 있는 지자체장(시·읍·면장)에게 곧바로 통보한다. 지자체장은 아동이 출생 후 1개월 안에 출생신고 됐는지를 확인하고, 미신고 상태라면 신고의무자(부모)에게 7일 내 신고하라고 통지해야 한다. 이 기간에 출생신고가 이뤄지지 않거나 부모를 특정할 수 없다면 지자체장이 법원 허가를 받아 직권으로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

일각에선 이번에 국회를 통과한 출생통보제가 출생신고를 부모와 병원에만 지운다는 비판도 나온다. 병원이 심평원에 전달한 출생 정보와 부모가 지자체에 한 출생신고를 비교하는 방식을 채택하기 때문이다. 기존 출생신고제보다는 누락 가능성을 줄였지만 출생 등록의 책임이 여전히 부모와 병원에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한걸음 더 나아가 국가가 모든 아이의 출생 등록을 책임지는 ‘출생등록제’를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고에 의존하기보다 정부가 직접 나서 등록하는 방식이다. 신필식 입양연대회의 사무국장은 “미국, 유럽 등 대다수 국가는 병원이 통보한 정보를 토대로 지자체가 직접 나서 아이를 확인 후 출생등록한다”며 “이번에 채택한 출생통보제는 정부가 앉아서 출생 정보를 보고받는다는 식인데 이보다 더욱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병원의 행정 부담 가중을 이유로 출생통보제에 반대한 의료계는 심평원의 개입으로 부담을 덜었다는 입장이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은 “병원이 출생 정보를 입력하면 심평원이 전산망을 통해 행안부로 전달하는 식이라 병원 측의 행정 부담이 크진 않을 것으로 본다”며 “병원 입장에서도 간단한 프로그램 작업만으로 입력이 가능해 별도의 비용이나 인력이 필요하진 않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보호출산제 도입 여부도 논란거리다. 정부와 여당은 임산부가 신원을 숨기더라도 의료기관에서 출산이 가능하도록 하는 일명 ‘익명출산제’를 함께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호출산제는 산모가 신분을 숨기고 출산하는 제도로, 출생통보제가 도입되면 신원 노출을 꺼리는 산모의 ‘병원 밖’ 출산을 막자는 취지다. 미혼모나 미등록 외국인 이주자, 난민 등이 여기에 해당할 것으로 보인다. 이 제도에 따르면 산모가 신원이나 개인정보를 밝히지 않아도 의료기관에서 출산할 수 있고, 익명으로 출생신고와 입양신청도 가능하다. 이기일 복지부 1차관은 ‘출생 미등록 아동 보호체계 개선 추진단’ 1차 회의에서 “출생통보제와 함께 보호출산제가 조속히 입법될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범부처 개선추진단 발족, 대응 강화

그러나 야당과 전문가들은 이 제도가 부모의 양육 포기를 유도하고, 아동의 알 권리를 침해한다는 입장이다. 송효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박사는 “출생통보제 시행으로 병원 출생 기피현상이 일어날 것이라는 주장은 현재로서 받아들이기 어렵다”면서도 “임신 및 출산과정에서 비혼모에 대한 상담·의료지원과 출생아의 친부모를 알 권리 보장이라는 법익과 조화를 이루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현재 보호출산제를 도입한 대표적인 나라는 프랑스와 독일이다. 다만 보호출산제와 유사한 ‘신뢰출산제’를 운영하는 독일의 경우 도입에 앞서 임산부에게 임신·출산과 관련된 의료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임신중절 상담·지원 방안 등 모성보호 정책을 우선적으로 시행했다는 점에서 국내 상황과는 차이가 있다는 입장이다.

김재연 회장은 “출산 시 익명성을 보장받으려면 정기검진 때부터 이름 대신 고유번호로 불리며 주목 받을 텐데 산모가 그걸 감수하면서까지 병원을 찾겠느냐”며 “정부에서 의료비 등 경제적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의료기관에서 일단 비급여로 처리 후 따로 청구를 해야 하는데 그 과정 역시 산모에겐 부담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단 산모가 의료보험 혜택을 받아 안전하게 출산한 후 부모가 직접 양육하는 걸 목표로 해야 하는데 보호출산제는 입양을 전제로 해 산모와 아기 모두 보호하지 못한다”며 “그보다 먼저 위기임신관리센터를 만들어 키울 여건이 안되거나 양육을 망설이는 산모에 대해 맞춤형 지원을 하는 게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조언했다.

출생신고 안 한 외국인 아동 4000여 명…국적 관계없이 등록 가능해야

지난달 29일 서울 국회 에서 보편적 출생등록제 도입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뉴시스]

지난달 29일 서울 국회 에서 보편적 출생등록제 도입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뉴시스]

감사원이 지난달 찾아낸 출생신고 안 된 영·유아는 6000명에 달한다. 그러나 현재 보건복지부와 경찰이 아동의 전수조사에 나선 인원은 내국인 2236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4000여 명은 외국인 아동이다. 현행법상 외국인 자녀는 부모의 국적지에서 출생신고를 하게 돼 있다. 이에 따라 지방 출입국이나 대사관에 출생 사실을 신고하고, 법무부 출입국관리법의 적용을 받는다. 다만 국내에서 출산하더라도 외국인이 출생신고를 할 의무가 없다. 게다가 난민이나 불법체류 외국인은 추방이 두려워 신고를 꺼린다. 감사원 관계자는 “4000여 명 중 상당수는 본국에 출생신고를 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어디에도 신고되지 않은 채 국내에 머무르는 사례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제7조에는 모든 아동이 태어난 후 곧바로 등록돼 이름과 국적을 가져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정부는 2011년 부모의 출신과 관계없이 모든 아동의 출생등록이 가능해야 한다는 유엔아동권리위원회의 권고를 받은 바 있다. 국회에는 부모의 체류 자격과 상관없이 모든 외국인 아동의 출생을 등록해 관리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이 계류 중이다.  ‘보편적 출생신고 네트워크’는 지난 3일 “출생통보제 도입을 환영한다”면서도 “앞으로 ‘모든 아동’의 보편적 출생등록을 위한 국가의 계속된 노력을 촉구한다”는 성명을 내놨다.

일각에선 불법체류를 묵인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김희진 보편적출생신고네트워크 변호사는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따르면 국적이나 피부색과 관련 없이 모든 아동을 보호해야 한다”며 “아무 죄 없는 아이들이 단지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권리를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걸 인식하고 법제화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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