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단독] 文 때 "김원봉 포상" 압력…수혜 받은 건 손혜원 부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문재인 정부 시절 국가보훈처(현 국가보훈부)에 들어선 보훈혁신위원회(보훈위)가 김원봉 등 친북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포상을 “마땅히 해야 하는 것”으로 규정하며 “(포상에)최선을 다하라”고 권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위원회의 압력을 받은 보훈처는 당시 실제로 사회주의자에 대한 포상이 가능하도록 내부 기준을 바꿨다. 김원봉에 대한 서훈 수여는 논란을 거치며 불발됐지만, 손혜원 전 의원의 부친인 손용우 씨를 포함한 사회주의 진영에서 활동했던 39명이 바뀐 규정에 따라 실제 포상 대상이 됐던 것으로 파악됐다.

약산 김원봉

약산 김원봉

“광복 때 독립운동했다면 사상 무엇이든 독립유공자”

6일 중앙일보가 입수한 ‘국민중심 보훈혁신위원회 의결 권고안 모음집’에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김원봉 등 마땅히 독립유공자가 될 사람들에게 적절한 포상을 해 국가적 자부심을 고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문구가 명시돼있다.

보훈위는 2018년 5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8개월 동안 보훈처 내에서 활동했다. 당시 보훈위는 지은희 정의기억재단 이사장이 위원장을 맡았고, 2017년 대선 때 문재인 당시 대선 후보 진영에서 활동했던 김은경 전 보훈처 정책보좌관, 오철식 전 국방홍보원 원장을 비롯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소속 성춘일 변호사 등이 위원을 맡았다.

2017년 6월 당시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은희 정의기억재단 이사장으로부터 소녀상을 전달 받고 있다. 중앙포토

2017년 6월 당시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은희 정의기억재단 이사장으로부터 소녀상을 전달 받고 있다. 중앙포토

보훈위는 김원봉을 특정해 "마땅히 독립유공자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며 “독립운동은 1945년 8월 15일 시점에서 판단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권고안 모음집엔 이들이 “그 시점(광복일)에 독립운동 지속하고 있었다면 그 독립운동가의 사상이 무엇이든, 또 해방 이후 정치적 행적이 무엇이든 그 사람은 독립유공자로 판단해야 옳다”고 강조했던 내용도 포함돼 있다.

보훈위는 또 김원봉 외에도 “남에서도 북에서도 사상이나 정치적 이유로 독립운동 공적을 온전히 평가받지 못하는 독립운동가들을 적극 서훈한다”거나 “사회주의자라는 이유로 서훈 등급을 낮춘 사례는 모두 조사해서 재조정한다”고 권고하기도 했다.

이 같은 권고에 당시 보훈처 내부에서 강한 반발 기류가 있었다고 한다. 익명을 원한 보훈부 관계자는 “당시 권고에 대해 건국훈장의 기본 가치를 무너뜨리는 선 넘은 권고라는 분통이 터져나왔다”며 “이런 논리면 김일성도 서훈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자조 섞인 얘기가 적지 않았다”고 전했다.

권고 넘어 '공식 기준'까지 바꿨다

그럼에도 보훈처는 2018년 6월 사회주의 활동에 대한 공식적인 포상 근거를 바꿨다.

수정된 근거 조항엔 “광복 후 사회주의 활동을 했더라도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하거나 적극 동조한 것이 아니면 사안별로 판단해 검토한다”는 구절이 추가됐다. 특히 ‘적극 동조’라는 자의적 기준을 넣으면서 사실상 전체 친북 논란 인물들에 대한 서훈을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부 관계자는 “광복 후 친북 활동이 의심되는 행적 불분명자에게 서훈 수여가 보류된 이전 기준에 비하면 범위가 크게 확대된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중심 보훈혁신위원회는 2018년 펴낸 의결 권고안 모음집을 통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김원봉 등 마땅히 독립유공자가 될 사람들에게 적절한 포상을 해 국가적 자부심을 고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고 명시했다. 국민중심 보훈혁신위원회 의결 권고안 모음집

국민중심 보훈혁신위원회는 2018년 펴낸 의결 권고안 모음집을 통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김원봉 등 마땅히 독립유공자가 될 사람들에게 적절한 포상을 해 국가적 자부심을 고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고 명시했다. 국민중심 보훈혁신위원회 의결 권고안 모음집

보훈처의 공식적 포상 근거가 변경된 이후인 2019년 6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현충일 추념사에서 김원봉을 직접 언급하며 “국군 창설의 뿌리”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김원봉 포상'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역설한 셈이다. 김원봉이 광복군 부사령관으로 독립운동에 공을 세운 것은 대체로 사실로 인정된다. 그러나 그는 광복 후 북한으로 건너 가 김일성 정권 초대 내각에서 국가검열상(장관)에 이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내며 김일성 정권 수립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당시 문 전 대통령의 발언은 사회 분열과 진영 간 대결로 이어지며 사회적 논란이 됐고, 결국 김원봉에 대한 서훈은 이뤄지지 않았다. 보훈부 관계자는 당시 상황에 대해 “김원봉은 북한 정권에 기여한 바가 매우 커 서훈 수여가 애초 불가능한 인물이었다”며 “당시 서훈이 추진됐던 자체가 비정상적 상황이었다”고 강조했다.

김원봉은 실패했지만…사회주의자 39명 포상

논란의 핵심이었던 김원봉의 서훈은 불발됐지만, 수정된 원칙에 따라 사회주의 활동자 39명은 포상 대상에 올랐다. 여기엔 손혜원 전 의원의 부친 손용우 씨도 포함됐고, 2018년 광복절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수여됐다. 손용우 씨는 광복 후 사회주의 활동을 벌인 인물로, 해당 이력 때문에 규정이 바뀌기 전 심사에서는 6차례나 서훈 대상에서 탈락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8월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열린마당에서 열린 제73주년 광복절과 정부수립 70주년 경축식에서 독립유공자 고 손용우 씨 배우자 김경희 씨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포상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8월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열린마당에서 열린 제73주년 광복절과 정부수립 70주년 경축식에서 독립유공자 고 손용우 씨 배우자 김경희 씨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포상하고 있다. 연합뉴스

보훈부는 “친북 논란이 있음에도 독립유공자로 포상돼 사회적 갈등을 야기한 부분에 대해 기준을 명확히 하겠다”며 “필요할 경우 기포상자에 대해서도 적절성을 다시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손용우 씨 등 친북 활동이 의심되는 인사들에 대한 서훈 전면 재검토가 불가피하다는 의미다.

보훈부 관계자는 “사회주의 독립운동의 인정 시점, 북한 정권 수립 기여의 기준 등을 다시 명확하게 조정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며 “정부가 바뀔 때마다 건국훈장 수여 기준이 함께 바뀌는 문제를 바로잡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